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 글쓰기(26) : 300번째 글발행에 즈음하여
늘 궁금했다. 브런치스토리에 300여 편의 글을 쓰고 발행한다는 느낌은 어떤 것일까? 필자만의 그 소회(所懷)를 여기 짧게나마 기록해 둔다.
에세이를 쓰고 싶었다. 하지만 글의 분량 부담인지 사고(思考)와 사유(思惟)가 정리정돈이 안되어서인지 자꾸 만연체로 늘어져만 가는 문체가 답답해 보였다.
'이미 한 말을 자꾸 되풀이하는' 중언부언(重言復言)을 보고는 어느 날 문득 시(詩)를 쓰고 싶어졌다. 어쩌면 시(詩)처럼 간결한 에세이를 쓰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시(詩)와 같이 함축적 언어로 압축된 은유(metaphor)가 내 에세이에 잘 자리 잡아주길 바랐다. 그렇지만 실상은 달랐다. 발행을 클릭하기 전에 다시 읽어 내려가다 내 머리끝이 쭈뼛거렸다. 그래도 그냥 발행하고 말았다. 이 또한 지금의 내 수준이고 내 '처지'(處地)가 만든 실상(實狀)이려니 했다.
누구는 여기서 브런치 글은 "수준이 아니라 취향"이라고 하던데 독자(작가)분들은 어떻게 보시는지 모르겠다. 며칠 열병을 앓듯 쓰다 지우다 반복하며 쓴 글들도 있었다. 순간적으로 떠오른 어떤 감흥(感興)으로 잊어버리기 전에 단숨에 빠르게 써 내려간 시(詩)들도 있었다. (물론 독자(작가)분들은 얼마나 고심(苦心)하고 썼느냐는 무관하게 보실 수도 있지만.)
지난번에 발행한 어느 글에서 어쭙잖게 "시(詩)는 읽는 사람의 것이다"라는 말을 <일 포스티노(Il Postino)>(the postman 1994)에서 인용한 적이 있었다. 다시 되새기려 또 적어둔다. 에세이든 어떤 다른 글들도 그 글을 읽는 독자가 읽고 공감하든 감동하든 다 독자가 판단하리라 본다. 하지만 부끄러움은 늘 글쓴이의 몫으로 남는다.
그래서인지 "글쓴이"(작가라는 말이 부끄러워지는 순간이기에)는 자기 글에 미련과 애착과 어떤 '과잉보호'를 버리지 못한다. 여전히 손에서 놓지 못하고 꾸역꾸역 덧칠을 하고 급기야 그 '사족'(蛇足)을 그려 넣고야 만다!
그래서 요즘은 말과 글을 짧게 하는 방법을 수련(?) 중이다. 또한 자기감정과도, 그러면서 동시에 '자기 검열'(自己檢閱)과도 부단히 싸우는 중이다. 어떤 용기(勇氣)를 배우는 중이다.
우리는 자고 일어나면 후회하는 일들이 생긴다. 그래서 여기 사람들은 어떤 중요한 결정을 앞두고 해? 말어?라는 어떤 선택의 기로에 놓일 때 (가까운 지인에게 조언을 구하면) "우선 오늘 잠부터 푸~욱 자고 나서 내일 아침에 일어나면 그때 결정해."라는 말을 자주 듣는다.
그만큼 우리는 매사에 매번 감정에 더 의존한 삶을 살고 있다는 말로 보인다. 나의 설익은 글들도 이제 발행하기 전에 충분히 '발효'될 때까지 더 기다려야 할까?
평소 하는 일은 이성적으로 해도 글은 감성적인 글을 쓰고 싶었다. 내 글을 읽는 (한 분이라도 있다면) 독자분이 피식 웃으며 공감할 수 있거나 어쩌면 커피 한 잔 마시는 잠시라도 글 읽는 순간만큼은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몰입할 수 있었다면 충분하리라 생각한다. 글은 읽는 사람의 것이라는 데 또 구구절절 사족(蛇足)이 길었다.
P.S. 지금까지 이렇게 많은 글을 쓰고 발행할 수 있었던 것은 모두 다 필자의 부족한 글을 꾸준하게 읽어주시는 독자(작가)분들 덕분입니다. 매번 읽어주셔서 고맙습니다!
자기 검열(自己檢閱) : 『심리』 자신의 마음속에 있는 위험한 욕망을 도덕적 의지나 사회적 준거로 억눌러, 의식의 표면에 떠오르지 않게 하거나 행동으로 옮기지 않도록 스스로 조절하는 일.
사족2(蛇足) : 뱀을 다 그리고 나서 있지도 아니한 발을 덧붙여 그려 넣는다는 뜻으로, 쓸데없는 군짓을 하여 도리어 잘못되게 함을 이르는 말.(Daum [어학사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