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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빠나무 Mar 26. 2020

사재기와 재난 문자의 심리학

 전 세계가 사재기로 난리다. 마트에 물건이 동난 사진이 여기저기 걸린다. 그런 모습을 국민성이 낮다고 비웃는 사람도 있고, 저런 것이 행동력이라고 칭찬하는 사람도 있다. 평가는 어떻든 좋다. 사람들은 왜 사재기를 하는 것일까?


 정신건강의학과 질환 중, '수집광'이라는 질병이 있다. 물건을 모으고 모으고 또 모으는 사람들이다. 수집광인 사람의 집에 가면 발 디딜 틈이 없다. 온갖 물건이 놓여있다. 이건 쓰레기 아닌가? 싶은 것들도 놓여있다. 딱히 정리되어 있는 것도 아니다. 심각한 사람은 초등학교 때 쓰던 색연필도 집에 놔둔다. 이들에게 물건을 버리도록 만들면 늘 같은 대답이 돌아온다. "아... 이건 곧 쓸 것 같은데요. 저건 언젠가 쓸 거예요. 그건 아직 쓸 수 있어요. 유용한 물건이에요." 여기까지 읽으면서 많은 사람들이 자기 이야기인 것 같아서 놀랐을 것이다. 증상 심각도는 다르지만, 많은 사람들이 느끼는 감정이기 때문이다. 물건 못 버리는 사람이 많아서 TV에서 버려주는 사람이 나왔던 적도 있을 정도니 말이다.


 사재기는 수집광의 마음속에 펼쳐지는 일들이, 사회적 상황에서 일반적인 사람의 마음속에서도 급격하게 펼쳐지면 일어나는 일이다. 수집광의 마음속을 잠깐 들여다보자. '이 물건이 내가 필요할 때 없으면 큰일 날 거야.', '이 물건을 버렸는데 필요하면 다시 사야 하니까 내가 손해를 보게 돼. ', '이 정도는 있어야 안심이 돼. 부족하면 큰일이잖아.', '어쩌면 이 물건은 다시 살 수 없을지도 몰라. 그럼 나는 큰 위기에 빠질 거야.' 대략 이런 마음이다. 수집광들에게는 이런 마음이 거의 항상 일어나고 있는 것이고, 사재기를 하는 사람들에게는 주변의 다양한 사건에 의해 이 마음을 일시적으로 생겨나는 것이다.


 결국 핵심은 '불안'이다. 사재기를 하는 사람을 욕하고, 도덕적이지 않다고 비난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 제도적으로 물건을 못 사게 하는 것은 잠시 효과를 볼 수 있으나, 불안이 제도를 넘어서는 순간이 오면 무용지물이 된다. 그럼 불안은 어떻게 줄일까. 불안은 그와 관련된 사항을 명확하게 알수록 줄어든다. 세상에서 가장 공포스러운 것은 모르는 것이다. 귀신의 원리에 대해 명명백백하게 밝혀지면 귀신이 무서울까? 공략법을 완벽하게 알고 있는 미로에 들어가는 것이 불안할까? 그렇지 않다. 그런 면에서 나는 정부가 귀찮을 정도로 자주 보내는 재난경보 문자가 고맙다. 계속해서 알려서, 전 국민의 불안을 줄이고 있다. 우리나라에서 사재기가 발생하지 않는 이유라고 생각한다. 코로나 자체에 대한 불안은 어쩔 수 없지만, 다른 불안을 충분히 줄여줬기 때문이다. 그래서, 재난 문자가 너무 자주 와서 귀찮다는 사람들의 의견이 불편하다.


 유명한 시를 흉내 내면서 글을 마친다.


 재난문자 함부로 뭐라 하지 마라. 너는 누구에게 한 번이라도 안심을 주었는가.


사진 출처 : John Cameron on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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