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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유의 길(10): 단테의 지옥

고통을 통과해야만 도달하게 되는 삶

by root
‘길을 잃었다’라는 단테의 자각은 그동안 내가 걸어온 삶이 더 이상 스스로에게 설득력을 갖지 못하게 되는 순간을 의미한다.

‘길을 잃는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우리의 삶은 미래의 한 지점을 향해 이어진 길처럼 보입니다. 우리는 열정적으로 어떤 선택을 하고, 계획하고 쌓으면서 계속 나아갑니다, 그러나 어느 순간에 그 모든 것들은 마치 전혀 나아가지 않은듯 무거운 정적으로 대체되어 우리를 짓누릅니다.


단테는 그 순간을 ‘인생의 한 가운데서 길을 잃고 어두운 숲속에 있었다’로 표현했습니다. 풍족함을 누리는 것으로 보이는 사람이나 그렇지 않은 사람이나 모두 문득 그 방향을 잃게 됩니다. 하지만 우리가 성실하게 걸어왔던 길 그 자체가 없어진 것은 아닙니다. 문제는 길이 아니라 지금껏 열심히 걸어왔던 그 길의 의미를 더 이상은 신뢰하지 못하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길을 잃었다’라는 단테의 자각은 어떤 한 지점에서의 실패 또는 위기를 말하는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그것은 내가 걸어온 삶이 더 이상 스스로에게 설득력을 갖지 못하게 되는 순간을 의미 합니다. 바로 그 지점에서 우리는 단테가 말했던 ‘어둠’속으로 한발 내딛게 됩니다. 그 어둠은 외부로부터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내면 깊숙한 곳으로부터 솟구치는 물음으로서의 사건입니다. ‘내가 여기까지 왜, 무엇을 위해서 온것인가?’와 같은 물음은 대답을 요구하지도 않습니다. 오직 달아나지 않고 ‘마주할 것’을 요구합니다.

우리는 고통을 통과하려 하지 않고 그냥 지나치거나 흘려보내려 한다

우리는 불안과 고통을 '관리‘ 해야 하거나 ’일시적인 상태‘로 정의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감정들을 조절하면서 긍정적인 사고를 하도록 하고, 문제를 재빨리 처리해내는 것을 미덕으로 여기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단테는 우리에게 이렇게 물을 것입니다. ’당신은 그 고통을 통과했는가?라고 말입니다. 이 물음은 단순하게 ‘견딤’이나 ‘회피’만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그 고통의 한가운데를 관통해서 정면으로 마주한것인지를 묻는 것입니다.

단테의 지옥은 이러한 물음 앞에서 진정성있는 응답으로 채우지 못한 자들이 머물게 되는 공간입니다. 변명을 하거나 타인의 탓으로 돌리는 자, 무관심한 사람 등 그들 모두가 공통으로 유지하는 단 하나의 태도를 발견됩니다. 그것은 바로 ‘자기 스스로에게 침묵한 자들’이라는 것입니다. 자신의 삶에 맞닥뜨린 고통의 정체를 그 바닥까지 파고들지 못한 이들이 그 고통을 끊임없이 반복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지옥은 형벌이 아니라 이러한 ‘회피가 끝없이 되풀이되는 구조’입니다. 단테는 그곳을 지나치지 않고 내부로 천천히 내려갑니다. 그리고 자신의 내부에 도사리고 있는 분노, 질투, 두려움, 부끄러움, 고립감, 책임의 회피와 같은 내부의 그림자를 마주합니다. 이를 통해 그것들의 민낮이 어떤 것인지 구체적으로 살피는 것 바로 그것이 단테가 선택한 방식입니다.


통과되지 않은 고통은 사라지지 않는다

우리에게 어떤 고통으로서의 사건을 피할 경우 우리는 생존할 수는 있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그럴 경우 우리는 회복할수도, 변할수도, 성장할수도, 그리고 무엇보다 진정한 전환도 일어나지 않을 것입니다. 단테는 우리에게 ’통과되지 않은 고통은 사라지지 않는다‘는 사실을 전하고자 했을 것입니다.


우리 내부에서 ’통과되지 않은 것‘들은 오히려 더 깊숙이 숨어 있다가, 삶의 취약한 지점을 찌릅니다. 감당할 수 없는 상실이 우리는 냉소적으로 만들거나, 마주하지 않은 분노는 타인 혐오로 돌아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그 고통이 누구의 것이었는지 조차도 모르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단테가 ’지옥‘이라고 부른 이유입니다.


우리의 귀향이란 ’되돌아가는 것이 아니라 도달하는 것‘이다

단테는 지옥의 바닥, 연옥과 천국을 지납니다. 회피나 지나침이 아닌 ’통과‘로서의 그의 여정을 통해 도망치지 않았음과 자기 자신을 끝까지 응시했음을 보여주었습니다. 우리는 흔하게 집이든 고향이든 어딘가로 “돌아가고 싶다”고 말을 듣습니다. 하지만 진짜 귀향은 원점으로의 회귀라고 할 수없습니다. 그것은 ’통과‘한 사람만이 겨우 디딜 수 있는 새로운 자리인 것입니다. 과거로의 복귀가 아니라 자신의 가장 깊은 어둠을 통과함으로써 도달할 수 있는 자리이자 낯설더라도 더 진실한 자리인것입니다.

단테가 말하고자 한 삶의 전환이란 아무에게나 열려 있지는 않은 공간입니다. 회피하지 않고, 끝까지 내려간 사람 그리고 내면에서 공명되어 나오는 질문에 진실한 응답을 한 사람만이 가 닿는 곳입니다.

그가 지옥을 그려냈다기 보다는 우리 인간의 ’고통을 마주할 용기‘를 통해 변화에 도달하는 구조를 그의 언어로 표현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스스로에게 물어야만 합니다.


’그 고통을 너는 통과했는가?‘

’그 고통을 너는 정면으로 마주하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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