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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The Happy Letter Sep 05. 2023

우리가 지금 찾고 있는 게 진정 '사랑'일까?

언젠가는 꼭 결혼하려는 동시대 미혼 남녀에게 (*주의: 비혼주의자 제외)


브런치스토리 메인 창뿐만 아니라 그냥 TV만 켜도 연일 이혼(돌싱) 이야기가 판을 치는 요즘이다. 이 글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앞으로 조만간에, 아니면 "언젠가는" 꼭 결혼하려는 의지와 계획이 있는 미혼 남녀를 염두에 두고 쓴 글이다.


비혼주의자들은 그분들 나름대로의 인생관이나 "연애는 필수, 결혼은 선택" 또는 각자의 다른 판단에 대한 확고한 의지가 있을 터이니 그분들의 혼삶의 세계관도 존중함을 함께 밝혀 둔다.




주말에 떠오른 단상을 열심히 적었다가 '발행'전 탈고하려고 다시 찬찬히 읽어보니 영 탐탁지 않아 다 쓴 글을 엎어버리고 새로 쓰게 되었다. 글이란 게 덧붙여 쓰기는 쉬워도 다 쓴 글 중에서 뭐를 빼고 뭐를 남길 것인가 고민하는 일이 제일 어려운 것 같다. 구구절절 너무 풀어 설명하는 식의 글은 단락이 길어지면서 맥이 풀리듯 글의 '탄력성'이 없어지고 응축된 함의(含意)의 전달이라는 긴장감도 떨어지게 되는 것 같다. 어쨌든 필자가 쓴 글의 시작은 대충 이러했다.




브런치스토리 작가가 되어 글을 쓰다 보니 이런 날도 오는군요. 드디어, 마침내, 아니면 기어코 어쩔 수 없이 "사랑"에 관하여 글을 쓰는 그런 날 말입니다. 모든 것을 희생하며 쟁취하고자 하는 그 간절하고 고귀한 ‘사랑’에 대한 글을 쓴다는 것은, ‘사랑’을 제목으로 정하고 그에 대한 단상을 써 내려간다는 것은 참으로 뜻깊은 순간이지 않을 수 없습니다.



하지만 필자가 간과한 것이 있었다. 사랑이라는 주제로 직접 글쓰기가 (책으로 읽기는 흥미롭고 쉬워도) 이토록 어렵다는 것은 정말이지 미처 몰랐다. 독자분들도 한 번 시도해 보시라.(어쩌면 필자처럼 처음엔 쓰고 싶은 게 너무 많고 하고 싶은 말이 너무 많아 뭐부터 써야 할지 몰라 당혹스러울 수도 있다.)


최근 몇 차례 시도한 종교나 정치 관련 주제의 글보다 훨씬 더 어려운 것 같다. 신성한 신앙 앞에서도 경건한 신자가 있는가 하면 '환자'가 되는 신도도 있고, 정치도 정의롭고 민주적인 정치가가 있는 가 하면 다른 한편으로 조삼모사(朝三暮四)로 권모술수([權謀術數)에만 능한 '정치꾼'도 있다.


사랑은 남녀노소 저마다 이러쿵저러쿵 각자의 체험담 등 할 말이 많은 주제이기도 하다 보니 각자 바라보는 관점이나 해석하는 시각, 접근하는 방법, 처해있는 상황에 따라 그 의견이 분분한 면도 많다.



Love is blind.
사랑하면 눈이 먼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사랑이라는 감정은 너무나도 사적이고 주관적인 감정이며, 사랑을 하면 눈이 먼다(blind)라는 말까지 있듯이, "사랑과 이성은 같이 가지 않으며, 사랑은 맹목적이다"라는 사실을, 그리고 "사랑은 어떤 논리나 반증으로도 설득하거나 이해시킬 수 없는 영역이다"라는 것을 뒤늦게 (기억해 내며) 깨닫고 다 쓴 초고 글을 아예 그냥 엎어버리게 된 것이다.




사랑이라는 감정, 또는 그를 기반으로 한 예측불허의 다양한 선택과 결정 등은 가끔 보면 당사자가 아닌 타인들에게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상태(?)를 보일 때도 많기 때문이다.


