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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The Happy Letter Mar 17. 2024

꽃소식

브런치 글쓰기(28)


우리는 험하고 어려운 고난의 길을 가면 흔히 '가시밭 길'이라고 한다. 그 반대말은 '꽃길'이려나? 그냥 문득 든 생각으로, 꽃가마 타고 간다느니, 꽃마차, 꽃길 등이 있다면 "꽃소식"도 있을 것 같다. "무소식이 희소식"이라고 할 때마다 그냥 "무소식이 꽃소식"이라고 부르면 안 될까?


이 생기(生氣) 가득 차고 풋풋한 봄날 독자분들은 혹시 누군가로부터 애타게 기다리는 소식이 있는가? 개인적으로 필자는 내내 기다리는 어떤 '꽃소식'이 있다 보니 올해는 봄 오기까지 시간이 유달리 길게 느껴진다.


각설하고, 평소 다니는 산책길이 확연히 달라졌다. 지난 며칠 비 오고 난 뒤 그제부터 화사한 봄볕이 내리쬐더니 오늘 걷는 산책길은 온갖 꽃들이 형형색색 만개(滿開)하여 보는 사람들 모두를 괜히 들뜨게 만든다.


필자가 얼마 전 발행한 글, [어떤 단상 8]에서 프사에 올린 꽃사진 때문에, "너무 나이 들어 보인다"는 말을 들었다는 둥의 이야기를 쓴 적이 있다.



여담이지만 (다른 에세이 글에도 사진이 있지만) 어쩌다 보니 최근까지 100편의 시(詩)를 발행한 필자의 <THL 창작 시집> 매거진은 전체가 시집(詩集)이자 동시에 거의 하나의 사진첩(album)이 된 거나 마찬가지다.


시(詩) 한 편 짓고 발행해 올릴 때마다 흐린 날, 맑은 날, 비 온 날, 눈 온 날 상관없이 거의 매번 한 장씩 사진을 같이 올렸으니 말이다. 그런데 문제는 또 그 와중에 바로 "꽃사진"들도 많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오늘 또 여기 꽃소식, 꽃이야기투성이다.)




필자가 쓴 창작시(創作詩)들의 대다수는 필자가 이 동네 숲속길, 산책길을 걷다가 마음속에 떠오른 상념(想念)들을 시로 지은 것들이 많다. 그러다 보니 발행한 시 작품들에는 지난해 여름부터 가을, 겨울을 지나 올해 봄까지 사계절(四季節) 사시사철의 그 풍경과 경치를 담은 사진들이(꽃사진들도) 다수 포함되어 있다.


처음 시작(詩作)한 지난 한여름 때의 감흥(感興)에 대한 기억도 아직 많이 나고 또 그런 시(詩)를 지어가며 초고를 몇 번이고 다시 읽어보던 추억도 생각난다. 물론 그때그때마다 함께 호응해 주신 독자(작가)분들에 대한 기억도 아직 선명하다.


필자가 머지않아 이 동네를 떠나게 되더라도 거의 매주말마다 산책하며 한 장 두 장 찍은 사진들은 여기 브런치스토리에 오롯이 남아 나중에라도 시(詩) 한 편씩 다시 읽으며 감상할 때마다 오늘을, 여기를 추억(追憶)할 수 있게 되길 소망(所望)한다.


어쩌면 아주 많은 시간이 지나고 나면 이 사진들을 다시 볼 때 울먹이게 될지도 모른다. 그간 쓴 100여 편 이상의 시(詩)들을 읽으며 또 에세이 글들을 읽으며, 기록(!)과 추억이 함께 담긴 시를 쓰고 또 에세이를 쓰게 만든 영감(靈感)을 준 그 순간과 그 사진들 한 장 한 장을 먼 훗날 다시 보게 되면 말이다.





숲속 길가에 피어나는 봄기운을 만끽하며 또 야외에서 이렇게 흠뻑 취할 수 있는 봄내음 속 돋아나는 봄꽃과 새싹을 바라보는 일은 분명 즐거운 일이다. 또한 꽃과 나무를, 그 자연을 바라보는 이 산책이 몸뿐만 아니라 마음의 안정에도 분명 좋을 것임을 믿는다.


