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랙트, 교감을 선택하세요.
바쁜 직원들을 따라 서둘러 출입 게이트를 열어주는 로봇.
바쁜 직원들과는 달리 느긋하게 커피를 내려주는 로봇.
바쁜 직원들의 발걸음을 피해 바닥을 쓸고 닦는 로봇.
이제 인간이 하던 일의 대부분을 로봇이 해주는데도 왜 인간은 늘 바쁠까?
수연은 햇살이 내리쬐는 본사 라운지에 앉아 로봇의 움직임을 유심히 살펴봤다. 요즘 들어 생긴 수연의 습관이었다. 시간이 날 때마다 종종 수연은 로봇과 인간을 정의하며, 그리고 구분해 가며 하루를 보냈다.
“수연씨, 뭐 하는 거예요? 전화기가 울리잖아요. 빨리 받으세요.”
옆에 있던 선배의 날 선 한마디에 허상을 깨트리고 급히 응답 버튼을 눌렀다.
“인터랙트, 교감을 선택하세요. 인터랙트 본사 리셉션 데스크, 정수연입니다. 무엇을 도와드릴까요?”
아직도 저 인사말을 건넬 때면 수연에게도 짜릿한 전율이 흘렀다. 대한민국 청년들이 가장 취업하고 싶은 대기업 1순위, 인터랙트 본사의 소속이 되어 자신의 이름 정수연을 소개할 때면 마치 커다란 꿈을 이룬 것 같은 착각이 들었다. 처음 신입생 교육을 받을 때는 마냥 어색하기만 했던 인사말이 이젠 혀와 목구멍에 달라붙어 자동응답기 마냥 동일한 톤으로 외쳐졌다.
인터랙트, 교감을 선택하세요.
인터랙트의 취업 문턱을 무사히 통과한 입사 동기들을 처음 마주했던 순간이 생생했다. 한명 한명 내뿜는 분위기와 개성이 독특하면서도 모두 정갈히 인터랙트의 직원이 될 준비가 완료된 듯 보였다. 역시나 대기업의 선별 능력은 대단하다고 새삼 느꼈다. 수연은 동기들에 비해 뚜렷한 특기가 있던 것은 아니지만, 면접 내내 자신이 인터랙트로 키워진 ‘인터랙트 키즈’라는 사실과 인터랙트를 제2의 부모로 여긴다며 진심 어린 애정을 드러냈다. 게다가 인터랙트에서 수연에게 제안했던 커리어 자체도 인터랙트의 본사에 취업하는 것이었다. 그것만큼 수연이 인터랙트에 취업해야 하는 명확한 이유가 또 있었을까. 면접관들은 수연이 제출한 인터랙트 상담 내역서를 훑어보며 이렇게 인터랙트가 본사 취업을 구체적으로 제안하는 경우가 드물다며 허허 웃었다. 그 사실에 이미 그들은 큰 고민 없이 수연을 한식구로 받아들인 것 같았다.
4박 5일에 걸쳐 진행되었던 1차 신입생 교육 워크숍을 담당했던 사람은 최지연이라는 인터랙트 본사 교육팀장이었다. 그녀는 너풀거리면서도 쉐입이 잡혀있는 남색 블라우스와 액세서리 같아 보이는 얇은 은색 테의 안경을 쓰고 있었다. 최지연 씨는 단정함과 화려함의 딱 중간지점에서 흔들림 없이 서 있었다. 불편한 듯 습관적으로 쓸어 넘기는 얼굴 옆 머리카락도 이미 계산된 손짓처럼 자연스럽게 느껴졌다. 그녀는 타이르는 듯한 말투로 자신이 하는 말에 고개를 끄덕이게 하는 재주가 있었다. 인터랙트의 설립에 대해 설명할 때에도 그녀는 꽤 주관적인 듯한 내용을 사실인 것처럼 풀어나갔다.
“인터랙트는 파국으로 치닫는 대한민국의 육아 현실에 새로운 패러다임을 불러온 영웅이었어요.”
최지연 씨는 초고화질의 인터랙트 본사 빌딩의 외관 사진을 대형 스크린에 띄워두고 당차게 말했다.
“2030년대 초부터 2040년대 중반까지 대한민국은 다양한 분양에서 눈부신 성장을 이루고 있었지만, 모순적이게도 출산율을 매해 세계 최저였죠. 타국가들은 대한민국을 향해 미래 지속 가능성이 없는 국가라고 온갖 질책을 늘어놓았어요. 이게 모두 우리의 조부모님 시대에 있었던 일이었죠.”
