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결말부터 확인하는 거야?
[이 글엔 스포일러가 없습니다.]로 시작해야만 할 것 같다.
"넷플릭스 왜 보냐. 성해나 책 보면 되는데." 박정민 배우의 추천사로 유명한 성해나 작가의 『혼모노』. 박진감 가득한 몰입. 단편 소설 7편을 영화를 보듯 긴장하며 읽으며 궁금함이 생겼다.
왜 나는 결말을 먼저 확인하는 걸까?
고등학교 때부터 지금까지 나이 별명은 '깨 간'이다. 내 간의 크기가 딱 '깨'의 사이즈와 분명히 같거나 그 이하일 것이라고 붙여진 별명이다. 대범함이 전혀 없다. 작은 일에도 두려워하고, 긴장했으며 큰 일은 엄두조차 내지 못한다. 소심함이 크며 초조함과 불암감을 이겨내지 못한다. 그래서 타의적 자의적으로 붙여진 별명이기도 했다. 이런 나에게 가장 어려운 건 긴장감 가득한 모든 것. 결말이 예상되지 않는 최고조의 몰입을 필요로 하는 영화나 드라마를 보는 것이다. 그나마 '깨' 사이즈로 존재하는 나의 간은 이런 장르 앞에서는 여지없이 바스러져 사라져 버린다. 마치 돈가스 소스에 함께 넣어 먹기 위해 통깨를 절구에서 작은 나무 막대로 으깨 가루로 만드는 것과 같이. 영화나 드라마의 결말 앞에서 나의 간은 빠르게 빻아진다.
『혼모노』를 읽으면서 내 '간'은 또 한 번 바스러졌다. 영화나 드라마가 아닌 책을 읽으면서도 이런 긴장감을 가질 수 있다고? 소설을 읽으면서 결말이 궁금해서, 긴장되어서, 상황에 너무나 몰입되어서 책장을 넘기며 알 수 없는 긴장감에 결국. 책 페이지를 뒤로 넘겨 결말을 먼저 확인했다. 쫄깃함을 견디지 못해. 이 이야기의 끝이 무엇인지 확인하고, 이 인물이 어떻게 될지 확인하며 뒷장의 결말을 확인해 안심하며 읽어 나갔다. 심지어 <구의 집: 갈월동 98번지>를 읽을 땐, 장소도 검색해 확인 한다. 한 번도 아닌 몇 번이나 책장을 뒤로 펼쳤다 덮었다를 반복했는지. 성해나 작가의 탁월한 서사와 소재, 그리고 인물의 묘사가 나를 스포일러로 만들었다. 하지만, 문득 '스포일러'를 좋아한다는 사실이 갑자기 심각하게 내게 다가왔다.
나의 콘텐츠 소비 양상에 문제가 있는 걸까. 고민이 시작되었다.
남편은 정 반대이다. 결말을 미리 듣는 순간 흥미를 잃어버린다. 아예 귀를 틀어막고 필사적으로 결말을 피한다. 못 보고 놓친 야구 경기도 결과를 알지 않게 스스로 뉴스를 차단하고 미디어를 차단한 후, 하이라이트를 몰입해서 본다. 모든 책과 시리즈 웹툰 등 모든 콘텐츠는 반드시 1회부터 시작한다. 나와 함께 영화를 보다, 결말을 확인하는 나를 절대 이해하지 못한다. 블로그에서도 기사도 스포일러는 금지다. 그렇지......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렇지.
나만 긴장감이 싫은 이유는 무엇일까. 나는 왜 결말을 먼저 확인하는 스포일러 일까. 이런 나는 콘텐츠를 진정 즐긴다고 말할 수 없는 것일까? 결말부터 확인을 해서 김 빠진 콘텐츠를 보는 것일까? 긴 서사가 담긴 그 플롯이 지겨운 건지. 10초, 15분의 짧은 영상과 유튜브 등 요즘 미디어에 중독되어 나의 뇌가 긴 이야기를 그 긴장 감을 참을 수 없는 것일까.
오만가지 생각에 결국 이것저것을 찾아본다. 결론부터 말하면 나와 같이 '스포일러에 의존(Spoiler-dependent)'하는 '능동적으로' 결말을 찾아보는 사람도 많더라. 심지어 "2011년 'Psychological Science'논문에서는 스포일러를 접한 집단이 오히려 작품을 더 재미있다고 평가했다."는 것을 확인하고는 조금은 안심이 되었다. 적어도 콘텐츠 소비의 양상이 이상한 건 아니네.
맞아. 불확실성은 불안을 키운다. 이걸 참지 못하는 '깨 간' 나는 드라마 속 인물이 살았는지 죽었는지, 범인이 누구인지 모르는 긴장감은 짜릿함이 아닌 고통으로 다가온다. 그래서 결말을 먼저 확인한다. 그제야 불안한 마음이 풀리고, 인물의 심리와 장면에 조금 더 집중할 수 있게 된다. 결말을 알고 긴장감에 불안감에 휘둘리지 않아야. 차분히 콘텐츠를 음미하고 결과를 알고 있어 단서와 복선을 찾아내는 작은 즐거움도 나름 있다.
쾌락보다는 마음의 안정과 안심이 있어야. 비로소 이야기의 길 위에 마음 놓고 서서 함께 걸어갈 수 있는 사람. 난 그런 사람이다. 스포일러로 불안을 해소하고 마음을 안정시켜 차분하게 작품을 콘텐츠를 즐기는 것이다.
그러니, 고민하지 말자. 나는 이렇게 단지 다른 방식으로 콘텐츠를 즐기는 사람이다.
스포일러 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