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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유의 길(12): 피그말리온 이야기

나를 만드는 것은 '타자'와의 관계이다.

by root
타자의 자유와 그의 고유함을 진심으로 받아들이고 있는가?

우리는 스스로를 독립된 존재라고 여깁니다. 내가 느낀 것, 생각한 것 그리고 선택한 것들이 ‘나’라고 믿습니다. 그러나 우리 자신을 가장 많이 흔들고 변화시키는 것은 언제나 ‘타자’이고 타자와의 관계망 속에서 일어나는 일입니다.


이러한 구조는 그리스 신화 ‘피그말리온’ 이야기에서 더욱 선명하게 드러납니다. 자신의 이상형을 조각해서 완벽하게 만들어 냈지만 살아 있는 생명체는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타자를 만나는 것이라기보다는 자기 안의 이미지일 뿐이었고 자신의 욕망과 이상, 환상을 담아낸 형상과 관계 맺음을 이어갈 뿐이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그 조각상이 생명을 갖게 된 순간 이야기는 변하게 됩니다. 자기 마음대로 움직이는 조각상을 사랑한 게 아니라, 그 조각상이 생명을 얻고 자기 스스로의 주체성을 갖게 되었을 때 주인공은 비로소 사랑이라는 새로운 관계로 진입하게 됩니다.


피그말리온은 타자를 통해 ‘자기 자신’과 정면으로 마주하게 된 것입니다. 갈라테아가 생명을 갖게 된 후 피그말리온은 조각가가 아니라 공존하는 한 인간으로 변화했고, 그 변화가 ‘자기중심적 사랑’에서 ‘윤리적 책임’으로 나아가는 길이 되었습니다. 결국 타자는 나를 비추는 거울이 아니라 나를 새로이 구성하는 사건이 된 것입니다.


우리는 일상에서 타자를 우리의 주관적인 잣대로 해석하고 영향을 미치려 합니다. 그러나 진정한 관계는 타자가 나와는 다른 존재임을 받아들이는 것으로부터 시작된다는 것입니다. 다름을 인정하면서 ‘공존’의 감각을 가지게 되고 그것은 단순히 함께 있다기보다는 함께 변해가는 것이 되는 것입니다.


피그말리온의 이야기는 우리에게 타자를 하나의 대상처럼 대하고 있지는 않은지? 타자의 자유와 고유함을 진심으로 받아들이고 있는지를 묻고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자기 자신을 찾기 위해 홀로 있음을 택하지만 정작 ‘나 자신’은 타자와의 관계 속에서만 발견될 수 있는 것입니다. 비록 그 관계로 인해 우리가 흔들린다고 해도 그것만이 우리 스스로를 다시 세우고 확장시킬 수 있는 길이 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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