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창회(同窓會) 또는 동문회(同門會)나 교우회(校友會) 모임에 가든 안 가든 개인적 선택이다. 이 글은 주관적 판단임을 전제로 동창회(alumni meeting / class reunion) 문화와 그로 인해 대표되는 우리 일상생활 속 경계(警戒) 해야 할 대상을 들여다보려는 지극히 개인적인 단상이다.
지인으로부터 전해 들은 에피소드(episode)다. 어느 날 고교(高校) 동기동창회 모임에 나갔다가 본 광경(光景)을 다음과 같이 전했다.
오랜만에 마련된 고등학교 동기들의 식사모임 자리라 처음엔 서로 인사하느라, 근황토크하느라 각자 자기 자리 주변에 앉은 옛 동기들과 이야기꽃을 피웠는데, 분위기가 무르익고 술 몇 잔씩 주고받고 나니 어느 순간부터였는지 모르게 어느새 동기들이 어느 한쪽 테이블에만 유난히 많이 "바글바글" 모여있음을 보게 되었다고 한다. 마치 먹다 흘린 과자 조각에 개미떼들이 달라붙어 모여있듯이.
그 테이블엔 바로 법조인[판사] 남편을 둔 동기가 앉아있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저만치 떨어져 반쯤은 비어있는 한산해진 식사 테이블에 따로 앉아서 그 광경을 물끄러미 지켜보던 지인은 어떤 말 못 할 씁쓸함을 금치 못했다고 한다.
필자의 매거진 <THL 행복론>에 앞서 발행한 글들과 <Aphorism 한 줄to THL>에 발행한 [불행의 원인 : 비교의 함정]에서도 이미 거듭 언급하며 강조했듯이 비교는 불행의 시작이다.
세상 모든 사람들을 볼 때마다 그들 각자의 장점만을 다 빼닮으려고 할 수는 없다. 더욱이 다른 모든 사람들의 장점(강점)들과 나의 단점(약점)을 단순 대입해서 비교하는 사람은 결과적으로 불행해질 수밖에 없다.
또한 우리는 원래 모두 다 똑같지도 않다. 각자 처한 환경에 따라, 각자 가진 능력과 재능과 취향에 따라 다르게 살고 있다. (다름을 스스로 인정하지 않는 사람은 남들도 "그렇게" 보게 되는 위험에 빠질 수도 있다.)
단지 판사 부인이 된 (혹은 판사가 된) 그 동기동창을 부러워함으로 인해 우리가 불행해질 (불행하다고 느낄) 이유는 없다. 우리는 우리대로 행복하면 된다. 물론 그 판사도 그 부인도 그들대로 행복하면 된다. 여기서 필자가 하고 싶은 말은 나의 (또는 내 배우자의) 직업이 "00"이냐 아니냐가 내 행복의 기준이나 척도가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우리들 대부분은 아예 '다른 레벨'에 있는 엄청난 재력가나 최고위층 관료나 정치인 또는 슈퍼스타 선수, 톱연예인 등 특별히 유명한 셀럽들(celebrities)과 비교할 때는 그냥 부러워하고 말 수도 있지만, 같은 나이나 비슷한 또래와 비교할 때는 일상 속 각자의 현실이 되어 상대적 빈곤을 느끼게 된다. 그 비교로 인해 불필요한 감정소모도 많아지고 괜한 자괴감(自愧感)에 빠지게 되고 만다.
요즘 세대는 예전 기성세대만큼 동문회라든가 동창회 문화가 그렇게 큰 소속감과 일체감을 주지는 않겠지만 그래도 아직 다수는 그런 모임에 나가는 이유가 사회생활해나가다 보면 "인맥"(人脈 networking / connections)이 필요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특히 한국사회에서 늘 강조하는, 그 다다익선(多多益善)의 지인들 관계 형성과 관리, "인맥관리" 차원이라고 한다.
그런 의도와 목적의 만남(모임)도 존중한다. 하지만 잊지 말아야 할 것은 혼자 일방적으로 만든 인위적 인맥은 인맥이 아니다는 사실이다. 진정한 인맥은 상호 간의 유대(紐帶) 의식을 가진 인간관계이며 서로의 호의와 관심, 그런 양방향의 상호교류를 통해서만 제대로 이루어진다.
그리고 좀 뼈 때리는 말이 될지도 모르겠지만 학교 동창회만이 아니라도 각종 단체나 모임을 통해 좋은 사람을 만나고 든든한(?) 인맥을 쌓으려면 (늘 듣는 말이지만) 내가 먼저 좋은 사람이 되어야 한다.
