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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The Happy Letter Sep 25. 2023

두 번째 번아웃Burnout, 두 번째 앙스트Angst

번아웃과 불안 증상의 2번째 근원적 이유


바쁜 현대사회를 살아가면서 직장 업무와 가사, 육아, 경조사, 사회생활, 대인관계 등으로 늘 피로와 스트레스가 함께 따라다닌다. 그러다 보면 어느 순간 털썩 주저앉을 것만 같은 번아웃(burnout)에 빠지게 되고 만다.


독자분들 중에 이미 경험하신 분들도 있겠지만, '탈진 증후군'(脫盡症候群)이라 불리는 번아웃은 ‘에너지 고갈 또는 피로감’으로 주로 만성적이고 장기적인 스트레스가 주된 원인인 경우가 많다. 보다 자세한 원인은 다양할 수 있으므로 전문가와 의사뿐만 아니라, 직장 업무상 과로와 감정적 소모, 탈진, 스트레스의 경우 다니는 직장과도 상담해야 하며, 가족과도 허심탄회하게 번아웃을 앓고 있음을 알려야 한다.


앞서 언급한 번아웃 관련 증상과 스트레스 해소 방안(휴식, 산책, 운동, 취미 활동, 명상 등)에 이르기까지 이미 많은 소개 글들이 있지만 심각한 경우 관련 분야 전문가의 도움을 받아야 함을 밝혀둔다.




1. Burnout vs 2. Burnout


필자가 많은 번아웃 관련 증상과 해소 방안에 관한 전문가의 글을 보며 눈에 띄게 화들짝 놀라게 만드는 구절이 있어 잊어버리기 전에, 또 필자 개인적으로 스스로 일상생활 속에서 경계(警戒)하고자 간략히 적어 본다.


두 번째 번아웃 원인으로 지목된 것은 다름 아닌 바로 "더 이상 그다음 목표가 없을 때" 나타난다는 사실이다. 우리는 열심히 일하고 (때로는 너무 많이, 너무 오래 너무 늦은 시간까지) 과로로 번아웃이 오는 가 했는데 - 물론 대부분 그러하다고들 하지만 - 반드시 그럴 때만 나타나는 것은 아닌 것 같다.


실은 딱히 육체적 에너지 고갈이나 극도로 피곤하지 않더라도 성취감이 감소되거나 의욕이 없어지거나 냉소적 거리감 등이 느껴질 때도 번아웃을 앓게 된다고 한다. 삶의 새로운 목표와 도전의식, 살아갈 의욕을 잃어버렸을 때도 나타난다는 사실이다.


정신적 탈진 상태로도 표출될 수 있겠지만 특히, 삶의 뚜렷한 목표와 방향, 가치관과 믿음이 없고 불확실성 속 의식의 방황은 과로나 탈진하지 않더라도 극심한 스트레스나 감정적 소모가 아니더라도 번아웃을 앓게 된다고 하니, 가장 우선적으로 일상생활 속 분명한 목표를 하나 정하고 힘들고 흔들릴 때마다 그 목표를 상기(想起)시켜야 한다.


스스로 정한 큰 목표가 '살아가는 삶의 이유'가 되고 살아가는 힘이 되어야 한다는 사실을 잊지 말자!


바쁜 일상생활 속에 가끔씩 스스로 자신에게 한 번씩 물어보자, 내가 살아가는 이유를. 무엇을 위해 또 누구를 위해 사는 지를.




*다음의 토픽은 조금 결이 다른 내용이지만 글의 테마를 풀어가는 구성상 (잊어버리기 전에) 여기에 함께 기록해 둔다.


1. Angst vs 2. Angst


불안(angst)에는 2가지가 있는 것 같다. 하나는 우리가 걱정 근심이 많을 때 느끼는 감정이고 다른 하나는 너무 행복한 데 불현듯 느껴지는 알 수 없는 불확실하고 두려운 감정이다.


필자가 주목하는 것은 바로 이 두 번째 불안이다. 정신분석학적, 심리적 분석은 관련 연구 논문이나 전문가에게 맡기고 오늘은 개인적인 정서적 일상 감정으로서 "행복감이 주는 불안감"에 대해 짧게나마 글로 써두고자 한다.


너무 좋은 순간이면 오히려 '불안'한 가? 너무 행복한데 오히려 지금 이 행복한 순간이 너무 불안하고 알 수 없는 두려움까지도 느껴지는 가?


우리는 대개 참고 견디는 것을, 겸손하고 사양하는 것을 미덕으로 알고 그렇게 배우고 자랐다. 맞다. 인내와 겸손은 사람이 살아가는 데 있어 가장 큰 덕목이자 값진 미덕임은 자명한 사실이다. 그러나 우리는 밖에서 가끔씩 무슨 기념일이나 행사, 모임에서 혼자 맛있는 것만 먹게 돼도 혹은 소중한 친구와 멋진 여행을 떠나도 집에 있는 가족을 먼저 생각하고 미안해한다. 좀 '가책'(呵責) 같은 것을 느낀다랄까?


왜 우리는 그 순간만이라도 행복을 마음껏 느끼고 누리지 못할까? 왜 미안하고 또 불안하게만 느낄까?


그 감정의 기저에는 이 행복, 또는 행복감을 잃어버리지 않을까 하는 상실에 대한 두려움이 앞서다 보니 그러는 것 아닌가라고 생각한다. 또한 이와 함께 무엇보다도 내가 이런 행복을 누려도 되나? 누릴 자격이 있는 가? 하는 자기 자신이 만드는 의구심(疑懼心) 때문이 아닐까 한다.


우리는 행복해지는 데 익숙하지 못한 것 같다. 행복감을 느끼고 그 행복을 (비록 짧은 순간이라 하더라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을 배워야 한다. 내가 행복해도 된다는 것을 자.신.있.게. (누구보다도 스스로 먼저) 인정하고 수용하는 용기를 내야 한다. 그래야 내 옆에서, 내 앞뒤에서 나를 지켜보는 모든 사람들도 더 행복해질 수 있지 않을까?









다음 [어학사전],

가책(呵責) : 자신의 잘못이 후회되어 스스로 뉘우치고 꾸짖음.

의구심(疑懼心) : 의심하고 두려워하는 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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