몇몇 신입사원들은 마치 할머니 할아버지를 통해 비슷한 이야기를 들었다는 듯이 작게 탄성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수연 또한 명절 때마다 들었던 이야기였지만, 이미 의기양양한 최지연 씨에게 더 힘을 보태주기 싫어 가만히 그녀를 응시하기만 했다.
“미국의 여러 저널리스트는 이런 출산율 문제의 원인을 대한민국의 과도한 경쟁사회로 꼽았어요. 경쟁에서 부서진 아이들이 시퍼렇게 멍든 어른으로 자라나, 자신의 아이들에게도 고스란히 피해를 넘겨주었다고요. 행복을 잃어가는 국민들에게 미래가 있을 리 없다며 거센 비판을 해댔죠.”
최지연 씨는 말을 잠시 멈추며 고개를 들어 시선을 멀리 보냈다. 마치 다음에 할 말이 중요한 내용이라는 것을 암시하고자 하는 듯했다.
“저도 동의해요. 이런 뒤틀린 경쟁에서 패배한 인간들이 곰팡이 핀 사랑으로 아이들을 키우며 미래 세대의 씨가 말랐다는 의견에 저도 동의합니다. 그 시대의 부모들은 일말의 죄책감 없이 자신의 사랑을 돌멩이 던지듯 아이들을 향해 던졌어요. 귀하게 태어났던 아이들마저도 스스로를 보호할 수 있는 자아가 성립되기도 전에 온갖 정신 질병에 시달렸죠. 그 당시 대한민국의 청소년 자살률이 전 세계 1위였다는 사실이 믿어지시나요?”
신입사원들은 드라마틱한 최지연 씨의 고백에 술렁였다. 모두 그녀가 세심하게 짜놓은 이 대본의 결론이 무엇인지 궁금한 듯 그녀를 뚫어져라 쳐다봤다. 높은 집중도 만족스러운 듯 최지연 씨는 약간 캐주얼하게 분위기를 바꾸어 말을 이어 나갔다.
“하지만 저는 그 이유가 강도 높은 경쟁 때문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아요. 원인은 강도가 아닌 방향성에 있죠. 즉, 틀린 경쟁을 하고 있었기에 그런 비극이 일어났다고 생각합니다.”
아직 아리송한 표정을 짓고 있는 신입사원들에게 몸을 기울이며 설득하듯 되물었다.
“여러분 생각해 보세요. 여러분이 굉장히 잘하는 어떤 무언가가 있다고 가정합시다. 여러분은 어릴 적부터 그 특기로 인해 많은 칭찬을 받았고 성공 사례들을 축적했어요. 그로 인해 높은 자신감과 자기 확신을 발달시킬 수 있었죠. 이 분야에서는 나를 이길 사람이 없다는 마음으로 행하는 경쟁은 어떨까요? 두려움과 억압에 휩싸인 경쟁일까요?”
신입사원들은 약간씩 최지연 씨가 하려는 말의 의도를 이해하기 시작했다는 듯이 고개를 저었다.
“아니죠. 자신이 가장 잘하고 자신에게 딱 적합한 일로 경쟁을 치러나가는 사람은 분명 경쟁을 즐기고 있을 거예요. 그러기 위해선 아이의 선천적인 성향이나 발달 과정을 심도 깊게 알고 있어야겠죠? 저 최지연은, 그리고 인터랙트 본사는 그런 경쟁을 선물하고자 합니다. 사람을 구석으로 몰아넣는 경쟁이 아닌, 교감을 통해 아이의 진정한 가치를 알아보고 이를 성공적으로 이끌어내주는 경쟁이요. ”
그녀의 멋진 기승전결에 감동 받은듯 동기들은 크게 끄덕거렸다. 최지연 씨는 이제야 본론으로 들어가려는 듯이 자세를 고쳐 앉고 일정한 톤으로 설명을 시작했다.
“인터랙트가 제안한 서비스는 부모와 아이 모두에게 큰 포상이자 축복이었어요. 물론 기존에도 다양한 육아 서비스가 존재하긴 했지만, 인터랙트는 상상할 수 없는 차원으로 갈 길 잃은 부모들과 시들어가는 아이들을 구해냈죠. 모두 전자 패드의 화면을 왼쪽으로 넘겨 다음 페이지로 가주세요.”
