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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2 '건드려짐'의 미학, '눈물'

풍요로운 창작의 시대와 예술, 예술작품 그리고 예술가

창작 풍요의 시대의 ‘건드려짐’그리고  ‘눈물’ 



툭 건드리면 눈물이 났다. 어디서든, 또 언제든. 배달을 하며, 비제의 아리아를 듣다가도 눈물이 났고, 뜬금없이 호로비츠의 모스크바 연주를 듣다가도 눈물이 났다. 비제의 아리아는 내용도 알지 못하는데 왜 그렇게 서글펐을까... 한창 때의 로베르토 알라냐의 목소리를 이젠 예전처럼 들을 수 없게 되어 그랬을까.. 호로비츠의 무덤덤한 모스크바 실황은 또 왜 그랬을까.. 라인강에 몸을 던지는 자살을 시도해야 했던 슈만이라는 작곡가와 60년 만에 고향땅에서 연주하는 늙은 피아니스트의 생을 달관한듯한 무덤덤한 연주가 오히려 심금을 울린 것이었을까..


지면이 모자라고, 글이 머릿속 생각을 따라가지 못하며, 그렇게 바람처럼 스쳐가는 수많은 눈물의 이유들을 모두 담아내지 못할 정도로, 난 무수히 툭 건드려지며, 또 무수히 울었다. 그리곤 생각했다. 나도 저런 것을 만들고 싶다고, 아니, 적어도 내가 만들지 못한다면, 누구에겐 가라도 이런 것이 있다고 이야기해주고 싶다고, 창작을 하고 싶다고 또 창작을 할 수 없다면, 그저 내가 감동받은 것을 또 나를 울린 것들은 알려주고 싶다고 말이다.


지구라는 별에 떨어져, ‘고해의 바다’라는 ‘삶’을 만나버린 사람들에게, 큰 위안은 못될지언정, 적어도 살아서, 태어난 덕분에 이런 음악을 이런 작품을 이런 감동을 만나는구나..라고 인식하지는 못할지라도, 그저 위안받고, 그저 행복해지며, 그저 귀담아듣게 되고 그저 말이 없어지는 그런 순간을 전해주고 싶었다. 내가 그랬듯이...


밤하늘의 별을 보며 까닭 없는 두려움에 휩싸였던 어린 시절, 엄마의 손에 이끌려간 성당은 그리고 성직자의 길을 은근히 바라셨던 이모 수녀님의 기대는 뜻대로 되지 않으셨더랬다. 내가 찾은 길은 성직자가 아닌 창작하는 이의 길이었다. 왜였는지는 모르겠다 우연히 중학시절 휴일에 비가 온 뒤 물이 고여있던 청명한 하늘 아래 학교 운동장에서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그림을 그리던 기억이 너무도 생생해서였는지, 조금은 그림을 그리는 제주가 있어서였는지, 그것도 아니라면, 조금만 건드려도 눈물이 나는 철들지 않는 감수성 때문인지. 어떤 이유인지 또렷이는 알 수 없지만, 하느님에 의지하여 세상의 이롭게 하는 것보다, 창작에의 길을 걸어 세상을 조금이나마 더 아름답게 했으면 하는 소박하지만 너무 큰 꿈을 꾸게 되었다.


창작이라는 신의 영역을 넘본 탓에 창작자는 소위 예술가들은 고행길을 걸어야 한다는 말이 두고두고 귓가와 뇌리를 떠나지 않을 정도로 고된 시간들이었다. 적어도 인류사에 모든 창작자의 꿈이란 훌륭한 작품을 만들기 이전에 창작과 작품으로 생계를 유지하는 일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나이가 들수록 더 들었다.


'예술가의 유일한 고민은 예술이어야 한다.'는 사르트르의 말을 마음 한편에 새겨둔 채로 늘 두 개의 삶을 살아야 했기에, 평범한 일상 속의 일반인으로서의 삶과 늘 꿈을 꾸는 창작자로서의 삶. 이 두 세계를 늘 넘나 다녀야 하기에, 그러기에 난 건드리기만 하면 고되고 지쳐서 눈물이 났는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하나만은 안다. 적어도 내가 흘렸던 눈물들은 원망과 비애의 눈물이 아니었다는 것을 말이다. 내가 흘린 눈물은 감동의 눈물이었고 위안의 눈물이었다 그 눈물 덕분에 난 살 수 있었고, 또 그 눈물 덕분에 어떤 경지를 맛보았으며 그것은 나의 길이 되었다. 그리고 언젠가 나도 그렇게 누군가를 눈물 흘릴 수 있게 만들 수 있는 그 무언가를 만들 수 있겠는가... 알 수 없을 꿈이자 끝나지 않을 길이다.


https://www.youtube.com/watch?v=FxhbAGwEYGQ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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