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과 의사로서 나는 많은 소수자를 만난다. 정신과 질환을 앓는다는 것 하나만으로 그들은 소수자로 취급된다. 장애를 가지거나, 사회 주류에 참여하기 어려울수록 정신과적 질환을 가질 가능성이 높다. 결국 나는 소수자 중에서도 더 힘든 소수자들을 만난다. 그들은 나를 만나 힘듦을 호소한다. 그들은 그곳에 분명히 존재하고, 고통받고 있으며, 도움이 필요하다.
그렇지만 내가 그들을 찾기 전까지 나는 그들이 존재하는지 조차 알지 못했다. 그들은 스스로를 숨긴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숨기도록 강요당한다. 그들은 자신을 숨기지 않으면 고통받는다는 것을 오랜 경험을 통해서 확실하게 알고 있다. 숨길 수 없는 정도라면 격리당한다. 도시 외곽 허름한 건물, 시골 수용시설, 구도심 관리되지 않는 건물, 병원 등에 모이게 된다. 그들은 본능적으로 느낀다. 대다수의 1등 시민들이 보지 못하는 곳에, 보지 않는 곳에 2등 시민들이 수용된다는 것을.
그래서 가장 끔찍한 일은 그들이 모이는 곳에서 벌어진다. 형제복지원 등 소수자가 모여있는 곳에는 언제나 인권을 묵살하는 문제가 발생할 가능성이 있다. 우리는 인권유린을 자행한 시설 내 권력자를 비난하지만, 그들을 사회로 받아들여야 한다는 외침에는 침묵했다. 그들이 가진 문제를 그들 스스로가 떠안은 채로 모여있는 것이 가장 싸고, 쉬운 해결 방법이기 때문이다. 격리된 공간에서 문제를 겪고 있는 그들은 일반적인 시민 기준에서는 한참 뒤떨어진 사회를 만들게 되고, 더욱 고통받는다. 불행은 불행을 낳는다.
오물은 한 곳에 모아서 치워야 한다는 발상은 이제 적용되지 않는다. 그들이 떠안고 있으면 되었던 문제가, 이제는 우리 모두에게 영향을 미친다. 우리는 더 이상 그들을 격리하면 안 된다. 우리는 그동안 성소수자라는, 분명히 존재하는 그들을 애써 무시하고 남의 일로 여겨왔다. 그들이 가진 성 정체성이 장애인지, 고쳐야 할 것인지, 인정해 줘야 할 것인지는 지금 당장 중요하지 않다. 우리는 그들이 분명히 존재하는 인간이고, 그들을 차별하고 손가락질할수록 폐쇄적인 사회를 만들어, 결국 일반 시민에게 그 손가락질보다 더 큰 문제가 돌아올 것이라는 사실을 인정해야 한다.
이는 비단 성소수자만이 아니다. 신천지도 결국 사회적으로 적응하기 어려워하는 젊은이들이 격리된 곳이다. 문제는 놔두면 편하지만, 점점 곪는다. 우리는 그들의 문제가 커지기 전에 어떻게 지원하고 어떻게 도울지 고민해야한다. 그들이 아무 잘못이 없다는 것은 아니다. 그렇지만 방치한 우리도 죄가 없다고는 못한다. 우리는 우리 사회의 소수자들을 받아들이기 위해 준비해야한다. 그것이 전체적으로 우리에게도 이득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