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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쇄병동 일기 - 시작하는, 입원

by 아빠나무

2월 28일 저녁 11시. 대학병원 인턴 수련을 마치고, 정신과 레지던트에 합격한 나와 동기들은 떨리는 마음으로 폐쇄병동 문 앞에 서 있다. 각자 손에는 옷이 가득 든 캐리어와 두툼한 이불이 들려있다. 11시는 폐쇄병동 환자들이 모두 방으로 들어가서 취침을 해야 한다. 잠이 오지 않더라도, 본인의 침대에 누워있어야 한다. 잠은 정신질환에 중요한 요소이므로, 규칙적인 수면은 병동에서 지켜야 할 중요한 규칙이다. 나와 동기들은 환자들이 꿈나라에서 노는 동안, 병동 내부에 있는 당직실에 짐을 풀어야 한다. 두꺼운 철문을 조심스럽게 열고 앞으로 1년간 살 곳으로, 우리는 도둑고양이처럼 살금살금 들어간다. 저녁 11시에는 오후 3시부터 낮시간을 일한 간호사와 저녁 11시부터 일 할 간호사가 병동에서 일어난 일에 대해 전달하는, 인계를 하는 시간이다. 같이 일 할 간호사에게 허리만 숙여 인사를 하고 당직실로 들어간다.


당직실은 책상 두 개, 침대 두 개, 옷장 두 개가 놓여있다. 그 옆에 환자 상태를 확인하기 위한 설문지가 산처럼 쌓여있다. 저 많은 종이가 1년이면 다 쓰인다는 사실을 들었을 때는, 자원 낭비가 아닌가 하기도 했다. 종이산 사이에 덩그러니 놓여있는 기계는, 1970년대에 만들어진 전기치료기계였다. 독일산이지만 오랜 세월을 이기지 못하고 고장 난 채 방치되어 있다. 버리기는 아까운 건가. 여하튼 삭막한 당직실이다. 선배 레지던트들이 잤던 매트리스는 스프링이 반쯤 꺼져 있었지만, 잔뜩 긴장한 나는 어쩐지도 모르고 이불을 깔았다. 3월 1일부터 레지던트 1년차다. 의사 모두가 다시는 하기 싫다는 1년차. 이등병보다 더하다는 1년차. 몸이 굳는 느낌이다. 어서 자야 한다는 압박감이 오히려 잠을 설치게 만들까 걱정이다. 병동 환자들이 처음 입원하면, 어떻게 자냐고 물어보고 걱정한다. 그렇지만 대부분 12시면 잠이든다. 나도 어느새 잠이 들었다.


레지던트 1년차. 자의로 폐쇄병동 입원. 병동 일기 시작.


사진 출처 : Daan Stevens on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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