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우리 엄마 칼국수'

by 엘렌

엄마가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다. 우리 가족에게 '암'이라는 것이 이렇게 쉽고도 빠르게 아무런 예고 없이 어느 날 아침 갑자기 찾아올지 몰랐다. 더구나 우리 엄마가 ‘암’을 마주하리라고는 생각해보지 못했다. 엄마는 서울 둘레길을 완주한 늘 건강한 엄마였고, 활기차고 씩씩한 에너지로 가득해 늘 부러운 엄마였다.


엄마는 4주 간격으로 6번의 항암주사를 맞았다. 두번째 주사를 맞고는 엄마의 머리카락은 하나도 남지 않았다. 동시에 엄마의 활기찬 밝음도 사라졌다. 엄마는 먹는 것도, 화장실 가는 것도, 잠을 자는 것도 모든 것을 힘겨워했다. 엄마 옆에 있어도 아무것도 해줄 수가 없이 그저 바라만 볼 수밖에 없는 힘든 나날이 하루하루 지나가고 있었다.


마지막 항암주사를 맞는 날. 진료시간까지 여유가 있어, 엄마와 내가 좋아하는 병원 1층으로 향했다. 암병동 1층의 한 면은 건물 3층 높이의 큰 창이 있다. 그 창 밖으로는 나무가 가득하고 그 창 앞으로는 기다리거나 쉬는 사람들을 위한 벤치가 통창을 따라서 길게 놓여있다. 창 밖은 초록색 가득했던 여름을 지나, 붉고 노란 단풍잎 가득한 가을도 지나, 이제 겨울이 되었다. ‘어느새 시간이 이렇게 흘렀을까?’ 창 밖을 보며 혼자 생각하는 순간, 갑자기 고요해지는 느낌이 가득해졌다. 은은한 공기가 주변을 감싸는 포근한 느낌. 창 밖에 하얀 눈이 내리고 있다. 끊임없이 하얗게 하늘에서 떨어지는 하얀 눈을 보고 있었다.


“수연아, 엄마…… 우리 엄마 칼국수가 먹고 싶네.”

하얀 은은함 속에서 하염없이 내리는 눈을 보며, 우리 엄마는 엄마의 엄마, 돌아가신 외할머니의 칼국수를 그리워했다.


외할머니는 딸만 여섯 명을 두었고, 엄마는 그 딸 부잣집의 장녀다. 내 동생이 2년 차이로 태어나서, 나는 외할머니 집에 자주 보내졌다. 이모들과 함께 외할머니의 막내 딸처럼 자랐다. 내 기억 속 외할머니 방에는 내 키보다 훨씬 크고 긴, 나무도마가 있었고 그 옆에는 매끈한 나무 막대기, 유독 손잡이 부분이 반짝이며 빛나는 홍두깨가 있었다.


“할머니, 이건 달나라 토끼들이 사용하는 거야?

“수연아, 그건 할머니가 칼국수를 만들 때 쓰는 거야. 수연이 칼국수 먹고 싶어?”

할머니는 큰 나무도마를 가져와 그 위에서 하얀 밀가루를 반죽하기 시작했다. 눈처럼 하얀 밀가루가 할머니 손에서 몽글몽글 뭉쳐지기 시작했다. 그리고는 눈사람을 만들 때처럼 동그란 하얀 반죽이 되었다. 주름진 할머니의 쭈글쭈글한 손에서 밀가루가 하얗게 날라가고, 홍두깨가 지나가니 동그란 반죽이 납작해지기 시작한다. 한손으로는 반죽을 오른쪽으로 살짝 한번 돌리고, 다른 한 손으로는 홍두깨를 밀고, 또 한 번 반죽을 돌리고 홍두깨를 밀고를 반복한다. 반죽은 점점 넓어지고 점점 얇아졌다. 이불처럼 펼쳐진 반죽위로 하얀 밀가루가 또 한 번 흩뿌려진다. 할머니는 밀가루가 묻은 하얀 손을 마주쳐 툭툭 털며 한복 치마처럼 넓어진 반죽을 반으로 접고 또 접고 접어 네모로 길게 만들었다. 할머니는 홍두깨보다 더 반짝이는 매끈한 칼 손잡이를 잡고 할머니 버선처럼 앞이 살짝 올라간 칼로 네모 반죽 위를 슥슥슥 지나간다.


하얀 눈사람 반죽이 보름달처럼 동그란 뻥튀기 모양이 되고, 이불처럼 펼쳐지고, 다시 국수가 되는 그 과정이 난 항상 신기했다. 하얀 밀가루가 날리면 모양이 변하고, 밀가루가 온 방을 뽀얗게 뒤덮고 나면 마술처럼 칼국수 면이 나무도마 옆에 가득 쌓였다. 통통하고, 쫄깃한 국수. 아무것도 넣지 않은 하얀 면만이 가득한 칼국수. 외할머니가 돌아가시고, 잊고 있었다. 세상에서 제일 맛난 그 칼국수도. 하얀 눈이 소복 가득했던 나무도마도, 외할머니도.


엄마의 그리움은 하늘에서 내리는 눈과 함께 마음에 쌓이고 있다. 엄마는 외할머니의 홍두깨를 집으로 가져왔었다. 엄마가 직접 칼국수를 해주겠다고 신나게 말하면서. 하지만, 그 홍두깨는 한 번도 사용하지 못했다.

병원에서 집에 가는 길에, 엄마와 안동국수를 먹으러 갔다. 칼국수를 주문하고 엄마와 외할머니와의 추억을 이야기했다. 할머니네 앞마당 수동 물펌프에서 하루 종일 물놀이를 한 내 모습을 할머니가 돌아가시 전까지 그리워했다는 이야기, 오랜 만에 만난 엄마를 보고, 내가 이모들을 따라서 엄마가 아닌 ‘언니’라고 불렀다는 이야기, 할머니 집에서 1년 뒤에 까맣고 꾀죄죄한 촌 아이가 되었다는 이야기까지. 그렇게 엄마와 이야기를 하며 한참을 웃었다. 외할머니의 칼국수를 그리워하는 엄마의 마음을 달래 보았다. 내가 할 수 있는 방법으로.


김이 모락모락 나는 하얀 칼국수 한그릇이 나왔다. 따스함이 온 몸으로 퍼져 나간다. 칼국수 면을 보니, 하얀 밀가루가 눈썹 위에 살포시 얹어진 할머니가 생각나서 울컥 한다. 외할머니 칼국수의 그 맛은 나지 않지만, 맛있었다. 엄마가 마지막 항암주사를 맞고 먹는 칼국수. 그것 만으로도 위로가 되었다. 엄마와 마주보며 먹는 ‘허옇게 멀건’ 그 안동국수가 이상하게도 마음을 따스하게 감싸주었다. 맛있다고 말하는 엄마를 보면서 나지막이 혼잣말을 한다. ‘엄마 수고했어.’ 엄마의 마음이 궁금했지만, 자꾸만 눈에 눈물이 고여 물어보지 못했다. 애써 피했다. 엄마도 이 한 그릇의 칼국수가 엄마의 마음을 어루만져 주었을 꺼라, 할머니 생각을 하며 마음이 따뜻했을 꺼라 생각하며, 고요하게 내리는 눈만큼, 조용하게 칼국수를 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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