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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디에디트 Oct 17. 2016

싱글몰트 배우는 여자

글렌모렌지를 마셔봤다. 무려 5가지나

날이 추워졌다. 술도 더위를 타고 추위를 탄다. 무슨 말이냐고? 기온이 내려가면 속을 뜨끈하게 데워줄 독주를 찾게 된다는 말이다. 난 추울 때 마시는 독주를 좋아한다. 차가운 바람이 코끝을 치는데, 속은 불은 삼킨 것처럼 뜨끈한, 그 기묘한 간극.


물론 술이 약한 나에게 독주는 위험하다. 몇 모금만으로도 땅이 거꾸로 솟고, 세상의 모든 것이 아지랑이처럼 미끄덩거리며 울렁거리곤 하니까. 하지만, 그럼 뭐 어때? 난 원래 조금 마시고 쉽게 취하는 가성비 좋은 사람인걸.


이 시린 계절을 맞아, 아주 좋은 술을 마시고 왔다. 사실 싱글몰트 위스키는 이번이 두 번째로 마셔보는 거다. 처음이 맥캘란이었고, 그 다음이 지금.


내 싱글몰트 경험은 소름끼치게 좁다. 배워가는 중이니까. 내가 아는 세계에서 비교를 해보겠다. 맥캘란과 글렌모렌지는 확실히 다른 술이었다. 맥캘란이 거친 붓터치의 매력적인 유화라면, 글렌모렌지는 한폭의 수채화다. 묵직하게 치고 들어오는 바디감과 혀끝에서 끈떡지게 따라붙는 유질이 특징인 맥캘란과 달리 글렌모렌지를 입안에서 가만히 굴리면 화선지 위에 붓끝을 갖다댄듯 섬세함이 혀끝에 퍼진다. 두 번째 경험만에 이 정도 표현을 쏟아내다니, 나는 정말 대단한 여자야.


[아, 사진은 물론 합성이다]

이 특징은 증류기에서 나온다. 스코틀랜드에서 최고 높이를 자랑하는 이 증류기는 기린의 크기 정도와 비슷하다. 그래서 글렌모렌지의 상징이 기린이라고. 이렇게 목이 길면 길수록 더 순도 높은 스피릿이 모이게 된다. 글렌모렌지의 가벼우면서도 섬세한 맛은 증류기 자체가 필터가 되어 여과작용을 거쳤기 때문에 가능하다. 정리하자면 맥캘란과 글렌모렌지의 맛의 차이는 증류기 길이에서 비롯된다는 얘기다. 어느 쪽이 더 좋다고 평가할 순 없다. 마치 라거와 에일의 차이처럼 기호의 문제일 뿐이다.


[그 비싸다는 시그넷은 물처럼 인심 후하게 따라 주더라. 그래서 마셨다. 홀짝홀짝]

오늘 시음할 위스키는 총 5 종류. 가장 기본적인 글렌모렌지 오리지널과 라산타, 퀸타루반, 18년 숙성, 그리고 시그넷.


내가 지독한 감기에 걸려 위스키 시음을 제대로 하지 못한 관계로. 함께 클래스에 참석한 사람들에게 이번 시음회에서 가장 좋았던 것을 물어봤다. 놀랍게도 결과는 공평했다. 어디까지나 취향의 문제였다는 걸 다시 한 번 깨달았다. 오리지널이 2명, 익스트림리 레어 18년 숙성이 2명, 시그넷이 2명이었다.


여기 그들이 오늘 시음회에서 각자 최고라고 뽑은 것과 간단한 이유를 공개한다.


내 상태가 좋지 않아 이 맛을 제대로 느끼고 전해드리지 못한 점 미안하게 생각한다.


[심지어 빌 럼스던 박사에게 디 에디트로 싸인도 받음]

하지만 아직 다행히도 제 손엔 글렌모렌지 100m 5병이 남았습니다! 감기가 말끔히 나으면 제대로 마셔보고 다시 돌아오겠다. 우리랑 이 술 같이 마셔줄 술 잘하는 남자 사람 모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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