그것 또한 그들만의 (사랑 앞에) 확고한 '믿음'이다. "야, 그 사람은 정말 아니다, 그건 아닌 것 같다!"라고 아무리 옆에서 말려도 한 번 사랑에 눈이 멀어 "눈에 콩깍지가 씌고 나면" 물불 안 가리고 또 아무리 못생겨도 상대방이 잘생기고 예쁘게만 보인다. 그것이 심지어 '짝사랑'이든 '외사랑'이든 상관없이.(비유적으로 그냥 빗대어 예로 든 것일 뿐 외모지상주의는 아님 주의)


또한, 사랑이라는 감정은 혼자서가 아니라 상대가 있는, 작용 및 반작용의 반복 속에 변화무쌍한 '감정선'의 연속이다 보니 더더욱 우리가 제삼자로서는 이해하거나 따라잡지 못하는 아주 내밀하고도 사적인 영역이 되고 마는 것이다.




예전 학교에서 배우던 에로스(eros), 아가페(agape), 필리아(philia) 등에 관해 쓰려고 하는 것은 아닙니다. 요즘 워낙 결혼하기도 힘들고 또 자신에게 꼭 잘 맞는 "짝"을 찾기도 어렵다고 하니 좀 더 현실적인 관점에서 보는 '사랑하는(사랑할) 사람' 찾기 현상에 관한 글을 쓰고자 합니다. 하지만 사랑하는 사이로 곧 결혼할 생각 중이신 분들에게 (예나 지금이나) 결혼의 조건으로 자주 언급되는 외모, 직업, 성격, 재력, 학력 등에 관한 이야기도 아닙니다.


요즘 결혼의 조건으로 결혼(중매) 정보회사의 맞선 커플 매칭 기준과 등급표에서도 자주 강조되는 외모, 직업, 성격, 재력, 학력 등에 관한 이야기가 아니라면 누가 사랑이며 결혼에 관한 글을 읽어보겠냐만은, 필자는 (개인적 관점에서) 순수하게 사랑하는 데 '애정의 조건'도 없어야 하듯 그 사랑하는 두 사람이 결혼하려면 '결혼의 조건' 같은 것도 없어야 한다는 다소 "급진적" 단상이었다.




우리는 이 사람, 저 사람 많이 만나보면 더 좋은 사람을 만날 확률이 얼마나 더 높아질까? 예를 들어, 우리가 50명의 남자 내지는 여자를 만나 결혼을 전제로 한 '맞선'(선)을 볼 수 있다고 가정하자. 그러나 한번 No! 한 사람은 절대 다시는 만날 수 없다는 전제하에 여러 사람을 만날 수 있다면, 독자분들은 49번째나 50번째 사람을 만날 때까지 계속 No! 하면서 그 맞선을 보겠는가? (50번째까지 50명의 남자 또는 여자를 만났는 데 마지막까지 결정을 못하면 50번째 남자 또는 여자와는 무조건 결혼해야 하는 조건이라 하더라도?)


아니면, 어느 정도 선을 보다가 중단하고 결정을 할 것인가? 50번째까지 만나봐도 더 좋은 사람이 안 나타날 수도 있고, 앞서 No! 했던 사람이 더 놓치기 싫고 아쉬울 수도 있다.


실제로 우리 사회구성원 중 일부는 진정 '사랑'을 찾는 것이 아니라 앞서 예로든 이런 비슷한 방식으로 그들이 원하는, "알맞은 그리고 적당한 조건" 찾기와 반복된 고르기의 끊임없는 굴레에 빠져 살고 있는지도 모른다.(실제로 일상생활 속에 심지어 100명 이상 선봤다는 얘기도 우리는 종종 듣는다.)


우리는 끊임없이 더 좋은 남자 또는 여자를, 배우자 후보나 애인이나 남자/여자친구를 찾고 또 찾기를 반복한다. 그리고 어렵게 고르고 엄선해서 선택하여 사귀더라도 막상 이제 결혼을 할까라고 생각하면 모든 것을 다시 원점에서 새로 고민하게 된다. 바로 "내가 과연 이 사람과 결혼해서 행복할까?" 등과 같은 불확실성 때문이다. 주로 이때 같이 등장하는 것이 바로 배우자의 재력(정확히는 배우자 집안의 재력), 가족 관계, 가정환경 등 집안 문제이다.




