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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물비늘 Dec 13. 2022

편식과 편견

밥도둑이 목숨을 뺏어갈지도...

“이런 바보. 이 맛있는 것도 못 먹고.”

초등학생(정확히는 국민학생) 5학년 때쯤이었다. 엄마는 게장을 못 먹는 나를 보며 놀리듯이 말했다. 그러면 내가 오기로라도 먹을 줄 아셨나 보다.

게장이 먹기 싫어서 그런 게 아니었다. 먹으려고 시도했지만 그때마다 불쾌한 느낌이 있었다. 혓바닥이 가렵다 못해 목구멍까지 가려운 그 불쾌한 느낌이 뭔지 알게 됐다. 알레르기였다. 생갑각류를 먹을 때만 그런 증상이 있었다. 아마 억지로 꾸역꾸역 먹었다면, 기도가 부어올라 숨을 쉴 수 없었을 것이다. 목을 긁으며 죽어갔겠지.

세상에는 우유를 먹으면 죽는 사람들이 있다. 흔하게 우유를 잘 소화하지 못하는 유당불내증 정도가 아니다. 급격한 아나필락시스(특정 물질을 극소량만 접촉하더라도 전신에 증상이 나타나는 심각한 알레르기 반응)를 일으켜 죽을 수 있다.

이런 증상이 땅콩, 달걀, 해산물, 과일, 백신, 페니실린 계열의 항생제나 해열진통제로 인해 생길 수 있다고 한다.

하지만 트위터에는 사소한 무관심과 무성의, 혹은 결과를 가볍게 보는 고의적인 행동에 의해 생명의 위협을 느낀 경우의 글이 종종 올라온다.

“분명하고 확실하게 말했어요. 우유 대신 두유를 넣어달라고. 종업원은 알았다고 하더니 그냥 우유를 넣어서 줬어요. 그리고 저는 그 덕에 한 달 동안 병원 신세를 졌죠.”

“설렁탕 집에 가서 우리 애가 알레르기가 있으니 국물에 땅콩을 가루 넣으면 이야기해 달라고 했죠. 사장이 절대 아니라고 했는데, 애가 국물 먹다 쇼크 와서 응급실로 실려갔어요.”

‘편식은 나쁘다’라는 세뇌 학습과 ‘먹을 것에 까탈 부린다’라는 아니꼬움이 발현될 때,  혹은 ‘이 정도야 티도 안 나는데 문제 있겠어?’라는 대책 없는 안일함이 사람을 죽일 수 있다. 비유가 아니라 정말 사람이 그 정도로 죽.는.다.

알코올에 반응하는 알레르기도 있다.
 술 알레르기가 있어 마시면 안 된다는 군대 동기를 군대 고참들은 이해하고 절대 술을 먹이지 않았다…. 는 뻥이다. 대한민국 군대가 그럴 리가 없잖은가? 당연히 이렇게 소리쳤다. 

“야, 무슨 개소리야. 너 죽으면 내가 책임질게! 어디서 말 같지도 않은 구라를 치고 있어!”

그러던 고참들은 잠시 후 사색이 되었다. 소주 한 잔에 동기의 온몸에는 붉은 반점이 솟아났는데, 순식간에 파충류 외계인 같은 모습으로 변했다. 다행히 그 동기는 건강에는 이상이 없었고, 고참들은 더이상 술을 권하지 않았다.

세상에는 오이혐오자들이 생각보다 많다.

먹어서 사람이 죽는 것은 아니지만 세상에는 오이를 싫어하는 사람들이 꽤 있다. ‘오이 혐오자들’이라고 불리기도 하는데, 생오이는 물론, 오이비누, 오이피클도 극도로 싫어한다. 물컹한 식감의 음식을 싫어하는 사람처럼, 그저 오이의 향이 싫은가 보다 했는데 사실은 전혀 달랐다.

생존을 위한 진화는 유난히 독을 잘 구분할 수 있는 유전자(TAS2R38)를 심어 놨는데 그런 유전자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은 쓴맛에 아주 민감하게 반응한다고 한다. 오이와 참외, 수박, 멜론, 호박 등 박과 식물은 벌레나 초식동물들에게 먹히지 않도록 큐커바이타신(cucurbitacin)이라는 독성물질로 자신들을 보호한다. 과일이 잘 익으면 이 물질은 약해지지만 TAS2R38 유전자가 강하게 발달한 사람은 쓴맛을 일반 사람의 1,000배 더 느낀다고 한다. 주식에 투자에서 만원 번 사람과 천만 원을 버는 사람, 홈런을 하나 친 사람과 천 개를 치는 사람, 골을 하나 넣은 사람과 천 개를 넣는 사람의 차이다.


고수는 또 어떨까? 고수 역시 유전자에 의해 호불호가 갈린다. 고수에는 비누와 로션에도 들어가는 알데하이드라는 성분이 있는데 후각 수용체인 OR6A2가 변형된 사람들은 이 성분의 냄새를 다른 사람들보다 더 강하게 감지한다고 한다. 고수를 못 먹는 사람은 고수를 먹으면 화장품 먹는 맛이 난다고 하는데(나 고수 못 먹는 사람) 이런 이유인 것이다.


페스코 채식을 4년간 한 적이 있었다. 육고기는 안 먹는다고 이야기를 해도 도대체 인정하지 않는 사람들이 있다. 그런 사람들은 아래와 같은 말을 즐겨한다. 

“닭은 괜찮지?”

-닭은 고기가 아닌 이유는?

“이 소시지는 정말 맛있어!”

-맛없어서 안 먹는 게 아니라니까!

“그래도 고기는 먹어야지”

-왜요? 

”고기를 먹어야 힘이 나지”

-브레드 피트는 비건이랍니다.

‘아~ 그랬구나. 내가 몰랐구나. 이런 경우도 있구나’하면서 그냥 인정하는 게 왜 그렇게 어려울까? 다수에 의해 패턴화 되어 있는 루틴을 소수를 위해 바꾸기 싫은 마음일까? 결국, 마음의 여유가 없어서 그런 걸까?

큰돈이 들어가는 것도 아닌데, 왜 그럴까?

앗! 혹시 남의 말을 듣는 유전자에 이상이 있는 걸까? 그… 그렇다면 정말 미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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