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샤갈 특별전 : Chagall and the Bible
전시기간 : 2021.11. 25 - 2022. 4. 10
(공휴일 정상 개관)
관람시간 : 월-일 10:00 - 20:00 (입장 마감 19:00)
장소 : 마이아트 뮤지엄
마이아트 뮤지엄은 삼성역 코엑스 근처에 있다. 얼마 전까지 코엑스 소재의 회사에서 꽤 오래 일을 했고, 병원 때문에 항상 지나가던 곳인데 그곳에 뮤지엄이 있는지 미처 몰랐다. 미술관 길 찾기를 보는데 너무 자주 지나가던 곳에 있어서 당황했다.
기억력이 거의 붕어 수준이라 대화의 절반이 ‘기억이 안 나’인데, 주변인들도 이제는 내가 무언가를 기억하고 있을 거라는 기대를 버린 지 오래다. 그런데 샤갈의 그림을 처음 만났던 때가 흐릿하게 기억이 난다. 아주 오래전에 어느 카페 창문에 그려졌던가 붙어 있었던가... 아무튼, 그림을 보고, 어떤 매력에 끌려들어 가는 기분이 들었다. 당시의 카페 이름을 검색하고 이래저래 찾은 끝에 그 그림은 샤갈의 ‘나와 마을’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전까지는 그림에 별로 관심이 없었다. 화가들 이름도 너무 어렵고, 그림을 이해하는 것도 어렵고, 어렵고, 다 어렵고 나와는 다른 세계 속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카페 창문에 붙은 조악한 그림을 보고 처음으로 미술관에 가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멀리서 보면 알록달록하니 예쁘고 신비한데 가까이 갈수록 뭔가 뒤죽박죽이고, 제목을 알고 나니 샤갈이 고향이 그리워서 꿈속에서 본 고향 마을을 그린 걸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 이후, 초록창에 검색해서 찾아본 샤갈의 그림들을 보면 꿈속을 날고 있는 것처럼 느껴지고 알록달록 한 것이 신비롭고 아름답고 기괴하기도 한 것이 그냥 좋았다.
그래서 샤갈의 그림을 본다는 엄청난 기대 속에 미술관을 방문했는데, 깜짝 놀란 일이 두 가지가 있었다. 첫 번째는 내부에 사람이 너무 많아서다. 일요일 오후라 그랬을 수도 있지만, 미술 전시를 보는 사람이 이렇게나 많다니 아이와 함께 온 보호자나 연인들도 많이 보였고 무리로 왔거나 나처럼 혼자 온 사람도 많았다. 전시를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볼 정도로 샤갈이 대중에게 친숙하고 인기가 많은 이유는 이름이 쉬워서인 것 같다. 물론 작품이 너무 훌륭해서겠지만, 다른 훌륭한 화가들의 이름은 너무 어렵... 다.
전시회를 볼 때 도슨트는 잘 안 듣는 편이다. 물론, 그림을 알고 보면 재밌고, 이해도 잘 되겠지만 제멋대로인 나는 그림도 내 맘대로 느끼고 싶다. 잘못된 느낌을 받아 그림과 화가를 오해할 수도 있지만, 그냥 오인 한 대로 느끼고 싶다. 그게 내 감정이니까! 물론, 너무 잘못되게 받아들일 수 있다는 위험도 있고, 도슨트 설명과 함께 들으면 그림이 더 잘 보이고, 느껴지고, 지식도 쌓이고, 더 풍성하고 재밌는 것은 분명하다. 뭐, 각자의 생각대로 즐기면 된다고 본다.
아무튼, 두 번째로 놀란 것은 알록달록한 색채와 꿈속을 나는 듯 한 몽환적인 그림을 생각했는데 전시회장에서 맞닥뜨린 그림은 그런 것이 아니었다. 내가 보고 싶었던 그림들은 별로 없었고, 그림을 보면 볼수록 알 수 없는 답답함과 어깨도 무겁고 두통도 느껴졌다. 그제야 전시회 기본 정보에 성서를 주제로 한 그림들이라 쓰여 있던 문구가 흐릿하게 기억났다. 좀 더 자세히 알고 갔다면 그런 느낌을 덜 받았을 텐데 내 잘 못이다.
솔직히, 나는 그림이나 미술 쪽은 하나도 모른다. 그냥 까막눈이다. 심지어는 색깔 구분도 잘 못 한다. 오래전에 좋아했던 베이지색 단화가 있었는데 친구가 그 색은 인디 핑크라고 정정해 주었다. 물론, 인디 핑크는 대중적인 색이 아니기 때문에 ‘어 그런 색이 있어? 나도 몰랐는데?' 하며 나를 두둔할 사람도 많을 것이다. 나도 인디 핑크라는 색이 있단 사실에 놀라 기억이 난거지, 나머지 정정된 일화들은 잘 기억나지 않는데 그 친구가 정정해 준 색이 꽤 많다. 색맹은 전혀 아니다! 뭐, 그 애는 사실을 정정해줬을 뿐이고, 나는 새로운 정보에 놀라 감탄하고서는 곧, 잊어버리고 내가 금세 잊을 거란 것을 그 친구도 잘 알고 있다. 그래서 우리가 잘 지내는 모양이다.
