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안전 속에서 죽어가거나, 불안 속에서 삶을 열어간다.
‘진정한 실패'는 높이 날아오르려다 떨어지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처음부터 날지 않기로 마음먹은 바로 그 ‘회피’에 있다.
고대의 하늘을 날아오른 소년이 있습니다. 그는 태양 가까이로 접근했고 그 욕망의 가장자리에서 추락했습니다. 이 이야기를 우리는 ‘교만의 결과’라고 합니다. 하지만 과연 그 소년의 비행이 단순하게 ‘오만함’으로 규정하고 넘겨버릴 만한 이야기인지는 좀 더 음미해볼만한 가치가 있는일입니다.
우리는 이카로스의 신화를 ‘경계를 넘은 자’가 받는 처벌로서의 ‘도덕적 교훈’으로 읽습니다. 그러나 이 이야기를 단순 경고로 소비한다면 주어진 안전함을 거부하고 ‘도전하는 존재’로서의 인간의 본질적인 모습 중 하나를 놓치게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가 감행한 단 한 번의 비행을 성찰해 볼 가치가 있는 것입니다.
반복을 거부하고 하늘을 향한 자
이카로스가 날아올랐던 길은 정해진 경로로부터 이탈된 궤적이었습니다. 살아남는 방법으로서의 충고인 ‘낮게도, 높게도 말고 중간쯤을 날아야 한다’는 지침을 거부한 것입니다. 우리 대부분은 그 지침과 충고를 충실하게 따릅니다. 그리고 삶이 예측가능하도록 규범적인 경로 내에서만 움직입니다.
하지만 그는 더 높이 오르기를 원했고, 더 넓은 세계의 진실을 향해서 몸을 기울였습니다. 이것은 ‘자만’ 이라기보다는 ‘일상의 반복’을 깨려는 그의 ‘결단’ 이었고, 기존의 한계를 넘어서고야 말겠다는 ‘의지’ 였습니다. 모두가 자유로운 하늘을 꿈꾸지만 실제로 땅을 박차고 날아오르는 이는 드뭅니다. 그곳은 불확실과 고독, 그리고 경험해보지 않은 위험이 있기 때문입니다.
이렇듯 추락한 이카로스를 실패자로 묘사하기도 하지만, 오히려 그는 낯선 세계에 스스로를 내맡긴 자였던 것입니다. 그의 비행은 우리 인간이 필연적으로 마주할 수밖에 없는 삶의 무의미, 불안과 마주하는 결단적 행위였습니다. 그는 결단하기 위해 끊임없이 스스로에게 묻고 또 답해야 했을 것입니다. ‘지금 이 안정이 진정한 삶일까? 그렇지 않으면 살아 있다는 착각일 뿐일까?’라고 말입니다.
불확실성으로서의 ‘이상을 향한 도약’은 예외 없이 실패의 가능성을 동반하게 됩니다. 그러나 우리는 ‘살아 숨 쉬는 인간’이므로 안정됨을 뒤로하고 불안 속에서도 자신의 고유한 가능성을 향해 기꺼이 나아가는것을 선택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카로스의 추락은 무가치하다고 할 수 없는 ‘진지한 삶의 비용’인 것입니다. 또한 우리가 그의 추락을 조롱해서는 안 되는 이유는 ‘안전만을 위한 삶’은 우리를 보호함과 동시에 갇히도록 하기 때문입니다.
추락한 자가 아니라 ‘추락할 수 있었던 자’
이카로스는 실패했지만 시도했던 자였습니다. 멈춰 서있지 않았으며 하늘로 날아오름에 자신의 모든 것을 걸었습니다. 그는 떨어진 자가 아니라 스스로를 던질 수 있었던 자입니다. 이렇듯 인간실존의 깊이는 경계를 돌파해 들어가는 생명력을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이카로스를 조롱하는 사회는 결국은 모든 위험성들을 제도화하고 인간으로서의 모든 도전을 비이성적 행위로 간주합니다. 대지를 박차고 날아오르려는 모든 시도는 ‘과잉’으로 낙인찍습니다. 그러한 공동체는 최소한의 평온함을 제공할 뿐 어떠한 깊이도 품을 수 없게 됩니다.
그의 추락은 우리에게 웅변하고 있습니다. ‘진정한 실패는 높이 날아오르려다 떨어지는 것이 아니라 처음부터 날지 않기로 마음먹은 바로 그 ‘회피’에 있는 것이다.‘라고 말이죠.
그리고 우리에게 질문하고 있습니다.
‘당신은 끝까지 날아보았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