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도시락 한방현숙 Mar 23. 2017

6. 건강 이야기

달리기와 편두통 그리고 배드민턴

 달리기는 나의 힘

 호적상 나이 탓으로 예정에 없던 외가살이를 한 후 1년 반 만에 도시로 올라왔을 때 난 나름 촌뜨기였다. 초등학교 입학 당시, 섬마을 외할머니 댁에서 영악한 서울 여자 아이의 모습으로, 서울 스타일로 놀이를 강요하던 얄미운 모습은 이미 다 사라져 버렸다.

 전학을 오니 많은 것들이 날 기죽게 하였다. 일단 모르는 단어들이 제법 많았다. ‘군것질’의 의미를 몰랐다. 아이들이 ‘군것질’ 했다며 나를 선생님께 이른다기에 그 뜻이 엄마 몰래 돈을 훔쳐 먹을 것을 사 먹는 것쯤으로 알고, 눈물까지 흘리며 난 그런 아이 아니라고, 난 군것질 같은 것은 절대 안 한다며 아이들에게 달려들었다. 나중에 군것질의 의미를 제대로 안 후에도 ‘군것질’이 왜 나쁜지 도통 이해가 되지 않았다.

 시험을 본다기에 언제 선생님께서 문제를 읽어 주시려나 기다리고만 있는데, 아이들은 이미 문제를 풀고 있었다. 시골학교에서는 2학년이 되었지만, 선생님들께서 시험 문제를 일일이 읽어주시며 시험을 보게 했었기 때문이다.

 아이들은 모두 똑똑해 보였고, 세련되었고, 전학 온 나에게는 관심이 없다. 새 학교에 적응하느라 힘들고, 잔뜩 주눅 들어 있었던 나를 존재감 있는 나로 변화시킨 것은 바로 운동회의 꽃 계주 ‘달리기’였다.

 남자아이들까지 나서서 내 이름을 불러주며 응원을 할 때에는, 얼떨결에 감사의 눈물이라도 흘릴 뻔했다. 얼마나 감동적이었는지 몰랐다. 아주 오래전부터 난 우리 반의 인기인이었고, 아이들은 늘 나를 응원해 왔고, 우리 반 승패의 열쇠를 쥐고 있었던 아주 중요한 인물인 것처럼 아이들은 하루아침에 나를 대해 줬다. 자존감이 하늘을 찌른 날, 모든 것은 ‘달리기’ 덕분이었다. ‘건강한 달리기’는 그렇게 고맙게 나를 찾아와 주었다.

그 후로도 나는 고등학교 때까지도 늘 계주 선수로 나갈 정도로 달리기를 잘했다. 언제나 재빨랐으며, 웬만하면 결승 테이프를 가슴으로 끊는 영광을 누렸다. 체육대회 때마다 활기차고 건강한 모습으로 환하게 웃었다.

어쩌다 편두통

 초등학교 고학년 때도 가끔 새벽마다 눈알이 빠지는 것 같은 고통으로 힘들 때가 있었는데, 그게 아마 편두통의 전조아니었을까 의심해 본다.  본격적으로 고2 때부터 앓게 된 ‘편두통’은 평생을 따라다니며 나를 괴롭히는 징글징글한 아픔이 되었다. 입시가 끝나면 낫는다고 나를 위로하던 동네 약국 아저씨의 말은 틀렸다.

 어느 약 광고에서 딱따구리 같은 새가 머리를 쪼아대며 ‘한쪽 머리가 아플 땐?’ 하며 편두통 약 선전을 하는 때가 있었는데, 그것은 많이 와전된 내용을 담고 있다.

두통을 긴장성 두통과 혈관성 두통으로 나눈다면, 긴장성 두통은 근육과, 혈관성 두통은 혈관 확장과 관련이 깊다. 편두통은 혈관성 두통에 속한다.

 요즘 새로운 의학 소식에 의하면 이 편두통에 시달리는 여성이 뇌졸중과 알츠하이머 등에 노출될 확률이 매우 높다고 말한다. 급 긴장되는 순간이지만, 다행히 점점 편두통의 횟수가 줄어들고 있다. 지금은 좀 살만하다는 뜻이다.

