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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쇄병동 일기 - 부모의 눈물이 묻은, 탁구장

by 아빠나무

많은 병동을 본 것은 아니지만, 글쓴이가 본 폐쇄 병동에는 늘 탁구대가 있었다. 병동 밖으로 나가는 것이 어려운 환경이기 때문에 운동이 부족하기 쉬운 병동에서 탁구는 이상적인 운동이다. 적당한 공간만을 차지하고, 위험하지 않으며, 누구나 조금만 하다 보면 익숙해지고, 상당히 운동량도 많다. 환자들도 지루함을 달래기 위해 탁구를 자주 친다. 의사들 중에도 환자와 교류 및 운동 관련 부작용 파악을 위해 탁구를 치기도 하고, 글쓴이도 그런 부류에 속했다. 그렇게 평일은 환자와 실습학생, 의사도 모두 탁구를 치는 건강한 운동의 시간이 탁구장에서 흐른다.


하지만 주말에는 조금 더 특별한 의미를 가진 시간이 탁구장을 차지한다. 이 특별한 의미를 이야기하기 전에, 먼저 폐쇄병동 입원에 대해 추가적인 설명이 필요하다. 글쓴이가 근무하는 병동은 평일에 치료적인 목적을 제외하면, 가족들이 방문하는 것을 가능한 피하도록 하고 있다. 보통 환자가 안정되기 위해 필요하다고 설명하지만, 사실은 가족들이 안정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이다. 아직 정신건강의학과 질환에 대한 거부감이 강한 우리나라에서, 자식이 어떤 증상을 보인다고 쉽게 외래를 방문할 수 있는 부모는 없다. 그런데 입원은 오죽하겠는가. 보통 환자가 더 이상 통제되지 않을 정도로 증상이 악화된 이후에야 입원이 진행된다. 그렇게 입원이 진행되고 나면 가족들은 진이 빠져있다. 그리고 죄책감, 허무함, 미안함이 가족들을 둘러싼다. 가족들도 정리할 시간이 필요하다. 그렇지만 많은 부모들이 자신이 정성을 들이면 환자가 좋아질 거라고 믿고, 매일 병원을 방문하려고 한다. 더 지치고, 더 힘들겠지만 그렇게 하려는 부모들의 마음을 보면 속이 매캐해진다. 그렇지만 부모가 완전히 지쳐버리면 추후 치료에 악영향이 있기에, 강제로 쉬게 만들기 위해 평일 방문을 지양하는 것이다.


부모들이 그렇게 죄책감, 허무함 등의 감정을 가지고 쉬면서 이래도 되나?라는 생각을 가질 때쯤 주말이 온다. 그리고 내 아이가 어떻게 되었을까, 완전히 변해버렸으면 어떻게 할까 등등의 수많은 걱정을 안고 병동을 방문한다. 대부분의 경우 1~2주가 지나면 급성기 증상이 없어지기 때문에, 부모가 방문할 즈음이면 상당히 이전 모습을 되찾은 자식이 부모를 반긴다. 부모들은 매우 기뻐한다. 이야기도 나누고, 시간을 보낸다. 담당의사는 면담이 밀려있어서 기다려야 한다고 한다. 탁구대가 눈에 보인다. 자식이 자기 탁구 잘 친다고, 부모님에게 같이 해볼라냐고 묻는다. 그리고 같이 탁구공을 주고받으며, 부모는 눈물이 흐른다. 내 자식이 그대로구나. 아니 더 건강해졌구나. 자식이 왜 우냐고 묻는다. "아니, 너랑 탁구 처음 쳐봐서... 이런 것도 같이 안 해봤었다고 생각이 드니까 눈물이 나네. 우리 나가면 안 해본 것 같이 많이, 많이 하자." 부모는 거짓말을 한다. 그 거짓말이, 글쓴이는 지금까지 들은 거짓말 중 가장 슬프면셔도, 가장 따뜻한 거짓말이라고 생각한다.


부모가 안심하는, 그리고 새로운 가족이 되는 탁구장. 운동 완료.


사진 출처 : Dennis Cortés on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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