우리가 결혼을 통해 무슨 '신분상승'이나 '계층이동'을 하려는 것은 아니지 않은가? 그런 건 이미 학교공부할 때 한정된 최고 명문대 진학을 목표로 충분히 경험했고 그런 제로섬 게임으로 힘들어했고 또 톡톡히 피해도 봤다. 사랑과 결혼은 어느 대학을 갈까?(갈 수 있을까?)하고 고민하는 문제와는 차원이 다르다.


대학진학은 혼자 하는 것이고 최고 명문대 진학과 졸업을 통해 사회 주류 기득권 세력에 합류하는 것 또한 혼자 하는 것이다. 하지만 사랑과 결혼은 상대방이 있는 사안이고 둘이서 같이 행해야 하는 일생일대(一生一大)의 최고 중요한 프로젝트이자 그런 거사(巨事)이다.


그런데도 처음에는 사랑이라는 감정으로 만났지만 결혼을 앞두고 서로 여러 조건이 (집안의 조건이) 안 맞아 싸우다 불행하게도 헤어지고 마는 커플은 더 이상 얘깃거리도 안될 정도로 흔하게 듣고 있는 실정이다.


잘 살다가도 성격(?)이 안 맞아 당당히 헤어지고 이혼하는 세상인데, 그에 비하면 결혼 전 혹은 (혼수, 아파트 전세 자금 마련 등) 결혼 준비하다가 헤어지는 것은 (물론 매우 안타까운 일이지만) 울고불고 몇 번 하고 나면 어떻게든 그냥 잊히고 말지도 모르는 일인가?




'핵가족'이라는 전제하에 말하자면, 우리는 그 배우자 집안의 부모와 사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 배우자의 부모가 낳고 기른 아들 또는 딸과 살아가야 한다. (처음부터 양가 부모의 경제적 도움을 받을 의도로 시댁 또는 처가에 같이 산다라면 그것은 다른 토픽에서 별도로 논해야 한다.) 배우자를 선택하기 전에 반드시 그 배우자 될 사람의 부모를(양친이 안 계시면 편부 또는 편모를) 먼저 만나보고 식사도 같이 해보고 차도 마셔보고 해야 한다. 그 아들 딸을 보면 그 부모를 알 수 있다는 말이 있다. 물론 그 반대도 대체로 맞다고 본다. 그 부모를 보면 그 집 아들 딸도 거의 알 수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결혼하기 전 아무리 바빠도 그 결혼할 배우자의 집을 직접 찾아가서 그 예비 배우자의 부모와 가족 구성원들을 몇 번이고 만나봐야 하고, 그냥 인사만 하는 정도가 아니라, 식사도 하고 술도 한 잔 마시며 함께 떠들며 오랜 시간 이야기를 해봐야 한다. 필자 개인적으로는 시중의 결혼(중매) 정보회사의 어떤 맞선 커플 매칭 기준 항목보다 더 우선적이라고 생각한다.




또 덧붙이고 싶은 말은, 우리는 대개 사랑에 대한 좀 비현실적인 그림을 그리며 "이상적인" 사랑을 꿈꿀 때가 많다는 것이다.


우리는 지금까지 아주 옛날 또는 수 백 년 전의 시대상이 만들어낸 사회적 관습과 문화, 정서적 분위기와 윤리의식을 기반으로 만들어진 예술 작품들을 너무 많이 접해 왔습니다. 그러다 보니 우리는 아직도 그때 그 시절의 어떤 전형적(典型的 typical)인 남녀 관계 역할이나 연애, 결혼 등에 대한 '프레임'(frame)에 본의 아니게 갇혀 있는 듯합니다. 현재 2023년을 살아가는 우리에게는 다른 시대상과 가치관이 있으며 사회 문화적으로 지배적인 정서적 공감대도 그때와는 많이 다른데도 불구하고 말입니다.


