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마주하는 ‘결단의 순간’
신뢰는 맹목적인 순응이 아니며 그 불완전성 속에서 우리는 존재의 진실과 마주할 기회를 얻는다.
그리스 신화에서 오르페우스는 사랑하는 아내를 되찾기 위해 지하세계로 내려갑니다. 우여곡절 끝에 감동받은 신들은 아내를 데려가도록 조건부 허락을 하게 됩니다. 유일한 조건은 ‘뒤돌아보지 말 것’이었으나 그는 약속과 달리 뒤돌아 보게 됩니다. 그 순간 아내는 다시 죽음의 세계로 사라지고 영원히 돌아오지 못하게 됩니다. 이 이야기에는 우리가 매일 마주하게 되는 ‘믿음’과 ‘갈림길에서의 선택’, 그리고 ‘파국’이 녹아 있습니다.
우리 삶에는 필연적으로 ‘선택의 순간’이 찾아옵니다. 그 순간에는 평소 생각이 가 닿지 않던 관심들까지 활성상태가 되어 마음속에서 진동하는 듯합니다. 그리고 우리는 불안과 긴장 속에서 스스로를 시험하게 됩니다. 그것은 아마도 ‘신뢰’할 것인지, ‘의심’할 것인지 또는 고통을 감수하고라도 진실에 맞설 것인지 아니면 평온한 일상으로 돌아가 몸을 낮출 것인지와 같은 형태일 것입니다.
오르페우스가 뒤돌아봄을 실행한 그 순간을 그의 존재가 깨어나는 ‘틈’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 ‘틈’은 단지 부정적 의미를 가진 공간이라기보다는 ‘새로운 가능성’으로서의 장소입니다. 이런 틈의 공간은 우리 일상의 평온함을 흔들게 되므로, 흔히 회피하고 싶어 하는 불안과 고통의 자리입니다. 그러나 이 틈은 우리 실존의 진정성을 드러내는 곳이기도 합니다.
이 이야기를 실패담으로써만 받아들인다면 우리 삶의 본질적인 문제를 놓치는 것과 같을 것입니다. 신뢰와 불신 사이의 균열은 우리 일상의 삶에서 매일 감당해내고 있는 내적 갈등이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관계 내에서, 혹은 중요한 결정을 앞두고, 우리는 믿음과 의심 그리고 결단과 회피 사이를 넘나들게 됩니다.
오르페우스가 이 이야기를 우리에게 말하고자 하는 것은, 우리가 항상 ‘위험과 가능성’ 사이에서 선택해야만 하는 ‘윤리적 긴장’의 반복에 노출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그 상황 속에서 우리는 ‘존재의 틈’을 인정할 수 있을 때, 다시 신뢰를 모색하고 새로운 공동체로서의 관계를 만들어내는 창조자가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