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하고 싶지 않은 기억
부임하고 얼마가 지나지 않아 본사 경영진으로부터 연락이 왔다. 구조조정을 실시할 것, 손익을 흑자화하고 위기상황 극복을 위해 인력은 약 30% 감축을 하라는 강력한 지시였다. 난 눈을 감았다. 드디어 올게 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현지 인력 리더 회의를 소집하여 구조조정은 계획을 수립하였다. 큰 줄기는 쉽게 말하면 현재 매출 규모에서 집행하는 비용이 과다하여 적자가 나는 상황을 흑자로 반전시키는 것이었으니 매출을 늘리거나 비용을 줄이는 것이었다. 현 시장 상황에서 매출을 늘린다는 전제로 비용 특히 인력을 유지할 수는 없었다. 이런 시장 상황에서 선행투자라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였으므로 선 매출 확대 후 비용 확대가 될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우선 현재 규모에 맞추어 비용 감축을 실시할 수밖에 없었다.
그다음이 고정비였다. 그중에 가장 큰 것이 인건비. 어떤 비용 감축보다도 가장 힘들고 정신적으로 피폐해지는 작업이었다. 현지 인력 리더들에게 소속 부서 인원들의 잔류와 해고 명단을 제출하도록 하였다. 간단하게는 부서원 명단에 "O"와 "X"를 마크해서 나에게 가져다주는 작업이었지만 나는 그 옆에 그렇게 판단한 이유를 정리해서 주도록 하였다. 현지 인력들에게 좀 더 책임감을 갖고 나아가 인력이 축소된 후에도 남은 업무를 차질 없이 수행할 수 있도록 본인의 조직에 대해 신중하게 생각해주기를 바랬었다.
리더들에게 명단을 받고 해고가 결정된 인력들에 대한 면담을 시작하였다. 가장 힘들었던 기억이다. 나에게는 처음 하는 경험이었고 2009년에 본 영화 "인디 에어(In the air)" 생각이 났다. 조지 클루니가 구조조정 때문에 사람들을 해고하면서 겪는 고뇌에 대해 다룬 영화였다. 아이러니하게도 난 그때 그 영화가 무슨 영화인지도 모르고 조지 클루니가 나온다는 이유로 봤었고 부끄럽게도 팝콘까지 먹어가면서 보았던 기억이 났다. 평소 웃으며 인사했던 현지 직원들을 하나씩 만나서 회사의 사정을 설명하고 사직을 권고하지 않으면 안 되는 이유를 말했다. 일부 직원들은 상황을 이해하지 못해 부임한 지 얼마 되지 않은 내가 해고 면담을 하는 것에 원래부터 인원감축을 위해 새로 부임해 온 사람이냐고 묻기도 하였다. 이런 질문들에 나는 괴로웠고 참담한 기분이었다.
그때 반복했던 이야기 중에 하나가 이것이었다. 10명을 다 살릴 수는 없다. 7명을 살리기 위해 3명을 해고하지 않으면 10명 다 일자리를 잃는다. 이해해 달라. 10명 다 살리지 못하는 무능한 나를 용서해 달라. 하지만 10명을 다 죽일 수는 없다. 해외법인 인력 중 대상이 되는 50명이 넘는 직원들을 면담하면서 이 말을 반복했고 반복할 때마다 너무도 큰 스트레스로 다가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