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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한준 Aug 19. 2020

택배가 느려졌다

  택배가 느려졌다. 월요일에 출발한 택배가 수요일이 되어도 도착하지 않았다. 택배가 출발하면 다음날에 받는 것이 당연하게 생각되었는데... 뭐가 잘못된 걸까?


  우리나라 택배 시스템은 가히 대단하다. 낮에 주문해도 대부분 다음날 배송이 완료된다. 도서 같은 상품은 당일 배송도 가능한 지 오래됐고 몇 해 전부터는 '새벽 배송'이라고 밤 11시 전까지 주문하면 다음날 오전 7시 전에 집 앞에 배송해주는 서비스까지 등장했다. 우리나라가 작아서 가능한 방식이라고 해도 교통체증 등을 감안하면 그러한 시스템을 구축한다는 것이 그리 만만한 것은 아니라 생각된다.


  이러한 시스템 구축의 배경은 우리나라 국민 특유의 '빨리빨리' 정신도 한몫했을 것이다. 인터넷 강국임에도 인터넷 쇼핑은 오프라인에 비해 '기다림'이 필요한 일이기에 단점으로 부각될 수도 있었던 것을 초스피드로 만회한 셈이다. 택배량은 매해 늘어나고 있고 더불어 재활용 쓰레기도 증가하는 추세이다. 자연히 택배 기사들의 수고도 늘어날 수밖에 없다.


  그런 측면에서 지난주 금요일(8월 14일), 처음 시행된 '택배 없는 날'은 반가운 일이다. 안 그래도 최근 코로나 19 바이러스로 인해 택배량이 더욱 증가하고 있던 터였다. 이번 '택배 없는 날'은 민주노총 서비스연맹 전국 택배 연대노조의 제안에 한국통합물류협회와 한국우정본부가 동참하면서 지정됐다고 한다. 돌이켜보면 정말 대단하다 월요일부터 토요일까지 택배는 움직인다. 우리에게 배송이 안될 뿐 일요일에도 택배차량은 돌아간다. 아니다, 요즘 새벽 배송이란 이름으로 일요일에도 배송이 온다. 택배기사는 노동자로 인정받지 못해 휴가도, 야근수당도 주 최대 52시간의 근로기준법과도 무관하다. 정말로 열악한 생활 속에서 일하고 있는 셈이다.


  매년 8월 14일을 '택배 없는 날'로 지정하고자 하는 움직임도 보이고 있는데 좀 더 자주 해야 할 것 같다. 매달 해도 되지 않을까. 그 탓에 택배는 조금 느려질 수 있다. '택배 없는 날'로 쉴 수 있어서 좋지만 막상 배송기사들은 휴가 다녀온 후에 쌓인 물량들에 걱정이 컸다고 한다. 내가 주문한 택배 역시 월요일에 출발했지만 수요일이 되어도 도착하지 않은 이유가 밀린 택배로 인해 함께 지연된 것으로 보인다. 택배 기사들이 쉴 수 있다면 이 정도는 기다려 줄 수 있다. 애초에 큰 기대를 해서 그렇지 3~4일 걸릴 수 있다는 사실을 미리 인지하고 익숙해진다면 그리 큰 기다림도 아닐 것이다.


  택배기사들은 8월 14일에 쉬었지만 막상 임시공휴일로 지정된 17일에는 정상근무를 했다고 한다. 8월 14일의 휴가는 당연히 17일에 쉬어야 할 것을 앞당겨서 쉰 것뿐일지 모른다. 또한 14일에 휴무에 들어간 택배사는 CJ대한통운과 롯데택배, 로젠, 한진택배 등 4개 대형 택배사뿐이고 나머지 중소 택배사들은 정상 배송을 했다. 쿠팡/SSG닷컴/마켓컬리 등 자체 배송망을 갖춘 업체들 역시 마찬가지다. 이번 '택배 없는 날'이 뭔가 반쪽짜리로 운영된 듯한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이번 '택배 없는 날'을 시작으로 택배기사들에 대해 관심이 더욱 근로 환경이 조금 개선되길 바라본다. 우리가 편히 받아보는 택배는 우리 이웃의 노고가 담겨있는 결과물이다. 조금 거창해 보이지만.. 더불어 사는 사회라는 관점에서 이제 택배기사들에게도 공동체 의식이 필요한 것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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