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armhearted

이남연

by 심내음

(*음악과 함께 읽으시면 더 좋습니다)


한 사람의 생이 이렇게 음악과 잘 어울릴 것이라고 생각지 못했다.


글을 쓴다. 무언가 막 쏟아내고 싶을 때, 너무 재밌어서 자랑하고 싶을 때, 그리고 이런 내용을 나 혼자 알고 있기가 아까워 다른 사람들에도 꼭 알려야 할 것 같다는 사명감 같은 느낌이 들 때. 건축가 정기용이라는 사람을 최근에 알게 되었는데 그 사람의 삶이 음악보다도 더 마음과 귀를 두드렸다. 그래서 좀 더 많은 사람들이 알면 좋겠다 하는 마음에 용기를 내어 내가 느낀 감동을 적어보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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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


그 사람이 집을 지을 때는 다른 사람들보다 몇 배 더 시간이 걸렸다. 흔히들 건축하는 사람들에게 이런 모양으로, 이런 재질로, 이런 색깔로 지어주세요 하고 돈은 충분히 드릴게요 라고 부탁을 받으면 그대로 하고 충분히 준다는 돈만 받는 게 당연한 것이라 생각하겠지만 정기용에게는 달랐다. 가장 기본적인 구조도를 그리기 전에 그 집 혹은 그 건축물에 살거나 이용하는 사람들을 만나서 평소 어떻게 생활하는지를 물어보는 것에서부터 심지어 어떤 것에서 편안함과 행복을 느끼는지 까지 다른 건축가들이 이 정도 까지 물어보고 얘기할 필요가 있냐고 너무 과하다고 할 정도로 물어보고 고민한다. 일화로 봉하마을에 노무현 대통령 퇴임 후 사저 건축을 의뢰받았을 때도 거의 2년 동안 노 대통령과 그 가족들, 함께 생활하는 비서관, 경호원, 심지어 그 마을 주민들까지 수시로 만나 이야기하면서 어떻게 지어야 그 사람들에게 가장 큰 행복을 줄 수 있을지 고민을 하고 나서 공사를 시작했다고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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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


한 때 지자체 건물을 화려하고 미래지향적으로 리모델링하는 것이 경쟁적으로 유행하던 때가 있었다. 밖에서 보면 로봇 연구소인지 시청인지 구별이 안 되는 많은 화려한 지자체 건물들이 지어졌다. 그때 전라북도 무주군 안성면에서 면사무소를 개조 건축해 달라는 의뢰를 정기용 건축가에게 하게 된다. 멀리서 봐도 알 수 있고 특별하고 멋지게 그래서 모든 사람들이 오고 싶고 많이 드나들 수 있는 면사무소를 만들어달라고. 의뢰를 수락하고 건축가 정기용은 안성에 내려가 그 면사무소와 관련된 사람들을 인터뷰 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그 면사무소를 드나드는 마을 주민들, 대다수가 나이가 지긋하신 어르신들을 하나하나 만나기 시작한다.


" 면사무소 어떻게 지으셨으면 좋겠어요? "

" 면사무소? 면사무소가 뭔 필요 있어 우리 같은 늙은이들에게"

" 그럼 지금 사시는데 뭐 필요하신 거 없으세요? 불편하신 거나 "

" 면사무소 말고 목욕탕이나 하나 맹글어줘. 목욕탕이 없어서 한 두 달에 겨우 한번 할배 할머니들하고 차 빌려서 대전까지 갔다오자녀. 힘들어 죽겄어. 농사 짓다가 몸 아프면 따뜻한 물에 몸을 담가야 좀 덜 아픈데. 맨날 두 시간씩 차 타고 그것도 어쩌다 한 번 가니께"