수연은 그녀의 지시에 따라 자신에게 배정된 전자 패드를 넘겨 다음 자료를 살펴보았다. 그 자료에는 인터랙트의 퍼스널라이즈드 데이터베이스 구축 방식이 보기 쉬운 방식으로 시각화되어 있었다. 최지연 씨는 그 내용을 이미 백번이고 설명한 사람처럼 익숙하고 지루하게 설명했다. 어려운 용어들이 한가득이었기에 문과 계열을 전공한 수연은 대부분 알아듣기 어려웠으나, 대략적으로 산모가 아이를 출산하고 스스로 정한 아이의 이름을 등록한 순간부터 인터랙트의 데이터베이스가 구축된다는 내용이었다. 전국적으로 연계된 산부인과와 병원들을 통해 발송받은 아기의 생체 데이터와 뇌 CT 촬영본 분석으로 시작하여 유전적 특징들을 분석했다. 뇌의 특정 부위에서 분비되는 호르몬 수치나 활동량을 통해 아이의 선천적인 우울감, 불안감 등을 파악할 수 있었기에, 아기마다 갖고 태어난 고유성을 바탕으로 1차적인 분석을 할 수 있었다고 한다.
그 이후에도 아이의 부모는 최소 주 2회, 최대 주 30회까지의 멘토링 세션을 통해 지속적으로 아이에 대한 정성적 정보들까지 받아 데이터베이스를 확장해 나가는 형태였다. 물론 분기별로 시행하는 건강검진을 통해 업데이트되는 아이의 생체데이터까지 더해지며 인터랙트는 부모보다 더욱 깊게 아이를 이해하는 시스템이 되었다.
“여기서 끝나면 인터랙트가 아니죠. 자, 다음 페이지로 넘겨주세요.”
최지연 씨는 다음 내용을 설명하고 싶어 안달이 난 듯 의자에서 조금 들썩이며 눈을 반짝였다. 기대감에 찬 표정으로 신입사원들은 그녀의 지시에 따라 다음 페이지로 넘어갔다.
“인터랙트 서비스가 처음 세상에 나왔을 때 가장 큰 논란거리가 되었던 건 이 멘토의 형상이였어요. 인터랙트는 부모들에게 더 깊은 친밀감과 애정을 이끌어내기 위해 이런 멘토링 세션을 진행해 주는 가상의 멘토를 만들었어요. 일종의 유저 인터페이스라고 보면 되죠. 근데 그 가상 멘토의 형상이 어땠는지, 이젠 모두 아시죠?”
최지연은 위트있는 농담을 던진 듯 신입사원들을 바라보며 웃었다. 그 당시에는 파격적이었지만 지금은 당연하게 느껴지는 멘토의 형상은 마치 인터랙트가 일궈낸 혁신으로 보일 지경이었다.
“맞아요. 그 아이가 미래에 성인이 되었을 때의 모습을 외형 시뮬레이션을 통해 생성해 냈어요. 즉, 미래의 성인이 된 아이의 모습을 가진 멘토가 그 아이의 이름을 그대로 본떠서 인터랙트 장치에 심어진 거죠. 멘토는 사용자 부모를 직접 엄마나 아빠라고 부르며 깊은 애착 관계를 형성시켰어요. 다들 아시겠지만, 홀로그램으로 빛을 쏴서 입체적인 3D 형태로 부모들과 상담을 진행했죠. 그런 모습을 보면 정말 미래에서 온 자신의 아이와 대화하는 듯한 묘한 기분이 들지 않겠어요?”
그 후로도 최지연 씨는 인터랙트 서비스가 얼마나 정교하고 체계적으로 아이의 성장을 도모하는지에 대해 오랫동안 설명했다. 수연은 그 내용들에 전부 동의하면서도 최지연 씨가 말하지 않는 부분들이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녀는 인터랙트 서비스로 인해 경쟁이 오히려 더욱 과열되었다는 일부 여론이나 가상 멘토의 외형으로 인해 실제 아이와 가상 멘토를 혼동하는 인지 부조리 현상에 대해서는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그 당시에는 인터랙트의 교육팀장으로서 당연히 배제해야 하는 내용들이라 여겼지만, 수연이 인지 부조리 현상을 직접 목격한 후부터는 인터랙트의 부작용에 대한 생각이 많아졌다.
수연은 지난주 인터랙트 본사의 바닥에 쓰러져 울부짖던 한 아이의 어머니를 자주 떠올렸다. 인터랙트 의존증에 걸려 아이를 방치한 결과 그 아이는 어린 나이에 스스로 세상을 떠났다. 그 어머니는 마지막 순간까지도 아이의 사망 소식을 제대로 인지하지 못하며 가상의 인물이 죽을 리가 없다는 말만 반복했었다. 그 어머니가 마지막에 터트린 울음은 어떤 마음을 담고 있었을까? 그 울음 뒤에는 사랑이 진정 담겨있긴 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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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화라인의 건너편에서 파르르 떨리는 목소리로 한 여성이 말했다.
“도와주세요.”
