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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쇄병동 일기 - 매일 작은 축제가 열리는, 식당

by 아빠나무

나는 허둥지둥 샤워를 끝내고 나와, 당직실을 벗어나서 스테이션으로 이동했다. 간호사들이 서류 작업을 하고, 각종 처치 준비를 하는 곳을 병원에서는 스테이션이라고 부른다. 스테이션 뒤쪽으로는 탕비실이 있다. 동기들과 간호사들이 돈을 모아 사놓은 간식거리 중, 식빵을 꺼내 간단하게 토스트를 만든다. 아침을 먹지 않으면 힘이 안 난다. 우유와 토스트를 먹고 있으니, 초인종이 울린다. 닫힌 철문이 열리고, 급식차가 들어온다. 환자들의 축제, 식사 시간이 시작되는 신호이다.


사실 폐쇄 병동은 엄청나게 지루한 곳이다. 밖에서는 엄청 심각해 보이는 환자가 들어가니까 안에서 난장판이 일어날 것이라고 생각하겠지만, 사실 그렇지가 않다. 밖에서는 난리를 치던 환자도 병동에 들어오면 어느 정도 조절이 된다. 정말 180도 달라지는 경우도 있다. 처음에는 철문에 무슨 마법이 걸려있나 싶기도 했다. 여하튼, 규칙적인 생활이 중요한 병동이기 때문에 다이내믹 코리아에서 살다가 들어온 환자들은 반복되는 일상에 지루해하는 경우가 많다. 그 지루함 속에서 가뭄의 단비 같은 시간이 식사시간이다. 심각한 우울증이나 거식증 환자 정도를 제외하면, 급식차 소리만 들려도 식당으로 모여든다.


대학병원 급식은... 맛이 없다. 학생 때 받던 급식에서 소금기가 줄고, 칼로리도 적어진다고 생각하면 편하다. 맛있을 리가 없다. 환자들은 이런 열악한 상황에서, 다양한 방법으로 맛을 추구한다. 대표적인 방법으로는 가족들에게 부탁하여 반찬을 받아 놓고, 병동 냉장고에서 식사시간 때마다 꺼내 먹는 방법이다. 이때 어머니에게 감사하며 우는 환자도 봤다. 아들이 조증 상태에서 그렇게 사고를 쳐도 매 입원마다 정성스럽게 반찬을 해서 냉장고에 넣어주시는 어머니의 사랑은, 옆에서 보는 것만으로도 대단하다고 느껴진다. 또 다른 방법은 마법의 음식 라면을 이용하는 방법이다. 병동 식당에는 위험 문제로 조리기구는 없지만, 뜨거운 물을 받을 수 있는 정수기가 항상 있다. 이 뜨거운 물로 식사 시간에 컵라면과 같이 밥을 먹거나, 가끔 김칫국에 신라면 가루를 첨가하여 맛을 끌어올리는 분도 있다. 생생우동의 간장 비슷한 맛이 나는 액상수프는 여러 국에 잘 어울리고, 심지어 그냥 야채를 찍어먹기만 해도 맛있다는 환자의 말에 신기해했던 기억이 난다.


식사가 끝나면 이어지는 후식 타임은, 환자들의 수다 시간이다. 급신판을 모두 치우고 과자와 과일을 쌓아놓고 시작하는 수다는, 정말 많은 이야기가 오가는 시간이다. 처음 환자분들에 대해 파악하는 연습을 할 때, 이 수다에 섞여서 이야기를 나누었다. 환자가 숨기고 있는 증상을 찾아내겠다는 음흉한 생각을 가지고 접근하는 의사에게, 환자들은 과자와 과일을 나누어주며 여러 가지 이야기를 해 주었다. 결국 증상에 대해서는 하나도 못 찾고, 환자들과 신나게 수다 떨고 돌아와서 선배 의사에게 혼났지만, 그 시간은 정말 재미있었다.


이 세상 누구나 좋아하는 식사, 폐쇄병동에서도 맛있게. 식사 완료.



사진 출처 : Matthew LeJune on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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