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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깨운, 한 아이의
바보 같은 질문(1/3)

파리에서 본 세상

"선생님, 저...

질문이 하나 있는데요,

음... 그러니까...

고흐는 왜 그렇게 그림을 그렸어요?"


혼자 여행을 온 아이 하나가, 수줍음을 무릅쓰고, 말을 더듬으며 던진 질문이었다.

고흐가 왜,

그림을 그렸냐? 고?


머리가 하얘졌다. 처음 받아본 질문이었고, 생각해 본 적이 없는 문제였다.

그러게... 요.. 고흐가 왜 그림을 그렸을까? 참 오랜만에 말문이 막혔다.

더듬거리는 말투로 소림 권법 같은 질문을 하는 아이가 한방을 더 날렸다.


"그리고 예술가들은, 왜 그런 선택을 해요?"


아.. 이건 또 뭔가.. 머릿속이 더 하얘졌다.

아니 예술가들이 별난 건 하루이틀일이 아닌데..

아이는 순진무구한 부연 설명으로 나를 밟고 갔다.


"저는 이런 거 처음인데, 흥미롭네요... 이제 관심을 가져 볼까도 해요..."


아직 진로를 결정하지 않은, 아직 자신의 미래에 대해 결정 내리지 못한 아이의 순수한 질문세례에,

조형예술학 박사가 무장해제되는 순간이었다. 한두 방 맞고 휘청이는 복서가 애써 다리 힘을 주고 제대로 서려는 듯이, 얼른 질문의 엉뚱함에서 벋어나서 질문자인 아이의 입장에서 다시 질문을 반복했다.

그러게요.. 왜 고흐는 그림을 그렸을까요...

또 예술가들은 왜 그런 선택을 할까요..

음.. 그런 거 있잖아요? 학생이 어떤 일을 했을 때, 가장 좋고 마음 설레고..

그런 느낌이, 예술가들이 자기를 좋아하는 일을 하는 것과 같지 않을까요?

그리고 고흐가 그림을 그린 이유라면..

음.. 고흐가 삶을 살았던 방식? 고흐가 선택한 삶이 그림 아니었을까? 요?


사실 이 모두 그날 일정이었던 고흐가 묻힌 오베르 쉬르 와즈를 지나며 다 이야기했던 것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이의 순진 무구한 질문은 내 두 다리를 휘청이게 할 만큼 당황스런 것이었고,

그것은, 너무나 당연한 질문이어서, 어쩌면 진지하게 한 번도 고민해보지 않은 질문이기도 했던 것이다.

고흐는 왜 그림을 그렸던가...


그날은 파리 근교, 모네의 정원과 고흐의 무덤이 있는 오베르 쉬르 와즈 두 곳을 지나는 일정이었다.

파리 근교의 대표적인 명소였고, 파리 시내의 오르세 미술관 컬렉션과도 연관이 되어 찾는 이들이 많은 두 곳이다. 국적을 불문하고 전 세계의 관광객들이 모네의 숨결과 고흐의 흔적을 찾는 곳이다.

아이의 질문은 고흐에 관한 것이었지만, 돌아오는 길, 모네에서 고흐까지 그날의 일정을 되돌아보며 그들은 왜 그렇게 그림을 그려야 했고 그렇게 살아야 했는지... 나도 모르게 다시 돌아보게 됐다.


인공지능 시대,

정보가 넘처나는 인공지능시대엔 정보보다 답변보다 어떤 질문을 하느냐가 더 중요하다고 한다.

이 질문도 그랬다.

얼핏 보면 바보 같은 질문이었다.

아니 화가보고 왜 그림을 그렸냐니 그것도 다른 누구도 아닌 반 고흐를 두고 말이다.

그러나 이 바보 같은 질문은 고흐와 모네, 그리고 인상주의, 모더니즘까지,

모든 예술가들과 일상을 살아가는 모든 우리에게 던져질 수 있는 질문이었다.


그날 그 아이의 질문을 받고 돌아온 저녁, 얼마 전 개봉했다는 바둑영화 승부의 한 대목이 생각났다. 왜 그렇게 바둑을 열심히 두세요? 그저 바둑일 뿐인데.. 고흐에 대한 질문도 마찬가지였다.

왜 그렇게 그림을 그렸나요 그저 그림일 뿐인데..


구슬가 서 말이어도 꿰어야 보배라고 했던가..

그 아이의 그 바보 같은 질문은,

모든 고흐의 이야기와 모네가 걸었던 근대미술의 이야기를 꿰어낼 수 있는 '줄'이었다.

그렇게 나를 깨워준 고마운 질문이었다.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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