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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ochi Mar 31. 2020

이해하거나 오해하거나 2

[무엇이 다양성과 포용성을 가로막는가] 임산부 이대리와의 경험의 차이

이 대리의 퇴사가 결정되고 우리 팀엔 열정 넘치는 신입 사원과 인턴이 들어왔다. 그 사이, 끊임없이 일을 퍼붓던 한 상무는 퇴임을 했고, 스트레스가 적어진 나는 건강을 되찾았다.


그리고 나의 신상에 변화가 생겼다. 나에게 아이가 생긴 것이다.


처음엔 얼떨떨하기만 하던 임신은, 하루하루 생명의 신비로움과 감사와 기쁨으로 바뀌었다. 무슨 검진이 그렇게 많은지, 주중에도 정기 검진을 받으러 산부인과에 가야 했는데, 휴가를 내야 되는 것이 팀원들에게 미안했지만, 초음파를 통해 꼬물꼬물 움직이는 아기를 보는 순간, 이 소중한 순간을 놓치지 않은 것이 천만다행이라는 생각을 했다.

매일 아침 출근길, 밤새 쌓인 이메일을 보며, 오전에 처리해야 할 업무 순서를 정리하던 나는, 어느 브랜드의 유모차가 흔들림이 적은지, 이번 주말 베이비 페어 오픈 시간은 언제인지, 어떤 태교가 아기에게 좋은지 검색하고 있다.

시간을 쪼개 외부 교육을 다니고, 회의실과 회의실을 뛰어다니며, 점심을 김밥으로 때우던 나는, 혹시라도 아기 건강에 문제가 될까, 외부 모임은 거절하고 천천히 걷고 천천히 먹으며, 일상의 속도를 늦추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면역력이 떨어져서인지, 한 계절이 다 가는 동안 감기를 달고 살았으며, 오후만 되면 온 몸에서 기운이 쭉쭉 빠지는 것을 느낀다.

내 일상에 이 대리의 모습이 언뜻언뜻 비치는 요즘, 부쩍 그녀 생각이 많이 난다. 뱃속의 아기가 툭 툭 툭 움직이며 태동을 느끼게 할 때, 나는 잠시 타이핑을 멈추고 배를 쓰다듬는다.


왜 나는 한 여성의 가치관이, 커리어가, 일상이, 임신과 출산으로 바뀔 수 있다는 것을 이해하지 못했을까. 

아직 태어나지도 않은 아기도 이렇게 사랑스러운데, 출산 후에는 얼마나 예쁠까!

그 작은 아기를 두고 육아를 선택한 것이 당연한 것일 수 있음을 그때는 왜 알지 못했을까.




현재 우리나라는 ‘0명대 출산율’ 국가이며, 2015년 이후 출산율은 지속적으로 떨어지고 있다(출처: 2020 통계청 KOSIS 기준, 가임여성 1명당 출생아수). 국가에서는 임신, 출산에 대한 다양한 정책을 내놓고 있지만, 출산휴가, 육아휴직, 단축근무제, 정기검진을 위한 휴가 제공, 출퇴근 시간 및 업무 조정, 대체 인력지원 외에도 회사의 업무 특성에 맞게 더 많은 지원 제도가 도입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제도가 받아들여지는 조직 문화가 되기 위해서는, 함께 일하는 조직 구성원의 인식의 변화가 선행되어야 한다.


그런데 어떻게, 경험해 보지 못한 것을 이해할 수 있단 말인가?

우리는 어떤 노력을 기울여야 하는 것일까? 



포용적인 리더가 되기 위한 방법 하나. 

나의 스토리를 구체화하여 다른 사람에게 들려주기


임신과 출산은 남성은 평생, 그리고 여성이라도 본인이 선택하지 않는 한 경험할 수 없는 과정이다. 임신, 출산을 경험해 보지 못한 여성과 남성에게 ‘임산부를 배려하자’는 이야기는 공감하기 어렵고 때로는 역차별로 느껴진다. 그래서 이러한 과정을 겪은 사람들이 구체적인 사례를 통해 타인에게 알리는 것이 중요하다. 나의 경험을 구체화하는 방법은 어렵지 않다. 다음의 ‘상황-행동-결과’의 순서로 에피소드를 이어 붙이면 효과적인 스토리텔링이 가능하다.

* 어떤 상황이었나? (나는 어디에 있었고, 거기엔 누가 있었나?)

* 나는 어떤 행동을 했나?

