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대한 일상 1월 19일
"칸트가 다 망쳐놨어!"
고등학교 시절,
내 천제 친구의 한마디 었다.
당시엔 그가 무슨 말을 하는지 알 수 없었고
지금도 별반 다르지 않다.
다만, 칸트의 질문,
"선험적 미적 판단은 근본적인 기준의 차원에서 어떻게 가능한가?"
라는 이 질문을 던졌다는 사실과,
이 질문에 대해 강신주 박사의 책,
'상처받지 않을 권리'를 통해,
칸트의 질문은 '사회학적'인 관점에서 비판받을 수 있다고
부르디외가 말했다는 정도, 딱 거기까지 나아갔다.
고등학교 시절의 질문 이후 한 30년 만에 딱 요만큼 나아간 것이다.
그러나 실망하지 않는다,
몇 해 전 김어준과 대담을 하시던 김용옥 선생은
"요즘 뒷간에서 칸트의 책을 읽는데,
이제 좀 이해가 된다."라고 말씀하신 적이 있었다.
'상처받지 않을 권리'
참으로 마음에 드는 제목이었다.
"칸트가 다 망쳐놨어"라는 똑똑한 친구의 말에
나는 상처까지는 아니지만 잠시 '소외됨'을 느꼈고,
공부로서는
내 머리로서는 따라가 지지 않는다는 사실에 잠시 위축되기도 했었다.
그런데, 말이나 글은 쓰는 게 아니라 어느 순간 찾아오는 것이라는
어떤 한 작가(지금은 너무나 망가진)의 말처럼,
'이해'라는 것 역시,
원하기만 하면,
때가 되면 '이해'가 되기 마련이라고 나는 믿는 편이다.
칸트의 미적인 것에 대한 질문을 던졌고,
학문으로 정리했는데,
사실, 인간마다 다 느끼는 바가 다른데
그게 '보편적'으로 정리될 수 있을까?라는 '의구심'은 늘 지워지지 않는다.
"한겨울에 코발트블루 코우트를 입고 나왔는데,
너무 따뜻해 보이는 거야.
블루는 차가운 색이라는 말이 안 되는 거 아니니?"
나의 스승의 말씀이셨다.
당시 요하네스 잇텐이라는 색채 학자가
색을 차가운 색 따뜻한 색으로 마구 분류하고,
칸딘스키는 예술에 있어서의 정신적인 것이라며
'미적인 판단'을, 아니 '인간의 감흥'을 아주 무식하게 도식적으로 나누던 시대였다.
잇텐의 색채학은 미술대학의 과목에 단골 교재였다.
그러나 아무리 잇텐의 책이 대학 교재라지만,
블루가 늘 차가운 색이 아닌 것이 더 설득력 있어 보였다.
"대학에 들어있는 인포메이션이 전부 왜곡된 거거덩,
어떻게 그 속에서 창조가 나올 수 있어? 대학을 때려치워 보지 않은 사람 치구
인류의 역사를 움직인 사람은 없다고.
우린 학문을 하면 안 돼,
살아있는 진실을 찾아내야지."(김용옥, 석도 화론 중에서 241p)
김용옥과의 대담에서 백남준 선생께서 하신 말씀이셨다.
맞다.
부처를 만나면 부처를 죽이라는 말씀처럼
김용옥의 도올서원에서 김용옥을 죽이라고 설파하신 법정스님의 말씀처럼,
미에 대한 세상에 대한 나의 판단은
나로부터 비록 되어야 한다.
음..
그럼
정말 칸트가 잘못된 것일까?
#thegreatdays2022 19 01 #missionimpossible
#선험적 #미적판단 은 근본적인 기준의 차원에서 어떻게 가능한가? How is a priori #aesthetic #judgment possible in terms of fundamental standards?
Comment un #jugement_esthétique a priori est-il possible en termes de normes fondamentales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