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과나 외과 병동에는 없지만, 폐쇄병동에만 있는 시설이 몇 개 있다. 그중에서도 가장 독특한 공간이 회화실이다. 놓여 있는 물건은 사실 별다를 것이 없다. 뺑 둘러서 앉게 되어있는 책상과 의자, 미술 도구들이 들어있는 서랍, 그리고 이전에 그린 사람들이 남겨 놓은 작품들이 전부다. 서랍이 자물쇠로 잠겨있다는 것만 제외하면, 그림이 많이 걸려있는 회의실 같다고 느껴질 것이다. 그렇지만 회화시간에 이곳은 환자의 감정이 마법처럼 나타나는 공간이 된다.
예술에 재능이 없는 글쓴이는 학교 수업 중 미술 수업이 제일 힘들었다. 그림을 그리면서도 흉내를 내고 있다는 느낌이지, 그림을 그린다는 느낌이 아니었다. 예술이라기보다는 작도를 하는 느낌이라고 하면 조금 더 이해가 쉬울까. 내 마음에서 뭔가를 끄집어내서 그린다는 말이 도무지 이해되지 않았다. '작품에 그때 작가의 감정이 담겨있고...' 이런 말들이 TV에서 나올 때마다 글쓴이는 그 사람들이 연기를 하는 것은 아닌가 의심을 했었다. 영화 기생충에서 제시카가 schizophrenia zone이라고 둘러대는 것처럼, 뭔가 짜 맞추는 것 같았다. 그저 잘 그려보고 싶은데, 그렇게 못하는 내 손을 탓했었다. 잘 그리면 모두가 좋아하고 우러러보니까 그러면 된 것이라고 생각했다.
사실, 대부분의 환자분들이 그림 그리는 것을 귀찮아한다. 미술치료라는 권유에 마지못해 그리는 경우도 많다. 그러나 가끔, 그림에 대한 재능과는 상관없이, 자신의 감정과 생각을 그려내는 환자분이 나오면 깜짝 놀라게 된다. 그림을 그리는 기술은 아무 상관이 없었다. 정말 못 그린 그림인데, 두세 시간을 면담해도 못 느끼던 환자의 내밀한 생각과 감정을 한순간에 느끼도록 해 준 경우도 있었다. 아, 이것이 감정이 담긴다는 것인가. 환자가 언어로 표현하기를 그렇게 어려워했던, 그 감정을 이렇게 절절하게 표현하는 것일까. 가끔 한글을 막 배운 할머니들이 지은 시를 볼 때가 있다. 삐뚤빼뚤한 글씨와 어색한 문법에도 불구하고, 할머니들이 담은 감정과 생각만은 강렬하게 다가온다. 환자들이 그린 그림에서도, 그렇게 감정이 다가온다. 그리고 그 감정에 감동을 느꼈다.
정신건강의학과 의사로 살면서 언제나 환자들에게 배운다. 그리고 회화실에서 배운 것은, 예술과 관련된 뭔가를 할 때 너무 잘하려고 할 필요 없다는 것이다. 물론 예술을 업으로 삼는 분은 잘해야겠지만, 우리가 집중해야 할 것은 생각과 감정을 담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걸 표현하기 위해 최소한의 연습은 필요하겠지만, 그것 이상을 하려는 것이 오히려 진정한 예술을 방해한다. 당신의 생각과 감정을 쏟아보자. 남들 보기 부끄럽다는 걱정이 들겠지만, 조금 참고 일단 해보자. 어딘가 걸어 놓고 계속 해나 가보자. 어느새, 당신은 예술을 하고 있을 것이다. 글쓴이도 이렇게 써 나가는 것이 부끄럽지만, 계속해보겠다.
감정과 생각을 그대로, 그게 예술. 작품 완성 - 회화실 종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