* 결과는 어떠했나? (타인에게 어떠한 영향을 끼쳤나?)    


나는 가까운 지인들에게, 임산부에 대한 부족했던 나의 공감 능력과 포용력에 대해 반성하며, 지금처럼 솔직하게 나의 이야기를 전달한다. 물론, 이 대리와 있었던 갈등을 털어놓은 후, 상대방의 변화에 대한 당부도 잊지 않는다.


“회사에 임신한 여성 있다고 했지?

 업무 배려 잘해주고 있어?

 지금 체력적으로 힘들기도 하겠지만 정신적으로도 예전만큼 업무에 몰입하기 힘들 거야. 

 그렇다고 배척하지 말고,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이야기 많이 들어주고, 실제로 필요로 하는 걸 지원해 줘. 

 엄마가 된다는 건 개인적으로도 많은 걸 포기하는 과정이야.

 그 과정을 잘 보내고 있다는 걸 격려해 주는 것만으로도 큰 힘이 될 거야.

 우리부터 노력하면, 20년 뒤 우리 자녀들이 회사 다닐 때는 조직문화도 바뀌지 않을까?

 임산부를 포함하여 구성원들이 서로를 이해하고 배려하는 더 좋은 조직문화로 말이야.”



포용적인 리더가 되기 위한 방법 둘. 

방전된 순간에는 의사결정을 미루기


우리는 체력적으로 에너지가 고갈되어 있을 때, 훨씬 더 쉽게 편견을 갖는다. 인간은 누구나 하루에 제한된 정신적 에너지를 가지고 일하는 것이 현실이며, 그 에너지가 사라지면 사려 깊은 결정을 내리는 능력과 공감력이 현저히 저하된다. 복잡한 문제에 대한 결정은 물론 단순한 의사결정마저도, 에너지가 고갈되어 있을 때는 어렵게 느껴진다는 것을 경험한 사람이 많을 것이다. 에너지 고갈 상태에서 생기는 편견을 최소화하기 위해, 실천할 수 있는 일이 몇 가지 있다. 

* 체력적으로 힘들다고 느낄 때, 사소한 결정은 최소화하여 에너지를 절약하기

* 중요한 결정은 정신적 에너지가 충분한 오전 시간을 이용하기

* 수시로 당을 충전하는 등 스스로를 컨트롤할 수 있는 나만의 힐링 방법을 활용하기


이 대리의 단축근무 요청을 들었던 그 날 오후로 돌아갈 수 있다면, 나는 더 현명한 의사결정을 위해 번아웃 상태를 피했을 것 같다.


“단축근무제 처음 들어보는 거라 사실 어떤 제도인지 잘 모르겠어요. 인사팀에 문의해 놓을게요.

 그리고 오늘은 우리 둘 다 좀 쉬고, 내일 오전에 앞으로 어떻게 하면 좋을지 이야기해요. 

 저도 요즘 일이 많아서, 인력 충원에 대해 고민하고 있었거든요.

 회사 제도와 그에 맞는 우리 의견을 정리해서, 상무님께 같이 말씀드려 봐요.”



포용적인 리더가 되기 위한 방법 셋. 

그 누구도 완벽할 수 없다, 알파걸에 대한 집착 버리기


어쩌면 이 대리와 다른 성향의 엄마들도 많을 것이다. 배려를 받을 수 있는 업무 환경임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업무 능력이 임신으로 인해 퇴색되지 않도록, 평소보다 더 열심히 일하는 여성. 그래서 조직 내에서 자신을 증명해내고 모든 것이 완벽한 알파걸로 인정받고자 하는 여성. 이미 그녀의 업무 대체자가 없을 정도로 뛰어난 능력을 인정받고 있는 여성.


그런 그녀들의 열의와 프로페셔널함에 박수를 보내고 나 또한 그런 여성 리더가 되고 싶다.

하지만 너무 혼자만 애쓰지는 않으려 한다.

힘든 부분을 솔직하게 공유해 두어야, 발버둥 치며 무리했던 나와 후배 임산부가 비교되지 않을 것이고, 임산부를 위한 현재의 최소한의 지원 제도가 유지될 수 있기 때문이다.

번아웃으로 잔병치레를 했을 때, 나의 한계와 스트레스를 팀원들에게 솔직하게 털어놓았다면 어땠을까?

아마도 인력 충원은 더 빨리 진행되고, 이 대리도 마음 편히 단축근무제를 활용할 수 있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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