그 목소리에 덕지덕지 묻어있던 절박함은 수연에게 고스란히 넘어와 수연의 감각들을 깨우기 충분했다. 신입사원 응대 매뉴얼에서 가장 강조되었던 항목인 당황하지 말기를 머릿속에서 되뇌며 최대한 따뜻하고 차분한 목소리로 답했다.
“네, 인터랙트는 언제나 부모의 편에 서 있습니다. 어떤 것이 필요하신지 말씀해 주시면 최선을 다해 돕도록 하겠습니다.”
첫 마디에 느껴졌던 어눌한 한국어는 여성의 두 번째 문장에서 더욱 또렷하게 드러났다.
“인터랙트에 다르게 생긴 이름 등록하기 원해요.”
여성은 비밀 이야기를 하듯 속삭이며 말했지만, 그녀의 요청은 마치 살려달라고 외치는 안락사 직전의 개의 울음과 닮아있었다.
무슨 말인지 이해가 어려웠다. 외국인은 국적에 따라 해당 국가에 허가된 인터랙트를 사용하는 것이 원칙이었다. 물론 아직 외국에서 인터랙트는 보편화되지 않았지만, 이 또한 다른 국가들은 대한민국에 비해 육아 멘토링 산업이 발달하지 않아서였다. 종종 인터랙트를 받기 위해 대한민국으로 찾아와 아이를 출산한다는 사례들은 보았으나, 흔치 않은 케이스였다.
게다가, 또 다른 이름을 등록한다는 것은 불가능했다. 인터랙트는 여러 명이 함께 공유하는 장치가 아니었다. 한 명의 고유한 생체 데이터를 기반으로 아이가 성인이 될 때까지 지속적으로 아이의 삶에 동반하는 시스템이다. 그렇기에 이미 등록된 인터랙트에 또 다른 이름을 등록하는 것은 둘 중 하나다. 아이가 죽었거나, 인터랙트를 훔쳤거나.
아이가 죽었다면 인터랙트 서비스는 즉시 중단되며 기기에 연동되어 있던 아이의 생체 데이터는 영구 삭제된다. 그동안 납부했던 인터랙트 사용료는 전액 환불되기에, 부모들은 마치 한 번도 인터랙트를 사용한 적 없던 것처럼 다시 삶을 영위해 갈 수 있다. 만약 아이가 죽은 것이 아니라 이 여자가 인터랙트를 훔친 것이라면 더더욱 본사 안내 데스크로 떳떳하게 전화할 리가 없다. 블랙마켓에서 수천만 원의 돈을 받고 시스템의 이름과 데이터를 바꿔주는 해커에게 가는 것이 훨씬 자연스러운 행동이다.
길게 느껴진 정적에 무슨 말이라도 해야 할 것 같다고 느낀 그때, 여성이 말을 보탰다.
“아이를 잘 키우고 싶어요.”
한마디를 겨우 내뱉은 후, 수화기 너머로는 물속에서 들릴 듯한 울음이 들렸다. 소리 없이 공기만을 삼켜내는 울음. 수연은 한 인간의 가장 비밀스러운 처참한 울음을 자신이 듣고있어도 될지 고민했다. 고작 말 몇 마디였지만 수연은 알 수 있었다. 이 여성을 도와야 한다.
“지금 인터랙트에 등록된 이름은 누구의 이름인가요?”
수연은 천천히, 또박또박 단어 사이에 쉼을 두며 말을 이었다.
“몰라요.“
수연은 주먹을 꽉 쥐었다. 옆에서 선배가 심상치 않은 분위기를 읽고 쳐다보는 게 느껴졌다. 조금만 더 망설이다간 선배가 수화기를 뺏어갈 게 분명하다.
씩 웃으며 친절한 목소리로 수연은 마지막 한마디를 뱉어냈다.
“네, 문제없습니다. 인터랙트를 들고 저를 찾아오세요.
인터랙트 본사 리셉션 데스크, 정수연이었습니다.“
딸깍.
대답을 듣기도 전에 끊어버렸다. 수연은 이 대화가 다른 사람에게 흘러 들어가면 안 된다는것을 본능적으로 알았다. 대기업이 고른 직원들은 역시나 대기업의 대리인일 뿐이었다. 매일 쏟아지는 문의 사항과 컴플레인에 파리를 쫓아내듯 한껏 찌푸린 표정으로 일들을 쳐내는 듯 했다. 오랜 시간 훈련된 선배들일수록 그 본심을 숨기는 능력은 더더욱 대단했다. 회사 내규 때문에 도움을 드릴 수 없다는 그 결론은 늘 가장 달콤한 눈빛을 타고 흘러나왔다.
수연은 주문을 외듯 속으로 수차례 말했다. 꼭, 꼭 저를 찾아오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