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우리 집에는 사춘기인 큰 딸과 아내가 신경전을 벌인다. 딸의 방에 가보니 바닥에는 아무렇게나 벗어놓은 양말, 옷들(속옷 포함), 그리고 책상 위에는 먹던 과자봉지, 요구르트 포장 등이 나를 반겼다. 아주 예전에 TV에서 본 동물의 왕국에서 동물들이 자신들의 활동영역에 영역표시를 하는 영상과 겹쳐졌다. 나의 두 딸들은 “우리 방”이니까 간섭하지 말아 달라고 하는데 이미 그곳은 “우리 방”에서 “방”이 빠진 동물들을 사육하는 “우리”가 된 것 같았다.
아주 어릴 때 방 정리를 하는 법을 알려주는 예쁜 그림책과 방을 깨끗이 치우는 멋진 호랑이가 나오는 재밌는 TV 만화를 보면서 알콩달콩 아이들과 방 치우는 놀이를 했던 생각이 난다. 그때는 정말 아이들이 방을 잘 치웠고 정리도 놀이라고 생각했었다. 그래서 그때는 나중에도 아이들은 이렇게 놀이하는 것처럼 방을 재밌게 치우겠구나 생각을 했더랬다. 그럼 지금 이 상황은 도대체 어디서부터 잘못된 걸까?
혼내기도 하고 달래기도 하고 당근과 채찍을 번갈아 가며 아이들에게 정리와 청결을 가르치려고 했지만 잘 되지 않았다. 그러다 어느 날 문득 생각이 들었다. 어떤 아이들은 몸이 아파 부모들이 건강하게만 자라 달라고 하는 경우도 있는데 내가 너무 많은 걸 바라는 건 아닐까 물론 자기 방을 깨끗하게 관리 잘하는 아이들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그렇게 따지면 나보다 돈도 많이 벌고 더 좋은 환경을 자녀들에게 주는 부모들도 있을 것이다. 우리 아이들도 방 치우는 것 말고 분명히 다른 아이들보다 잘하는 것도 훨씬 많을 텐데 내가 너무 완벽한 것을 바라는 것일까. 자기 주변을 정돈하고 깨끗하게 관리하는 것은 기본 중의 기본 중이라고 생각했고 아이들에게도 기본을 지켜주기를 바랐었는데 이게 과한 기대였을까. 간혹 주변 사람들이 그깟 방 정돈하는 거 가지고 너무 심각하게 생각하는 게 아니냐고 하기도 했지만 아무리 너그럽게 생각을 하려고 해도 우리 아이들은 너무 심한 수준이라는 생각을 떨칠 수가 없었다. 영어 표현에도 “If you weren’t there, You wouldn’t know it”라고 있지만 그 상황에 있지 않으면 어느 정도이고 얼마나 심각한지 알 수 없기에 이 글을 보는 독자분에게 그런 측면에서 공감과 이해를 받고 싶은 심정이다.
결국 내가 내린 결론은 내가 할 수 있는 한 최대한 모범을 보이는 것이다. 말로도 혼내는 것도 몇 년 동안 충분히 했다고 생각한다. 물론 그 아이들이 독립할 때까지 잘못된 것은 지칠 때까지 계속 말을 해주겠지만 받아들이는 것은 결국 아이들의 몫으로 남겨 두기로 했다. 아마 내 부모님도 그러셨을 거라 생각한다. 나는 이것을 업보라고 생각하고 묵묵히 힘닿는 데까지 해 나가야겠다고 생각했다. 아이들의 어지러운 방에서 꽤 거창한 부분까지 곁가지를 쳐서 나온 것 같다. 내 새끼들인데 계속 아끼고 사랑하고 잔소리하며 내가 할 수 있는 데까지 최선을 다해 독립을 시켜야겠다. 나와 같은 세상의 모든 부모님들께 같이 힘내자고 말씀드리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