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종과 내음은 중학교 동창이다. 집이 가까운 그 둘은 가끔 만나서 사는 얘기를 한다. “오 민종아 어서 와. 오랜만이네” “오 내음아 잘 살았어?” “응 나야 뭐 잘 있지. 너는 어때?” “나야 그냥 뭐 잘 있지 ㅎㅎ. 요새 뭐 하면서 놀아?” “어.. 나 요새... 글쎄... 아 그래 요새 재미 붙인 게 하나 있어. 요새 비우는 게 그렇게 재밌더라” “비우는 거? 그게 뭐야 뭘 비워?” “뭐든지. 아이들이 잘 안 먹는 반찬을 오래돼서 맛 변하기 전에 비우기도 하고, 일주일에 한 번 아파트 재활용 수거일에 집에 모아둔 재활용 쓰레기를 비우고, 책장이나 옷장을 보면서 애들이 어릴 때 보던 책이나 너무 낡아서 나중에 입지 않을 것 같은 옷을 비우거나.” “ㅎㅎ 그게 취미야?” “응 취미인 셈이지 좋으니까 ㅎㅎ. 왜 좋은지 모르겠는데 좋아. 비우고 나서 그걸 다시 채우고 싶지는 않아. 아 그런 건 있어. 비울 수 있다는 게 가끔 뿌듯하기는 해. 나이를 먹어 무언가를 비울 수 있을 정도는 가지고 있다는 게 안심이 된다고 할까. 암튼 그래. 좋아” “그래 좋으면 됐지 뭐. 좋은 게 있는 것도 다행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