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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ochi Jun 26. 2021

회사에 금발의 동료가 있으면 생기는 일

[무엇이 다양성과 포용을 가로막는가] 국적, 인종에 대한 편견

금발에 크고 깊은 눈,  키의 백인 남성 제이슨. 그가 "안녕하세요, 식사는 하셨어요?"라며 정확한 한국어 발음을 구사하며 인사를 건넬 때면, 그 누구든 눈에 하트를 그리며 호감을 표한다.


대학 시절 한국인 여자 친구를 만났고 그렇게 사랑하는 사람을 통해 우리나라를 좋아하게 되었다는 그는, 지금은 배우자가 된 그녀와 함께 20년 가까이 한국에 거주하고 있어, 한국의 음식이며 문화에 대해 모르는 게 없다. 그런 그를 열이면 열 좋아하는데, 나 또한 그와 대화를 나때면, 어깨가 으쓱해진다.




언어의 장벽, 체격의 차이, 부리부리한 눈빛과 큰 목소리, 자유롭고 거침없는 행동은, 분명 여기가 한국인데도 서양인 앞에만 서면 어렵고 낯설어, 나를 주춤하게 만들 했다.


회사는 또 어떠했나? 한국식 업무 스타일은 창의적이지 못하고 구시대적이라며, 나에게는 종종 미국식 조직문화와 업무 방법론을 도입하여 직원들을 화시키라는 과업이 주어지곤 했다. 나 자신부터 설득이 되어야 일을 할 수 있었기에, 나 미국인과 미국 기업 문화가 우리 회사의 지향점이 정답이라는 틀에 나를 가두 왔다.


그래서일까. 제이슨과의 교류는 그동안 선망의 대상이었던 미국 사람과 어느 정도 대등한 위치에 있다는 생각 내지는 인이 한국을 좋아하고 한국 사람을 인정한다는 에서 오는 듯함을 끼게 했다.


서양인에 대한 이러한 경험과 각은 나만의 이야기는 아닌 듯하다. 비즈니스 미팅 자리에서 제이슨이 남기는 인상 강렬하다며, 그를 찾는 클라이언트가 상당하 때문이다. 자세한 내막은 알기 어려우나, 사실 그는 몇 년 전 우리 회사를 그만두었던 사람이다.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 해당 본부의 경영진이 그를 설득하여 다시 데려왔다. 재입사도 흔치 않은 일인데, 들어오자마자 임원으로 승진한 걸 보면, 회사가 그를 '모셔왔다'는 표현을 쓰는 게 맞을 듯싶다.


그가 일을 잘하기도 했지만, 무엇보다 제이슨이 가진,


'미국 백인 남성'이 주는

'뭔가 있어 보이는 아우라'가

회사에 보탬이 되었다.


고객들은 그를 보고, '이 회사에는 외국인이 많고 게다가 미국 백인이 있는 걸 보니 왠지 더 전문적이고 선진 기술을 사용할 것 같으며 자유로운 느낌마저 들어.'와 같은 생각을 한다.


나와 미팅을 하기 위해 방문한 어느 회사 담당자가 복도를 지나가는 제이슨 보자마자,

 

"여긴 구글스럽네요!"


라며 감탄했던 적도 있다.

우리 회사가 일 하기 좋은 직장으로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구글과 동급이 되다니!


맙소사, 건 정말 금발의 동료 덕분이라고 밖에는 설명할 길이 없다.


업무 현장에서 '제이슨 파워'는 빈번하게 활용된다. 클라이언트에게 제안서를 보낼 때 그의 사진을 큼지막하게 넣는다거나 규모가 큰 계약을 따내기 위해 수주 PT나 미팅에 주담당자가 아닌그를 동행다. 제안서든 미팅이든 분명 우리 회사가 '을'의 입장인데도, 서양인이 있으면, '갑'인 그들의 눈빛은 반짝인다(보통은 팔짱을 끼고 '어디 한 번 설명해 봐, 들어는 줄게' 눈빛을 쏜다).


회사 매출과 직접적인 연관이 없는 영역마찬가지다. 가족 초청행사를 할 때, 회사의 여러 구성원 중 굳이 그에게 마이크를 맡긴 것은, '우리 아빠 회사는 어떤 곳일까?'를 궁금해하며 방문한 직원 가족들이 '와, 멋있다! 우리 아빠가 다니는 회사에는 미국 사람도 있!'라는 생각을 갖길 바라는  연출다.


