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야 운전

잠 못 드는 밤에

by 심내음

“아빠.. 아빠

민재는 잠결에 누군가 자기를 부르는 소리를 들었다. 큰 딸이었다. 시계를 보니 자정이 넘긴 시간이었다. 민재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일어나 옷을 입기 시작했다. 큰 딸이 학원에 숙제를 내야 하는데 차를 태워달라는 것이었다. 원래 자정까지 제출이지만 조금 늦었다. 예전에는 시간을 지키라고 혼도 많이 냈지만 큰 딸이 잘 못하는 부분이었다. 그래서 최근에는 시간은 못 지켜도 숙제를 다해서 내는 거라도 포기하지 않는 것에 감사하기로 하고 더 이상 잔소리를 하지 않기로 했다.

민재가 신발을 신고 나가려는데 다시 큰 딸이 민재를 불렀다.

“아빠, 그 신발 내가 신고 싶은데”

민재가 신고 나가려던 기능성 신발이었다. 더운 여름 운전하는 데 편해서 민재가 신고 다녔다. 원래 아내가 큰 딸을 위해 산거였지만 디자인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며 신고 다니지 않았다. 왜 갑자기 마음이 바뀌었는지 모르겠고 또 굳이 민재가 신고 나가던 것을 신겠다고 하는 것도 일종의 어리광이나 투정이 아닌가 생각했지만 민재는 아무 말도 없이 신발을 딸에게 주었다.

얼마 전 딸과 민재 그리고 민재의 아내는 큰 싸움을 했다. 그때 이후 민재는 딸에게 되도록 말을 하지 않고 있다. 사람이라는 게 싸우고 화해하고를 반복하는 것이지만 너무도 실망스러운 딸의 행동이 반복되었고 그게 화해라는 시점으로 다시 반복되고 원점으로 돌아가자 민재는 얼마간이라도 딸을 조금 차갑게 대하는 것이 오히려 도움이 될 것 같다고 생각했다. 빌보드에 새로운 음악이 하나 나와도 딸과 재잘재잘 얘기하는 것이 민재에게는 큰 기쁨이었지만 딸을 위해서라면 참아야겠다고 생각했다.

집을 나와 차에 올랐다. 늦은 시각이라 주차장과 거리에는 사람이 별로 없었다. 시간도 시간이지만 요새 코로나 바이러스 때문에 더욱 밖에 다니는 사람들이 없었다. 몇 분을 운전했을까 무심결에 민재는 핸들에 바짝 몸을 붙여서 운전하고 있는 자기 자신을 발견했다.

‘뭐지 이게 예전 어디선가 이렇게 운전하는 나이 든 택시 기사들을 많이 본 것 같은데’

민재는 이런 자기 모습이 무척 낯익었다. 잠시 생각을 해보니 예전 일들이 생각났다. 마음은 빨리 가고 싶은데 신호나 러시아워라서 차가 빨리 못 가면 몸이 대신해서 그 좁은 운전석에서 앞으로 쏠리게 되는 현상이었다. 그런 운전기사들을 볼때면 왜 그렇게 조급할까 하는 생각도 한 적이 있는 것 같았다. 그런 사람들은 대부분 나이가 어느 정도 지긋한 사람들이었던 것 같다.

민재도 어느새 딸이 고등학생이 될 정도로 나이를 먹었다. 그리고 자정이 넘은 시간에 딸과 함께 학원을 가고 있는데 아마 빨리 다녀와서 내일 새벽 5시 출근할 때까지 조금이라도 더 자고 싶은 마음에 몸이 앞으로 기운 것 같다. 그런다고 더 빨리 가는 게 아닌 건 너무 잘 알고 차는 신호 대기 멈추어 있지만 그럴수록 민재의 몸은 더욱 앞으로 기울었다.

민재는 집으로 돌아와 침대에 누웠다. 조금 전 있었던 운전석에서의 자신의 모습이 왠지 계속 떠올랐다. 어떻게 해야 잘 나이가 드는 것일까 어떻게 해야 잘 사는 것일까. 매일 민재의 머릿속에 맴도는 생각이지만 오늘 밤은 더욱 머릿속에서 떠나지를 않았다. 한여름 열대야 때문인지 어느덧 훌쩍 시간이 지난 자신의 모습을 다시 봐서 그런지 여러모로 민재는 오늘 밤은 쉽게 잠들 수 없을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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