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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The Happy Letter Jul 13. 2023

"50cm"로 타인과 사회생활 잘하는 방법

사회적 소통방식(3) - 무언의 약속, "원초적" 거리 두기에 관한 단상

필자가 쓰고 있는 이 '사회적 소통방식' 시리즈에는 각자 개인마다 성향이나 처한 여건에 따라 해석하거나 받아들임에 있어 '온도 차이'가 있을 수 있고, 또 나라마다 지역마다 사회 정서적 문화와 관습이 다를 수 있다는 사실을 전제로 하고 있음을 미리 밝혀둔다.




유례없이 많은 희생자를 내고 '뉴노멀'(New Normal)이라는 완전히 새로운 사회적 문화적 변화가 인류 '생존과 적응'을 위해 요구될 만큼 우리 모두 전 세계적 재앙인 COVID-19 팬데믹을 겪어야 했다.


거의 3년 가까이 되는 기간 동안 일상생활 속에서 감염병 예방과 확산 방지를 위해 불편한 마스크를 착용해야 했을 뿐만 아니라 2m 이상 '사회적 거리 두기'를 함께 해야 했다.


오늘은 팬데믹에 의한 '사회적 거리두기'를 겪어오면서 되새겨본 새로운 형태의 사회적 '인간관계'와 팬데믹을 넘어서고 '포스트 코로나' 시대를 살아가는 현재 우리 사회생활 내 타인과의 보다 "원초적" 거리 두기, 동시에 - 더불어 함께 살아가는 보다 나은 우리 공동체를 위해 - 그러한 '소통방식'의 의미를 다시 생각해 보고자 한다.




COVID-19 팬데믹 발생하기 훨씬 이 전이었던 어느 날 저녁 동네 대형 마트에서 식료품을 고르고 있는 우리 아이의 독일학교 선생님 뒷모습을 보게 되었다.


필자는 반가운 마음에 얼른 다가가 "아, 선생님, 안녕하세요? 저, 누구누구인데요,..." 말하며 밝고 환한 웃음으로 인사를 했다. 그러나 선생님은 - 그 학급 반에 동양인 학생이 우리 아이밖에 없어서 - 다행히 나를 알아보는 듯했으나 조금 놀란 표정으로 짧게 인사한 뒤 곧바로 마트 내 다른 코너로 이동했다.


필자는 학부모로서 그저 반갑게 인사하고 싶은 마음뿐이었으나, 그 선생님은 그렇지만은 아닌 눈치였다. 나중에 현지 지인에게 물어보니, 길 가다 어쩔 수 없이 바로 마주친  정도가 아니라면, 그날처럼 뒷모습 정도는 차라리 못 본척해주고 그냥 가도 될 뻔했다는 말을 해주었다.


물론 친분 정도에 따라 다르겠지만, 혹여 서로 마주 보게 되더라도 눈인사 정도나 하고 지나가지 굳이 마트 한가운데 둘이 마주 서서 아, 이러세요?, 저러세요? 할 필요까지는 없었을 것이다라고 한다. 각자 개인마다 사람을 대하는 성향이 다를 수 있기 때문에 그 지인의 개인적인 견해가 반드시 맞다고는 할 수 없으나, 또 그 "선생님" 입장에서는 학교밖에서까지 학부모를 만나야 하는 게 좀 부담스럽거나 성가시게 느껴질 수도 있을 것 같아 나름대로 일리가 있는 말이기도 했다.


무엇보다도 전하고자 하는 말은, 학교라는 직장 안에서는 선생님의 역할로 학부모를 대하는 관계이지만, 학교 밖에 나오면 각자 한 개인으로서 사적 생활과 시간이 더 존중되어야 한다는 뜻으로 일상의 예를 들어본 것이다.




우리가 상대를 조금 안다고 해서 그 사람의 개인적 시간과  사생활(privacy)을 함부로 침해할 수 없음을 그 순간 간과한 듯하다. 때로는 '목례'만 간단히 하고 묵묵히 그냥 스쳐 지나가 주는 것도 '소통방식'의 하나가 될 수 있다. 구태여 꼭 무슨 말을 - 많이 - 해야만 '소통'이 되는 것은 아니다. 표정과 제스처(gesture), 행동(!)으로도 우리는 상대방의 많은 것을 파악할 수 있고 또 그에게 내 의사를 전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음악 악보의 쉼표도 '연주의 일부'라고 하듯, 무언의 '제스처'를 주고받는 그 '침묵'도 '대화'의 일종이며 '소통'인 것이다.




팬데믹 기간 동안 감염병 예방을 위해 강제되고 권고된 위생상 사회적 거리 두기와는 무관하게, 우리는 보통 일상에서 타인과 어느 정도의 거리가 적정하다고 보는가?


어떤 사람들은 팔꿈치를 옆으로 폈을 때 서로 부딪히지 않을 정도의 거리는 둬야 한다고 하고, 또 다른 사람들은 최소 팔 길이 정도의 거리 안은 타인과 안 부딪히게 해야 한다고 말한다. 개인 공간인 집을 나와 밖에 나와 있더라도 이른바 '사적인 영역'이라고 하기도 하는 '타인과의 거리'는 어림잡이 최소 약 "50cm" 정도는 넘을 것 같다.


사람마다 각자 개인적으로 체감하는 바가 다를 수 있으므로 여기서 어떤 '거리'가 좋다, 나쁘다를 말하고자 함은 아니다. 다만 사람들은 내가 모르는 타인이 내게 좀 너무 가까이 다가오거나 내 몸에 부딪치듯 방해하는 느낌을 주면 언짢아지는 것은 누구나 마찬가지일 것이다.