GDP 순위 10 향하고 있고, 90년대 후반부터 속되고 있는 한류 열풍에다가, 지구 반대편에서는 BTS 노래가 울려 퍼지고 있다. 이제 해외에 나가면 '한국'을 아는 사람이 꽤 많다는 것도 피부로 느낀다. 

이미지 출처 : https://www.bentley.edu/news/hooray-hallyu

우리나라에 대한 자부심으로 넘쳐야 맞는 상황인데... 에도 불구하고, 를 포함한 꼰대들의 세상은 여전 것 같아 씁쓸하다.


 잘하는 필리핀 직원, 베트남 직원은 있었으나 그들이 제이슨처럼 우리 회사를 대표하는 브랜드가 됐던 적 한 번도 없다.  인종 대한 편은 우리에게 너무나 뿌리 깊이 박혀 있다.




스탠퍼드 대학 사회심리학 교수이자 [편견]의 저자인 제니퍼 애버하트에 따르면, 인종 편견은 고용주의 의사결정, 나아가 유색 인종의 구직 과정과 직장 내 역할에 큰 영향을 끼친다.


경제학자 마리앤 버트란드와 센드힐 멀레이나단이 진행한 연구를 살펴보자.


여기 경력과 스펙이 같은 두 명의 지원자가 있다. 에밀리 월시(Emily Walsh, 전형적인 백인 이름)와 라키샤 워싱턴(Lakisha Washington, 전형적인 흑인 이름). 이 둘 중 더 쉽게 일자리를 얻는 사람은 누구일까?


이름만 다를 뿐인데, 백인으로 추정되는 에밀리가 라키보다 50% 더 많은 인터뷰 요청을 받는다. 이는 같은 자격 요건을 갖추었다라도 백인이 우선 선택되 흑인에게 고용 기회를 주지 않는는 것을 보여준다. 더 무서운 건, 인간보다 더 공정하다고 생각되는 AI의 자동심사시스템마저 그런 선택을 한다는 것이다.


사실 미국 사회는 오래전부터 '다양성'을 높이려는 노력을 해 왔고, 체계적이고 전문적이라고 평가받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흑인이나 아시아 지원자가 이름과 서클 활동 등의 내용을 백인처럼 바꾸어 이력서를 낼 때, 인터뷰 기회가 흑인은 10%에서 26%, 아시아인은 12%에서 21%로 늘어나는 현상은 여전하며, 인적 다양성을 강조하는 글로벌 기업에서조차도 백인을 선호하는 경향은 짙다.

미국 공화당의 한 의원은 의회 인턴 사진을 공개했다가 백인 일색으로 구성된 모습이 드러나 여론의 뭇매를 맞기도 했다


우리는 인종 차별을 하는 사람들을 비난하고 그것이 도덕적이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으면서도, 이러한 일이 우리 주변에서 흔히 발생할 수 있다는 것을 의식하지 못하고 있다. 미국 백인에 대한 뚜렷한 선호는 그렇지 않은 국적과 인종에 대한 차별을 낳을 수도 있다는 것을 인식하고 있어야 한다. 의도적이지 않더라도 상대방에게는 상처를 주는 일이 발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다양성과 포용에 대한 글을 적으며, 내 생각이 되었든 학자들의 이론이 되었든, 문제를 개선할 수 있는 방법들을 한 가지씩은 넣으려 노력하고 있다. 그런데 직장 내 국적, 인종에 대한 편견과 이를 해결하기 위한 노력은, 너무 갈 길이 멀게 느껴져 무엇 적든 뜬 구름 잡는 이야기가 되는 것 같아 망설여다.


그래도 하나 희망적인 부분이 있다면, 다음 세대는 우리와 다를 수 있다는 기대다. 나는 얼마 전, 우연히 보게 된 TV 유치원 영상에서 눈을 떼지 못한 경험이 있다. 피부색을 포함한 생김새가 다른 다양한 인종의 아이들이 나오고 있어, 내가 어렸을 때 보았던 교육 영상과는 확연히 달랐기 때문이다. 해당 회는 아이들에게 '할아버지', '할머니' 단어를 가르치는 내용이었는데, 베트남 아이가 하노이 할머니, 서울 할머니에 대한 소개를 하면서 교육이 진행되고 있었다.


'우리는 편견에서 벗어나 다양성이라는 가치를 추구하여 이전보다 더 나은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는 딱딱한 내용은 찾아볼 수 없다. 아이들은 그저 춤추고 웃으며, 재미있고 자연스러운 모습이었다.

이러한 변화들이 모여, 우리 아이들은 다양한 피부색과 국적을 익숙하게 받아들이는 사람이 되기를 소망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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