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이스 메이커

Pace maker

by 심내음

“여보, 후추 산책 좀 시켜줘요”

“어..어엉..알았어”

일요일 오전, 사실 민재는 조금 전 아침을 먹은 참이라 움직이기가 싫었다. 하지만 아내의 부탁을 들어주고 싶어 잽싸게 몇 가지 산책 도구를 챙겨서 밖으로 나갔다.

후추가 아직 어린 탓인지 함께 산책다운 산책을 즐긴 적이 없다. 조금 걷다가 화단의 풀에 관심을 갖고 한참 킁킁대고 사람이 지나가면 그 사람을 따라가거나 그 자리에 멈춰서 계속 쳐다보고 있곤 한다. 그래도 좀 웬만큼 걸어야 아파트 반 바퀴라도 돌고 산책 비슷하게라도 했다고 할 텐데 반 바퀴는커녕 50미터도 제대로 걸어본 적이 없는 것 같다.

이날 도 얼마나 걸으려나 하는 생각으로 민재는 발걸음을 떼었다. 평소 때와 같이 화단 쪽은 후추가 바깥쪽은 민재가 위치했다. 한두 발자국 걷기 시작했는데 오늘은 후추가 꽤 집중해서 걷는다. 보통 민재가 조금 앞서가면서 리드를 하는데 오늘은 후추가 앞서거나 민재와 같은 선상에서 약간 빠른 걸음으로 걸었다.

‘어 이 녀석 봐라. 오늘은 제법이네’

민재는 속도를 올려 속보로 걷기 시작했다. 그러자 후추도 속도를 올려 민재를 따라잡기 시작했다. 그렇게 업치락 뒤치락 걷다 보니 어느새 아파트 한 바퀴를 다 돌았다. 후추를 산책시키고 나서 처음 있는 일이었다. 민재는 두 바퀴째 접어들어 후추가 있는 옆을 슬쩍 보았다. 그 작은 것이 헥헥 대면서 열심히 걷고 있다. 얼굴을 보니 웃고 있는 것도 같았다. 민재는 후추를 보니 힘이 나서 더 열심히 걷게 되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민재는 큰 사고를 당해 수술을 받고 병원에 누워 있었다. 다행히 긴 병원 생활 이후 건강을 회복하였으나 퇴원하고 나서도 예전과 같이 운동을 할 수는 없었다. 고작 느린 속도로 걷는 것이 그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운동이었다. 그런데 오늘 반려견 후추 때문에 정말 오랜만에 이마에 살짝 땀방울이 맺힐 정도로 오랜 시간 동안 걸을 수 있었다.

네 바퀴 째에 접어들었을 때 문득 민재는 옆을 보았다. 민재와 후추 사이에 리드 줄이 있었지만 후추는 누구보다 스스로 의지를 가지고 멋지게 뛰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마치 마라톤 훈련에서 옆을 지켜주는 페이스 메이커(Pace maker)처럼 민재 옆을 든든하게 지키고 있었다.

후추는 이제 힘이 드는지 속도를 줄이고 잠시 땅에 앉았다. 이제 그만 뛰자고 하는 것 같았다. 민재는 후추를 안고 후추가 평소에 무서워하여 건너지 못하는 철재 배수구를 지나 민재 집이 있는 동의 엘리베이터를 오르며 페이스 메이커가 되어준 반려견 후추에게 말했다.

“너무도 고맙구나 후추야. 우리 오래오래 같이 걷자. 걸을 수 있을 만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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