핑크색 하나에도 이름이 참 여러 가지다. 핫핑크, 베이비 핑크, 마젠타 핑크, 베이커 밀러 핑크 등등 이 색을 다 구별할 줄 사람이 있을까? 핑크라는 색이 점점 옅어지거나 점점 진해지면서 개성이 생기고 그 개성에 따라 고유한 이름이 생성된다. 그러면 그 색은 핑크가 맞는 건가 이름에도 핑크가 들어가고 핑크에서 파생되었으니 핑크라 할 수 있는 건가? 아무튼 미술 쪽은 이토록 취약하다.
나는 특정 종교도 없고, 성경 내용도 잘 모른다. 그래서 아벨과 카인, 모세, 노아의 방주, 솔로몬 같은 유명한 이름들이 쓰여 있으면 괜히 반가웠다. 그런데 그 이름들의 일화도 자세히는 알지 못한다. 일행 중에 성서 내용을 아는 사람이 있으면 거의 개인 도슨트처럼 재밌게 이야기를 들으며 그림을 즐기는 것 같았다. 아, 어쩌면 속으로 그림 좀 보게 그 입 좀 닥쳐 줄래?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분명 있을 것...
<Le peintre en rose1959, 전시를 다 보고 마음에 들어 엽서 몇 장과 구매한 색상으로 인쇄된 석판화와 마침, 택배로 주문한 꽃들이 도착해서 급 꾸며 보았다.>
사실, 전시를 한 바퀴 돌아본 후에 도슨트를 들으며 다시 볼까? 하는 생각도 있었는데 너무 힘들어서 두 번 볼 용기가 나지 않았다. 이런 고통스러운 느낌을 받은 이유를 뒤늦게 알게 되었는데, 사람이 너무 많아 전시벽에 적힌 큰 설명들을 못 읽고 지나친 것들이 있어서 퇴장하기 전에 다시 찾아가 읽어보았는데. 샤갈은 유대인으로 세계대전을 겪고, 많은 고통을 받았다. 십자가에 못 박혀 고통받고, 조롱받는 예수나 성서 속 인물들이 느낀 고통을 자신의 고통과 동일시했다고 한다. ‘십자가에 못 박힌 그리스도처럼, 나는 이젤에 못 박혔다.'라는 표현이 아직도 기억에 남는다.
나도 가끔 어떤 노래의 가사 속이나 드라마나 영화의 대사 안에서 그런 것을 느낄 때가 있다. 가사와 극 중 캐릭터들은 가엽거나, 크고 작은 불행들이 있는데, 그 가여움이, 그 불행이 어딘가 조금이라도 나와 연대가 있을 때 함께 아파하고, 울기도 한다. 그래서인지 샤갈의 마음이 이해가 될 것도 같았다.
그런데, 나는 너무 고통만 느꼈는데 샤갈이 남긴 ‘모든 생명이 필연적으로 종말을 향해 가고 있다면, 우리는 살아가는 동안 사랑과 희망의 색으로 그것을 물들여야 합니다.’라는 말을 생각해보면 세계대전을 겪고, 그러니까 인간의 최하점, 인간이 들어낼 수 있는 인류 최악의 밑바닥을 보고 겪었음에도 성서와 그림을 통해 샤갈 개인의 고통뿐 아니라, 유대인들의 고난과 민족의 아픔을 치유해 보려던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고, 그런 고통을 겪고도 인류에 대한 희망과 사랑을 놓지 않다니... 굉장히 사랑이 많은 사람이었을 것 같다. 그래서 내가 검색을 통해 본 그림들이 그렇게 몽환적이고 꿈결 같고 아름다웠나 보다.
그림도 성서도 잘 몰라서 리뷰를 쓸 마음이 없었는데, 그냥 문득, 쓰고 싶어서 쓰는 지금은 도슨트를 들을 걸... 하는 후회가 남는다. 그런 내용들을 알고 보았다면 그렇게 고통만 느끼지는 않았을 것 같다. 혹시라도, 꿈속에서 샤갈을 만난다면 인류는 그런 실패와 최악의 상황들을 겪으며 조금씩 좋은 방향으로 올바른 방향으로 변화하고 진화해 가고 있는 것 같다고, 물론, 아직도 문제가 너무 좀, 엄청나게 심하게 많긴 한데... 그래도 당신이 틀리지 않았을 거라고, 이기적이고 불평불만에 가득 차 있지만 인간은 불의에 분노하며 촛불을 들고, 사고로 도로가 전복되면 모두 달려 나와 사고차량의 운전자를 끄집어낸다. 그러니 인간은 존중받고 사랑받을 가치가 남아 있을지도 모른다고 초록색 얼굴을 하고 있는 그에게 하늘 위로 둥둥 떠오른 내가 목이 이상하게 꺾긴 채 말해주고 싶다.
(전시를 다 보고 나면 이렇게 스탬프를 통해 샤갈의 그림들로 꾸밀 수 있다. 샤갈의 세계관에 맞게 꾸며 보려 노력은 해 보았다. 사람이 별로 없었다면 스탬프를 좀 더 잘 찍을 수 있었을까? 음, 미술엔 영... 소질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