예를 들면, 우리는 18세기말부터 유럽을 중심으로 발달한 낭만주의(Romanticism) 사조에 심취하기도 했고, 심지어 그 보다 더 오래된 영국 윌리엄 셰익스피어(William Shakespeare. 1564 - 1616)가 1597년에 발표한 4백여 년 전의 작품, [로미오와 줄리엣](Romeo and Juliet)처럼 예전부터 전해져 내려오는 소재와 주제(부모가 반대하는 사랑에 빠진 젊은 남녀)의 비극 스토리에 오늘까지도 연극, 뮤지컬, 영화 등을 통해 여전히 큰 영향을 받으며 살고 있다.


우리는 아주 멋진 이상적인 사랑에 대한 (지금 기준으로는 만나기 어려울지도 모르는) 허상(虛像)을 아직도 갖고 있다. 왜냐하면 '로미오와 줄리엣'이나 감동적인 '러브 스토리'(Love Story), 또는 그와 비슷비슷한 영화들을 몇 번씩이고 보며, 혹은 그런 연극이나 TV드라마, 소설책들을 너무나도 많이 보고 읽으며 자랐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는 예전처럼 그렇게까지 (부모가 반대한다고 죽는 척하면서까지) 어렵게 만나거나 어렵게 헤어지지 않는다. (요즘은 청춘남녀가 만나 사귀다가 서로 마음이 안 맞아 헤어질 때 그냥 카톡 문자로 이별 통보한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도 있다.) 어쨌든 남녀를 불문하고 최소한 멋진 연극이나, 영화, TV드라마, 소설 속 남녀 주인공에 대한 이미지는 현실 세계에서는 잠시 좀 잊는 게 편하다. (그렇지 않으면 지금 현실에서 만날 수 있는 사람은 하나도 없다. 아니, 만날 수 있는 사람으로 그 대상 폭과 범위가 엄청 작아진다는 표현이 맞겠지만.) 지금 바로 맞은편에 앉아 있는 사람에게 수 백 년 전 아름다운 예술 작품 속의 남녀 주인공의 사랑을 덧씌워 눈앞에 있지도 않은 어떤 환영(幻影)에 빠져 상상하면 안 되는 것처럼 말이다.


그런 비현실적 이미지는 그냥 착각이다. 그 시대는 그 시대 사람들만이 할 수 있는 사랑의 방식이 있었고 그리고 그땐 그게 가능했지만 지금 2023년을 살고 있는 우리는 우리 시대의 사회 환경과 시대상에 지배를 받으며 살아갈 수밖에 없고 그 시각과 정서로 서로의 상대를 보고 이해해야 할 수밖에 없다.


만약에 그런 환상과 착각으로 배우자를 고르고 선택하고 결혼했다면 실제 현실 세계에서 함께 살면서 그 환상이 깨어졌을 때 그 여파는 걷잡을 수 없고 또 서로의 관계 유지가 어려워져 파국으로 치닫게 될 가능성도 높아지게 된다.




조선시대를 배경으로 한 정통 사극 드라마에서 보는 것처럼 집안과 집안이 결혼할 신랑 신부를 사전에 정해주고 만나게 하거나 부모들이 혼사를 치러는 "혼주"(婚主)의 역할을 하는 것은 지금까지도 한국사회에는 변함이 없으리라 봅니다. (근데 여기서 잠깐, 왜 신랑 신부가 혼인의 주체가 아니라 그 부모여야 하죠?)

하지만 우리가 재벌 2세, 3세가 아니라면 집안과 집안의 결혼보다는 당사자간의 선호와 성격이 더 맞는 쪽에 집중해야 한다고 봅니다.


결혼은 이제 더 이상 비슷한 환경과 조건의 (재력이나 권력이 비슷하게 견줄만한) 집안끼리의 '정략결혼'(政略結婚) 같은 행사가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우리가 (설령 엄청 잘 사는 부유층이나 상류층 집안에 속한다 하더라도) 집안끼리의 정략결혼의 당사자가 되어야 한다면 우리가 진정으로 (아무런 전제조건 없이) 사랑하는 사람과 결혼하기가 더 어려워질 것이라고 본다. 물론 그 속에서도 사랑하는 사람을, 결혼할 상대를 찾을 수도 있다. 하지만 두 집안끼리 문제가 있어 싸워 더 이상 만나지 않고 소원(疏遠)해지면 그 결혼한 부부도 멀어져야 하나?




