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의 반환점을 돌아서다 보니 갱년기인가, 최근 들어 괜히 울컥한 순간들이 잦은 것 같다.
TV 드라마를 보다가도 이별 장면이라든가 사별(死別) 등 좀 슬픈 장면이 나오면 금방 눈시울이 붉어지고 나도 모르게 고장 난 수도꼭지처럼 그냥 눈물이 난다.
극 중 인물에 감정이입(感情移入)이 그렇게 쉬이 잘 되는 편인지 아니면 드라마를 그야말로 몰입감 넘치게 잘 만들었다는 말인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그 드라마 속 슬픔은 마치 내가 사랑하는 이와 이별한 것처럼 혹은 나의 슬펐던 어떤 순간들과 오버랩(overlap)되면서 나를 한층 더 슬픔에 빠지게 만들고 눈물 흘리게 한다.
또 다른 경우는 아델(Adele) 같은 유명 가수가 노래를 열창하며 부르다가 자신의 마이크를 객석의 관객들 쪽으로 넘기며 떼 창을 유도할 때이다. 그 순간 관객들이 무반주 상태로 다 함께 한 목소리로 합창하는 장면에서 괜히 울컥해지며 눈물이 난다.
또 연로하신 독거(獨居) 노인들의 궁핍하고 열악한 삶을 다룬 TV 프로그램이나 다큐멘터리 방송을 보면 눈물이 난다.
이와 마찬가지로 갓 태어난 신생아가 미숙아이거나 어떤 병으로 건강에 이상이 있어 바로 엄마품에 가지 못하고 아기 혼자 외롭게 인큐베이터(incubator)에 갇혀 있는 모습을 봐도 눈물이 난다.
여담이지만 흔히 사람들은 말한다, 울고 싶을 땐 울어야 한대요, 그러니 엉엉 소리 내어 실컷 울어 버리세요! 그래야 건강해져요라고.
그런데 울고 싶을 때 정작 울지 못하는 연유도 있을 것이다. 실컷 울어버리고 나면, 엉엉 소리 내어 실컷 울어버리고 나면 속이 시원할까 싶어 울 수도 있겠지만 어쩌면 울고 있는 자신의 우울한 모습에 더 슬퍼지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도 함께 갖고 있기 때문이다.
최근 어느 TV 장면에선가 재난 현장에서 안타깝게 세상을 떠난 희생자들의 이름을 불러주었다. 그렇게 어떤 명단의 이름을 한 명 한 명 차례로 불러 줄 때면 TV를 보는 필자는 매번 목이 메고 콧날이 시큰해진다. 울컥한 감정이 길어지면 어느새 눈에선 눈물이 흘러내린다.
누군가의 이름을 불러준다는 것은 그 존재를 ‘인정’하고 있다는 말에 다름 아니다. 독립운동을 하다가 희생되신 분들처럼 어떤 영예로운 희생자들의 이름을 일일이 부르는 것은 역사적 기록을 넘어 늘 기억하면서 우리들 가슴에 깊게 새기겠다는 우리의 의지다.
살아남아 있는 우리는 대개 몇 명 안 되는 소수의 희생자들의 이름은 일일이 불러 주는데 수백 명이 넘는 희생자들의 이름은 왜 다 불러주지 않을까? 어떤 불의(不義)의 사건이나 참사로 희생된 수많은 희생자들의 이름도 언제든지 몇 번이고 한 명 한 명 다 호명될 수 있길 바란다.
서로 정쟁(政爭)으로 몇 시간씩 무제한 토론, ‘필리버스터’(Filibuster)도 하는데 (또 그런 장면을 몇 시간씩 방송도 하는데) 희생자들 이름이 많다고, 또 시간이 오래 걸린다고 해서 못할 일은 아니라고 본다.
그들이 불의의 사건으로 억울하게 희생되었다면 그들의 영혼과 넋을 기리며 몇 시간, 아니 며칠이 걸리더라도 한 가정의 소중한 아들 딸 그리고 엄마 아빠인 희생자들 모두의 이름을 하나하나 다 불러 줘야 한다고 생각한다.
희생자 한 명 한 명의 이름이 일일이 호명되는 장면을 묵묵히 지켜보는 내내 우리는 그 사건과 참사 그리고 역사 속 아픔을 되새기며 희생자들을 추모하고 또다시 새롭게 기억하게 되리라 본다. 물론 필자는 또다시 울컥해하며 눈물 흘릴지도 모르지만.
감정 이입(感情移入) : 어떤 대상에 자신의 감정을 불어넣거나, 다른 사물로부터 받은 느낌을 직접 받아들여 대상과 자신이 서로 통한다고 느끼는 일.(다음 [어학사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