삭막한 능력주의 경쟁사회 속 어떤 능력 있는 사람(지인)들을 유사시(?) 나의 인맥 리스트 중에서 조력자나 (인맥이라는 힘으로) 적재적소(適材適所)에 나의 "빽"(back)으로 써려면 내가 먼저 능력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말이다.
그리고 진짜 찐친들은 어차피 자기들끼리 삼삼오오 다들 따로 만나고 또 자주 어울리고 있다. 대화가 잘 통하는 구성원들이라면 그런 소모임들에 집중하는 편이 차라리 더 나을지도 모른다.
혹시 동창회 모임에 운영위원으로 직책을 갖고 있거나 모임준비를 주관하시는 분들이 이 글을 보시더라도 걱정하실 필요는 없다. 그래도 갈려고 하는 사람은 계속 가기 때문이다.
자신이 하는 사업 관련 영업이나 광고, 혹은 최신 핫한 정보수집 내지는 업데이트, 또는 다른 목적과 의도(청탁이나 소개)가 있는 사람들도 있을 수 있고, 아니면 그냥 그저 가끔씩 옛 동기나 동문들을 만나 식사하고 술 한잔 마시며 단순히 회포(懷抱)를 풀기 위해서 갈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 글 서두에 적어둔 것처럼 동창회 모임에 가든 안 가든 전적으로 개인적 선택이고 자유다. 물론 처음부터 그런 모임에 나갈까 말까 망설이며 고민하는 유보적인 입장의 사람들도 많다. (꼭 자신은 안 나가면서 전화로 누구누구 나간대? 아니면 지금 누구누구 왔어?라고 묻기만 하는 친구는 항상 어디든지 있다.) 꼭 누구누구가 나오면 나도 나가겠다고 말을 하는 그것 또한 그들의 자유다.
하지만 그 동기동창 모임에 참석을 하든 안 하든 남[옛 친구]의 직업이나 살림살이가 내가 갑자기 "배가 아파지는" 단초(端初)가 되어서는 안 된다. 그 어떤 단순한 비교로 말미암아 내 불행의 시작을 스스로 자초(自招)해서도 안된다.
우리가 힘들고 고된 세상 함께 부대끼며 살아가다 보니 또 서로의 공통점을 찾다 보니 생긴 현상이라고도 하지만 그래도 한국사회만큼 수십 년이 지나도 여전히 예전 졸업한 출신학교, 동창생과 동문 선배며 후배를 이토록 많이 따지는 나라가 또 있을지 모르겠다.
(하지만 출신 대학은 좀 별개인 것 같다. 한국뿐만 아니라 미국 등 일부 나라에서도 명문대 출신을 특별히 우대하며 학교졸업 후 사회(직장) 생활에서도 선후배 간에 밀어주는 학벌주의 사회가 능력주의와 엘리트(elite)주의와도 맞물려 있기 때문이다. 이는 파벌(派閥)이나 학벌 카르텔(cartel) 내지는 특정집단의 세력화 문제와 함께 대학입시제도 및 대학서열화에 따른 이슈와도 연관 있으므로 다음 기회에 따로 좀 더 다루어 볼 예정이다.)
어쩌면 혹자는 한국에서 험난한 사회생활과 직장(조직) 생활을 해나가려다 보니 이런저런 인간관계 형성을 통해 서로 도움을 주고받을 일이 많이 있으니까, 그래서 우호적인 인맥의 지인들이 주위에 많이 필요하니까라고 항변(抗辯)할지도 모른다. (가능하면, "특정 (인기) 직업군"에 종사하는 지인들이)
예를 들어, 자기 사업을 크게 하거나 지금 종사하는 직업군별 자기 업종 분야에서 회사 조직 내 고위 임원이거나 최고경영층이어서 또는 각종 00 판매/영업 등 경제활동과 홍보, 특히 "정치"를 하기 위해서는 자기 전문분야를 떠나서도 다양하고 폭넓은 인맥이 꼭 필요하다는 사람들도 있을 수 있다.
끝으로, 독자(작가)분들이 자신이 졸업한 초. 중. 고교, 대학교로 인해 그리고 그런 학연(學緣)에 - 꼭 무슨 부정부패 같은 비리(非理)가 아니더라도 - 덕(德)을 본 적이 있다면, 또 지금도 (공정하고 정당하게) 그런 덕을 보고 있다면 필자는 더 이상 할 말이 없다.
(*우리 한국사회에 고질적(痼疾的)인 학연, 지연, 혈연에 대한 별도의 추가 논의는 다음 기회로 넘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