마지막으로 글을 마무리하며 하고 싶은 말은, 만나는 (만나고 싶은) 그 사람에게만 집중하라이다. 어쩌면 이름도 나이도 모른 채 첫눈에 반해 사랑에 빠져 결혼한 커플이 제일 잘 살지도 모른다. 실제로 "자만추"(자연스런 만남을 추구)를 선호하는 사람들 중에는 만나자마자 첫눈에 반해 사귀다가 결혼에 성공한 커플들도 많다.


물론 가볍게 만나라는 얘기는 절대 아니다. 서로 견주어본 어떤 전제 조건도 없었고 아무것도 기대하는 조건도 생각지 않았으므로 말 그대로 결혼은 바로 '낭만적 사랑'의 산물이 되는 경우를 언급한 것이다.


꼭 50명, 100명 이상과 선을 봐야 "운명의 짝"을 만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맞선을 많이 보다 보면 대개는 눈이 점점 더 높아져 욕심이 많이 생기거나 상대방 조건이 "부모에게" 안 맞는 경우가 더 많다. 어쩌면 나중에는 "마지막 그 50번째"와 억지로 썩 내키지 않는 결혼을 하거나 아예 못하고 끊임없이 계속 연기시킬 가능성이 높다.




사람은 저마다 좋은 면과 부족한 면이 있기 마련이고 좋은 면을 많이 보면 그 사람과 사귈 수 있는 것이고, 부족하거나 나쁜 면만 보이면 그 사람과는 두 번 다시 만나기 싫고 또 헤어지고 싶어지는 것입니다.



그리고 다른 건 다 책이나 어디서 뭘 찾아보며 배우려 들더라도 '사랑' 또는 '사랑의 감정' 만큼은 책으로 배우려 하지 말고 오직 자신의 직접적인 경험에만 의존하라고 말해두고 싶다. 그 직접적인 경험을 믿고 선택하라고 말하고 싶다. 물론 그 결과에 대한 책임은 전적으로 당사자인 본인이 다 져야 하지만.




우리가 지금 찾고 있는 게 진정 '사랑'일까? 아니면 앞으로 잘 살 수 있는 어떤 ‘조건’ 일뿐일까?


어떤 조건 운운하기 전에 먼저 사랑이라는 감정, 이것만 있으면 충분하다고 말해 보자! (사실 모든 문제는 이게 없어서 또 부족해서 발생하니까!)


그리고 사랑하는 정과 마음인 애정(愛情)을 갖고 둘이 함께 살아간다는 것은 결국 상대방에 대한 지속적인 친절(kindness)과 끊임없는 존중(respect)의 마음 때문이라고 필자는 생각한다. 지금 현재 사귀고 있는 커플이든, 앞으로 결혼을 하든 안 하든, 조금 전 막 결혼한 신혼이든, 결혼 한지 아주 오래된 노부부든. 또 재혼한 부부든.



독자분들은 어떻게 생각하시는가?







다음 [어학사전],

함의(含意) : 말이나 글 따위에 여러 뜻이 담겨 있음.

외사랑 : 남녀 사이에서 한쪽만 상대편을 사랑하는 일. 자신이 상대편을 사랑하고 있다는 것을 그 상대편이 알지 못하는 경우에 이르는 말.

조삼모사(朝三暮四) : 자기의 이익을 위해 교활한 꾀를 써서 남을 속이고 놀리는 것을 이르는 말.

전형적(典型的) : 같은 부류 안에서 가장 일반적이고 본질적인 특성을 가진 것.

혼주(婚主) : 혼사를 주재하는 사람. 보통 신랑이나 신부의 아버지이다.

환영(幻影) : 2. 생각이나 감각의 착오로 사실이 아닌 것을 사실처럼 인정하는 현상

정략결혼(政略結婚) : 부모 혹은 친권자가 자신의 경제적, 정치적 이익을 위하여 혼인 당사자의 뜻을 무시하고 억지로 시키는 결혼.

허상(虛像) : 1. 어떤 사람이나 물체의 참모습과는 상관없이 다른 것에 의해 만들어진 이미지.

소원(疏遠) : 서로 사이가 두텁지 아니하고 거리가 있어서 서먹서먹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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