정기용은 면에 사는 많은 노인들이 농사에 지친 몸을 어루만질 수 있는 목욕탕이 필요하다고 하나같이 말을 하자 면사무소를 개조하면서 1층에 목욕탕을 짓게 된다. 당초 공사를 의뢰한 안성면에서 완공 날 현장에서 면사무소 건물을 보고 깜짝 놀란다. 외관이 이전과 거의 달라진 게 없었기 때문이다. 정기용은 부족한 건축예산에 많은 부분을 마을 주민들이 목욕탕에서 안전하고 편하게 몸을 쉴 수 있는데 투자하였고 지금도 안성면사무소는 지역 주민들이 매일 다니는 마을의 명소가 되었다. 안성 면사무소는 단순한 사무실이 아닌 마을 주민들에게 힘과 의지가 되고 공무원 주민들이 진정하게 소통할 수 있는 공간이 된다. 건축물의 가치를 외관과 멋을 넘어 또 다른 차원으로 높였다. 정기용 자신은 서울대에서 응용미술과 공예를 전공하면서 누구보다도 외적인 화려함에 대해서 전문성을 가지고 있었지만 진정한 건축물은 외적인 아름다움이 아니라 내적인 행복과 공감에서 온다는 것을 깨닫고 자신의 건축물에 그 사상을 온전히 녹여내기 시작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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셋.


정기용은 기적의 도서관 프로젝트를 맡아 순천, 진해, 제주, 서귀포, 정읍, 김해에 어린이 도서관을 건축한다. 그 도서관들은 이제까지 우리가 알던 도서관과 많이 달랐다. 입구에서 신을 벗고 손을 씻고 들어가게 되어 있는데 아이들이 딱딱한 도서관이라는 이미지를 갖기보다 집처럼 언제든지 편하게 들어가 마음껏 책을 읽고 싶다는 바람을 인터뷰하면서 그것을 그대로 반영하였다. 그리고 내부에 책상과 의자보다 미로와 놀이터 같은 구조에 곳곳에 책장과 서가를 배치하여 아이들이 나무 아래, 미끄럼틀, 동굴 같은 구조에서 놀이하면서 책을 볼 수 있게 했다. 정기용은 정읍 기적의 도서관을 오픈하면서 " 건축가가 해야할 일은 원래 거기 있었던 사람들의 요구를 공간으로 번역하는 것이지 그 땅에 없던 뭔가를 새로 창조하는 것이 아니다"라는 말을 함으로써 자신이 가진 건축에 대한 철학과 가치로 많은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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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


정기용은 한강 같은 곳에 높은 아파트, 빌딩들이 너도나도 좋은 조망을 차지하려고 경쟁하고 때로는 법적으로 조망권 투쟁을 다투는 것에 대해 말했다.


" 조망권은 한 빌딩이 다른 빌딩 때문에 좋은 경치를 보고 못 보고에 대한 권리를 말하는 것이 아니고 부자던 가난한 자던 그 지역에 사는 모든 사람들이 그 자연과 경치를 즐길 수 있느냐를 말할 수 있는 권리여야 한다. 지금 서울의 한강은 주변의 많은 고층 아파트 때문에 형편이 넉넉하지 않은 사람들의 집에서는 볼 수 없는 먼 존재이다."



건축가 정기용은 2011년 3월 11일에 대장암으로 사망했다. 그 누구보다 가치 있고 멋진 건축물들을 지은 그였지만 정작 자신은 종로에 있는 작은 월세방에서 혼자 생을 마감한다. 건축가 정기용은 생을 마감할 때까지 물질적인 것을 모으는 것보다 더 큰 정신적 가치에 집착을 했던 것 같다. 물론 그 작은 월세방이 건축가 정기용에게는 자신의 생을 마감하기에 정말 값지고 가치 있는 장소였는지 모르겠다. 항상 건축물의 겉 보다 안에 있는 가치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이었으니까. 삼가 고인의 명복을 다시 한번 빌고 싶다.


창에서 바라보는 풍경이 모두 내 집터입니다. - 건축가 정기용 (1945 ~ 201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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