여기서는 길가다가나 엘리베이터 타고 내리다가든, 출입문에서든 서로 부딪히면 두 사람이 모두 거의 '동시(!)'에, "Entschuldigung!", "Pardon!" 하며 '미안하다'라고 서로 먼저 말하는 편이다.(또한 어디서나 그러겠지만, 좁은 계단에서는 어깨를 부딪히며 동시에 옆으로 지나가지 않고 어느 한쪽에서 먼저 올라오거나 내려갈 때까지 다른 한쪽 편이 기다렸다가 다 지나가고 나면 그때서야 올라가거나 내려간다.)


누구든 다른 사람의 어깨나 팔 등 신체부위를 본의 아니게 조금이라도 부딪히는 것을 굉장한 실례로 여기기 때문에 여기서는 다니다가 사람과 부딪히지 않도록 좀 조심해야 한다. 어쩌다가 번잡한 공간에서 어쩔 수 없이 맞은편 사람에게 좀 너무 가까이 밀려 다가가게 되면 그 상대방은 - 예의상 - 일부러 좀 뒷걸음치며 안 부딪치게 뒤로 물러난다.


요즘 한국은 어떤지 모르겠지만 예전에 간혹 보면, 길 가다가 부딪혀도 아무런 말도 없이 그냥 가버리는 사람도 있었고, 잘잘못을 따지다가 서로 먼저 사과 안 한다고 시비가 붙는 경우도 보곤 했다. 특히, 같이 부딪혔는데 먼저 잘못했다고 하면 다른 상대편은 - 실은 자기도 일부 잘못했을 수도 있는데 - 미안하다고 하는 사람을 영 무시하거나 얕잡아보기도 하는 것 같다. 누가 일방적으로 잘못해서 넘어지거나 다치게 된 정도가 아니라 단지 그저 가볍게 서로 부딪힌 정도면 쿨하게 둘 다 동시에 미안하다고 한 후, 그냥 각자 알아서 갈 길 계속 가는 게 제일 낫지 않을까?


물론 여기 사람들도 '차량 접촉사고' 등 교통사고 때는 완전히 다르다. 어느 누구도 절대 먼저 잘못했다고, "Sorry!"라고 안 한다. 긴급 신고한 경찰(Polizei)이 올 때까지는 우선 인내심 있게 기다리는 게 맞다. 먼저 잘못했다고 하면 경찰 앞에서 상호 진술할 때 아주 불리한 상황에 빠지게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출퇴근 시간 붐비는 지하철이나 버스 안을 - 물론 이 두 공간은 '사적 영역' 운운에는 전혀 맞지 않을 정도이니까 - 제외하고, 독자들은 현재의 일상생활에서(길을 걷거나, 쇼핑 마트, 일반 상점, 영화관, 공연장, 식당이나 카페 등에서 무엇을 사거나 기다릴 때, 또는 놀이기구 등을 타기 위해 줄 서서 기다릴 때 등등) 과연 옆 사람, 앞뒷사람사이의 적당한 사람과 사람 간의 거리는 대개 어느 정도쯤이어야 한다고 생각하는가?


예를 들어, 식당이나 카페에서 내가 앉은 의자가 내 뒷 테이블 손님의 의자와 부딪히는 것을 막기 위해 얼마나 바짝 당겨 앉는 편인가? 그 뒷자리 테이블 손님이 의자를 뒤로 쑤욱 빼고 앉고 또 내가 앉아 있는 의자를 건드리거나 밀리게 한다면 기분 나쁘지 않을 사람이 누가 있겠는가?


대부분은 자신도 모르게 그랬을 수도 있겠지만, 만약 알면서도 그러고 있다면 뒤로 쑤욱 뺀 의자는 이미 뒷자리 손님이 보내는 '무언의 메시지'다. 그 손님 자신의 뒤에 앉아 있는 '타인', 즉, 바로 나를 무시하고 있다는!  




우리는 '소통'하려면, 그것도 함께 "잘 소통하려면" 무조건 많이 대화하고 많이 접촉해야 한다고만 생각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일상 속이든 어디서든 우리는 각자 적당한 '거리 두기'로 각자의 시간과 공간(!)을 존중해 주는'침묵과도 같은 대화', 그런 무언의 소통 방식에도 좀 더 세심하게 공을 들일 필요가 있지 않을까?


오랜 시간을 거쳐 지나오며 형성된 한 사회가 가지고 있는 사회 정서적 공감 분위기는 그 사회 구성원 각자에게 영향을 주는 문화와 관습으로 존중해야 하지 않을까? 앞서 언급한 "소통방식"으로서의 사람과 사람 사이에 적당한 "원초적" 거리 두기는 이제 더욱더 우리 사회에도 새로운 방식의 소통 수단으로 제대로 자리 잡아야 하지 않을까?


아니다, 앞서 살펴봤듯 이미 있다! 하지만 아쉽게도 많은 사람들이 의식하지 못하거나 어쩌면 알면서도 그저 자기만 편하자고 "뒤로 쑤욱 뺀 의자"처럼 , - 바로 '우리 자신'이기도한 - "타인"을 무시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사회적 소통방식](1편)

https://brunch.co.kr/@thehappyletter/18

[사회적 소통방식](2편)

https://brunch.co.kr/@thehappyletter/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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