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가 조금씩 오고 있었다. 밤 아홉시가 넘은 시간에 내리는 빗줄기는 전등에 비춰서 길을 은은하게 밝혔다. 민재에게 빗줄기가 아름답게 보였던 까닭은 사실 다른 곳에 있었다. 저녁때 TV에서 봤던 중년 사내들이 맛있게 먹는 도너스가 잊혀지지 않았고 그것이 일요일 밤에 월요일 출근을 생각하며 밖에 잘 나가지 않는 민재를 집밖으로 이끌었다. 갓 튀긴 누르스름한 도너스와 달작고소했던 설탕이 어우려져 하찮은 민재의 일요일을 최고의 일요일로 만들었기 때문에 민재의 눈에 빗줄기가 아름답게 보였으리라.
배를 도너스로 입을 웃음으로 채운 민재가 도너스 가게에서 집으로 돌아가고 있던 중 앞에 축구복을 입은 사내 아이가 엄마인듯 보이는 여자에게 기대어 절뚝절뚝 거리고 가고 있었다. 그들보다 민재의 걷는 속도가 빠를 수 밖에 없는 상황이기에 그들을 지나치는 민재에게 두 사람의 대화가 언뜻 들렸다.
"그래도 엄마 오늘은 공 많이 찼어. 애들이 패스도 많이해"
"골은 못 넣었는데 그래도 재밌어?"
"그럼 골 못넣어도 돼. 축구는 원래 그런거야. 사람도 평생 성공못해도 그냥 사는 거라며"
아뿔사...
'그렇지. 그러네. 내가 뭐길래 회사에서 조금 밀렸다고 몇 주를 우울하게 지내냐. 내가 성공한 사람도 아닌데'
민재는 생각했다. 골 못넣어도 축구는 계속되고 회사에서 잘리지 않는한 민재의 삶도 계속된다. 민재는 다시 스스로게 말했다.
'언제부터 내가 회사에서 잘 나갔다고. 그냥 욕먹고 모멸감 들어도 월급날 기다리며 사는 거지'
주머니에 조금 남은 돈으로 내일 갈비살이나 동네 고기집에서 2인분 구워 먹자 라고 생각했다. 더구나 내일은 월요일이지만 연휴 아닌가. 대박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