규칙적으로 매주마다 몇 회씩 꾸준히 하는 걷기는 다른 운동 못지않게 심신(心身)에 아주 좋은 운동이라고 한다. (속이 더부룩하고 소화가 잘 안 될 때나 마음이 답답하고 머리가 복잡할 때도 좋다고들 한다.)


어쩌면 밤에 쉽사리 잠이 들지 않아 어떤 불면증(insomnia) 같은 증상이 좀 있으신 분들은 (먼저 전문가의 진단과 처방이 우선이겠지만) 따로 시간을 내어 매일 자주 걷는 것도 도움이 되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물론 늦은 밤에 혹은 이른 새벽 시각에 혼자 조용히 책 읽고 글 쓰는 것을 각별히 더 좋아하는 "자발적" 야행성 '올빼미'(owl)들은 해당사항이 없겠지만.





이렇듯 걷기 예찬론자인 필자도 추운 겨울 날씨 핑계 삼아 최근까지 자주 바깥으로 나가지도 또 걷기 운동도 제대로 못했다. 정말 운동되게 하려면 제법 긴 코스를 잡아 왕복 두세 시간 정도는 걸어줘야 땀도 나고 운동이 되는 것 같다. 잡념도 많이 사라지고 마음도 한결 편해진다.


그런데 실내에 있는 시간이 많다 보니 필자 스스로 보기에도 최근 스마트폰과 노트북에 너무 많은 시간 동안 빠져있다는 생각이 든다. 예전엔 가끔씩 종이 노트에 펜(pen)으로 글을 써보기도 했다. (손글씨로 직접 원고지에 글 쓰는 기분 운운하면 또다시 연식(?)이 좀 된 것처럼 보이게 되려나?) 예전에 손수 삐뚤삐뚤 급하게 갈겨쓴 손 수첩이나 습작 노트 같은 메모지들은 이제는 많이 남아 있지 않지만 어쨌든 만년필 같은 필기도구를 손에 쥐고 쓴 글은 - 나중에 손은 좀 아파와도 - 결코 쉽게 쓱쓱 지우거나(delete) 또 차마 "휴지통"(bin)에 버리진 못했다.


필자는 TV 방송에서나 현지 여행 중에 대문호( 大文豪)라 불리는 유명 작가들의 생가(生家)나 박물관 등을 보게 되면 여러 유품(遺品)들 중에서도 특히 친필(親筆)의 낡은 습작 노트나 메모지 등을 인상 깊게 보는 편이다.


그 유리 케이스 안쪽 너머로 전시되어 있는 예전 오래된 습작 메모지의 필기체 흘림 글씨는 읽기조차 어렵다. 하지만 그 작가의 육필(肉筆 handwriting)에서 풍기는 어떤 고뇌와 시름이 전해지는 듯하여 그 앞에 서서 보고 있노라면 매번 가슴이 뭉클해지고 왠지 모르게 자꾸 숙연해지기도 한다.





요즘 들어 다시 하는 질문이다. 나는 과연 며칠, 아니 몇 시간을 스마트폰 없이 지낼 수 있을까? 디지털 중독에서 벗어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혹자에게는 이런 물음들이 어느새 어쩌면 좀 식상해져 버린 토픽인지도 모르지만 필자에겐 여전히 유효한 화두(話頭)이다.


바로 그 '디지털 디톡스'(digital-detox)를 다시 깊게 생각하게 만드는 요즘이다. 그러다 보니 무슨 "000 디톡스" 등등 별의별 디톡스가 다 있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도파민 디톡스"(dopamine-detox)라는 말은 무릇 인기 있는 SNS의 부정적 영향이나 사회적 병폐를 말할 때, 또 좋아요 숫자 중독이나 댓글 반응 집착 때문에도 자주 거론되고 있다.


