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재에게는 최근에 새로운 취미가 생겼다. 사실 다른 이들이 보면 이 일에 '취미'라고 이름을 붙일 수 있는 지는 확실치 않다.
민재가 이 일에 '취미'라고 부를 정도의 재미를 느끼게 된 것은 정말 우연이었다. 회사원인 민재는 거의 비슷한 8시간과 40시간을 매주 반복하고 있었다. 예전에는 사무실에서 잠시 나가 동료들과 커피도 마시고 산책도 했지만 주 52시간이 생기고 나서는 사무실 밖으로 나가는 것이 근무 시간에서 제외 되었다. 그래서 많은 이들이 굳이 사무실 밖에 나가 휴식을 하면서 퇴근 시간이 늦어지는 것보다 사무실 안에서 휴식을 취했다.
어느 날 민재는 보고서를 쓰다가 머리가 뻑뻑해지는 것을 느꼈다. 그러던 중 PC의 하드 다스크가 거의 다 차가는 것을 보았다. 어떻게 하면 하드 공간을 늘릴까 하다가 메일 함에 있던 불필요한 메일을 하나 둘씩 지우기 시작했다.
민재는 메일함을 보다보니 예전에 비해 메일 한 개의 용량이 점점 더 커지고 있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메일에 그래픽도 넣고 가끔은 동영상도 넣고, 그 수많은 메일 중에서 자신의 존재를 부각시키려고 한 번이라도 눈길을 받으려고 메일은 점점 화려해져갔다. 그 만큼 메일 크기는 커졌갔다.
메일을 지우는 것은 쓰레기를 쓰레기통에 버리는 것과 비슷한 만족감을 주었다. 평소 청소를 좋아하던 민재는 사무실에 앉아서 불필요한 메일을 지우는 것도 상당한 카타르시스를 준다는 것을 느꼈다.
처음에는 하나씩 지우다가 같은 제목, 같은 형식의 메일을 찾아 한 꺼번에 지우는 방법도 알게 되어 민재의 취미는 점점 진화했다. 그리고 그에 따라 하드 디스크 공간에 늘어가는 것을 보며 어릴 적 땅따먹기 놀이를 했을때 느꼈던 즐거움이 오버랩 되었다.
'이런 걸 취마라고 하는 내 삶은 불쌍한 걸까?'
민재는 문득 스스로가 측은하게 느껴졌지만 오늘도 사무실 안에서 버티면서 소소한 취미생활로 퇴근 시간을 줄이기 위해 노력하는 자신이 지금 할 수 있는 최선이라는 것을 자각할 수 밖에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