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해도 믿어지지 않는 진실
힘든 고통을 증언하는 사회적 약자와 내부 고발자 등,
진실의 웅변이 배제의 언어가 되는 그들의 이야기에 '듣는다는 것'의 의미를 생각해봅니다.
우리는 일상에서 타인과 대화를 통해 생각을 나누고 진실을 공유하려 애를 쓰게됩니다. 그러나 어떤말들은 허공으로 흩뿌려지듯이 사라집니다. 그럴때의 말은 진실을 담은 정보의 제공이라기 보다는 침묵이 됩니다. 그것은 말하지 않아서라기 보다는 받아들여지지 않는다는 측면에서의 침묵인것입니다. 고대 트로이의 예언자인 카산드라도 진실을 알았고 그것을 말했으나 믿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카산드라는 신 아폴론으로부터 예언의 능력을 얻게 됩니다. 하지만 신의 사랑을 거부한 댓가로 그녀의 예언을 믿는 사람이 없게 되는 저주를 받게 됩니다. 트로이의 멸망, 목마속의 함정 등 중요한 경고를 하지만 누구도 귀기울이는 사람은 없었습니다. 이 이야기에서 우리의 흥미를 끄는 신화적인 요소를 제거하면 수면위로 드러나는 것이 있습니다. 말이 전달되지 않음과 공동체가 진실을 수용하지 않게 되는 구조와 고립이 떠오릅니다.
‘진실’이란 것의 속성은 그것을 원한다고 받아들여지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가장 듣기 싫은 말일수도 있습니다. 왜냐하면 대개 진실이란 기존의 안정성을 흔들게 되고, 삶으로서의 틀을 재조정하는 것을 요구하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반응은 익숙한 일상의 질서들과 반복되는 삶의 감각들에 대한 ‘변화와 깨뜨림’을 본능적으로 거부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진실에 대한 귀를 닫게 되고, 그 진실을 이야기한 자는 고독속으로 침잠하게됩니다.
우리는 카산드라를 신화속 인물로만 평가할 수는 없습니다. 왜냐하면 그녀는 진실을 감당할 수 없는 공동체의 가장자리에서 고립된 자들의 상징이 되기 때문입니다. 진실을 소리 높여 말할수록 더욱 더 고립되고, 진실을 향한 웅변은 그것을 들을 수 없는 자들로 인해 오히려 침묵을 하고 있는 것처럼 되어 버리는 그 모순의 자리에서 우리는 그녀의 얼굴을 마주합니다.
우리 공동체에서 무거운 침묵을 깨고 어두운 진실을 말하는 내부고발자가 있습니다. 힘든 고통을 증언하는 이웃으로서의 사회적 약자들이 있습니다. 그들은 모두 ‘말’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말은 무시되기도 하고, 의심받기도 하고, 조롱받기도 합니다. 어떤 진실들은 믿는 것을 거부하기 위한 이유들을 끌어모으는 의심 앞에서 취약해집니다.
진실이란 단지 말해진다는 것을 넘어서 ‘믿음’이라는 지위를 가질때 우리 공동체내에서 참된 모습을 드러냅니다. 또한 말의 ‘책임’이 ‘말하는자’에게만 있다고도 할 수는 없습니다. 들으려고 하면서, 믿으려고 하면서, 그 말에 실린 진실의 무게를 감당하려는 우리 모두의 용기가 요구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진실의 받아들임’에 있어서 취약하고 무너지기 쉬운 그 ‘말하는자’는 배제와 무시의 언어로 무너지기 쉽습니다. 그래서 그들이 비탈길에서 더 이상 미끄러져 내려가지 않도록 공동체의 윤리적 결단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매순간 점검해야 합니다. 우리가 누군가의 진실을 듣고 마주할 준비가 되어 있는것인지? 우리의 관심이 진실을 향하고 있는지?, 그렇지 않다면 우리의 평온한 일상을 향하고 있는지를 말입니다. 카산드라가 진실을 말할수록 경험하게 되는 ‘고독’은 우리 공동체의 구조가 낳은 것이며 우리 모두의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