그렇다면 여기서 "브런치스토리 디톡스"(BrunchStory-detox)라는 말도 가능할까 생각해 보게 되었다. (사실 제일 어려운 건 "알코올[술] 디톡스"(alcohol-detox)이겠지만)


필자도 가끔씩은 너무 열심히 앞만 보고 내달리던 분들이 겪는다는 직업병처럼, 슬럼프(slump)나 번아웃(burnout) 증후군과 비슷한 증상을 다시금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최근까지 (결과적으로는) 그저 '부끄러움'만 잔뜩 남은 300여 편의 글을 발행하고 그 소회(所懷)를 쓰면서 이 브런치스토리 글쓰기에, 또 그 글발행과 호응이 주는 '도파민'에 나날이 점점 너무 중독되어 가는 자신을 보면서 걱정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주말인 내일도 필자는 폭풍 글짓기(글쓰기)를 잠시 멈추고 다시 동네 숲속 산책길로 나가려고 한다. 필자가 좀 뜸하면 "아, 산책 중이구나, 디톡스 중이구나"라고 여기시면 될 것 같다.


하지만 그 산책 중에도 여전히 스마트폰은 도저히 끄지 못할지도 모른다. 자연 속을 걷다가 즉흥적으로 단상(斷想)이 떠오르면 이 편리한 '문명의 이기'(利器)에 바로 적어 그 생각을 잊어버리기 전에 저장할 수 있기 때문이다. '디톡스'를 말하면서도 이런 편리성(便利性), 이기(利器) 운운하는 어떤 양가감정(兩價感情) 같은 행태를 보이는 자신이 스스로 생각해도 한없이 약해 보인다.


예를 들어 애써 변명하자면, 필자는 산책하며 걸을 때 떠오르는 기억들은 떠오르는 그대로 받아들이게 되는 것 같다. 반면 책상 앞에 앉아 있거나 누워서 생각할 때는 이런저런 개인적인 기억의 파편조차 임의적으로 편리하게 편집(!)하려고 하거나 아예 부정하려고도 하는 것 같다. 하지만 서서 걸어가면서는 쉽게 그럴 수 없다. 내 몸이 이미 걷고 움직이는 데 보다 더 집중되어 있을 때는 불현듯 순간적으로 갑자기 떠오르는 과거의 기억과 같은 머릿속 상념에 (혹여 좋지 않은 우울한 감정은 더더욱) 바로 방어(?)할 틈이 없어서 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글쓰기를 다시 시작하게 만드는 그 자연이 주는 영감(靈感 inspiration)은 양보할 수 없기 때문이다. 어떤 영감이 떠오른 그 순간에 바로 메모를 하려고 하기 때문이다. 안되면 그냥 키워드(key word) 몇 개의 단어만이라도. 과거에 대한 기억이든, 현재의 감성(感性)이든, 미래에 대한 막연한 꿈이든 두려움이든.


복잡 난해한 삶의 의미와 시련, 또 그에 관한 의문들의 답은 어쩌면 우리가 살아가는 이 자연 속에서 그리고 자연과 교감(交感)하면서 그 해답(解答)을 찾아야 할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어떤 수련생(修鍊生)이 무엇을 수련하듯 글쓰기도 글을 쓰고 발행하면서 매번 늘 행복할 수만은 없겠지만 어떻게든 만족하는 법을 배우는 하루하루가 될 수 있기를 희망(希望)한다.


항상 넘치지 않게 쓰면서 자족(自足)하는 법을 배울 수 있기를, 또한 한 가지를 얻으면 다른 한 가지를 잃게 될 수도 있다는 것을 깨우치는 지혜도, 그 자연의 섭리(攝理)도 함께 배울 수 있기를 소망(所望)한다. 또 다른 "꽃소식" 갖고 곧 다시 찾아올 수 있기를...














디톡스(detoxification) : 해독. 몸 안의 독소를 없애는 일.

디지털 디톡스(digital-detox) : 디지털에 중독된 현대인의 심신을 치유하기 위해 디지털 기기 사용을 중단하고 휴식을 하는 요법.

양가감정(兩價感情 ambivalence) : [심리] 논리적으로 서로 어긋나는 표상의 결합에서 오는 혼란스러운 감정. 어떤 대상에 대하여 동시에 대조적인 감정을 지니는 일 등을 이른다. (Daum [어학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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