 내가 그동안 학교에 병가를 내고 출근을 못 한 날이 있다면 이유는 단 하나 ‘편두통’ 때문이었다. 한창 편두통이 나를 못 살게 굴 때는 정말 일상이 마비될 정도로 힘들었다. ‘편두통이 싫어’라는 다음 카페를 만들어 서로의 고통을 나룰 정도로 수많은 사람들이 힘들어하는 질병이다. 일단 전형적인 편두통은 ‘전조 증상’을 동반한다. ‘조금 있다가 두통이 찾아올 거야’라고 미리 사인을 보내는 것이다.

나의 전조 현상은 눈부심과 아우라를 동반한 시력 이상이다. 마치 오래된 거울 앞에서 일그러진 내 모습을 보듯, 갑자기 사물 모서리가 휘어지거나 없어지거나, 날아오르는 것 같은 착각과 함께 고통이 시작된다. 낡은 버스에서 메슥거리는 멀미를 하는 것처럼 울렁거리며 기분이 몹시 나빠진다.

 이때는 곧 다가올 극심한 두통에 만반의 준비를 해야 한다. 우선 빛을 차단하고, 소리가 들리지 않는 조용한 곳에서 잠을 청한다. 예전에는 민간요법으로 무즙을 내어 코에 넣기도 하고, 수지침으로 여러 곳을 찌르거나, 한의원에서 머리와 목 사이에 침을 맞기도 했다.

 30여분의 전조 증상이 지난 후에는 본격적인 두통이 찾아온다. 나는 주로 눈언저리가 아픈데, 눈동자가 빠질 것 같은 통증과 함께 구토도 동반되어서 뱃속의 모든 것을 게워내고, 극심한 통증에 시달리다 지쳐 쓰러지기를 반복한다. 심한 경우에는 경미하지만 마비까지 나타난다.

 20대 때 서울의 한 대학병원에서 처음 진단받을 때 담당의사에게 들은 말은,

머리 사진을 찍어 볼 필요도 없다.
21세기 불치병 중의 하나이다.
아마 50세가 넘으면 서서히 사라질 것이다.

  이 막막한 상황 속에서 아쉬운 사람이 우물 파는 격으로 나는 나의 통증을 완화시키는 방법이라면 무엇이든지 한다는 마음으로 비법과 방책을 찾아 나섰다.

편두통 일지 쓰기 – 편두통이 발생했을 당시의 섭취한 음식과 환경 등을 자세히 기록하여 편두통 유발 물질 찾아내기
편두통 유발 음식 기피하기 – 치즈, 와인, 오렌지, 초콜릿 등과 그간 먹지 않던 낯선 음식들
편두통 유발 환경 – 수면 과다 또는 수면부족, 눈부신 빛 주의, 스트레스, 예민한 냄새들, 생리기간 등

 한마디로 발병 원인들을 종합해 보면 ‘~랄 같은 성격’이라는 결론이 나온다. 남들이 지칠 때 몸살감기를 앓는 것처럼 내게는 편두통이 찾아왔다.

 가장 절정기인 30대에는 이러다 뇌에 무슨 일이 생기는 것은 아닐까 해서 몇 번이나 MRI 촬영을 했는지 모른다. 한 달에 2~3차례씩 발병을 하면 정말 일상이 마비될 정도로 힘들었다. 침대에서 온 몸을 말아가며 고통에 시달릴 때는 내가 다시 사회생활을 할 수 있을까? 하는 어두운 절감에 빠져 들기도 했다.

 이러던 것이 점점 순해져 이제 50대에 접어드니 일 년에 네다섯 번으로 줄었다. 얼마나 감사하고 고마운 일인지 모른다. 나에게 나이 듦이 반가운 이유 중의 하나이다. 

 요즘엔 동네 신경과 의원에서 '나라믹'정을 처방받아먹는다. '나라 트립탄 염산염'성분인데, 전조증상이 올 때 미리 이 약을 먹으면 어느 정도 고통을 줄일 수 있다. 내게는 참 고마운 마술 같은 약이다.

 평생을 괴롭히기만 할 것 같았던 편두통이 딱 한번 나에게 은혜를 베푼 적이 있다. 어쩌면 그냥 보냈을 엄마의 마지막을 지키게 해 준 큰 은혜였다.

그 날 편두통으로 병가를 내지 않았다면, 여느 때처럼 출근을 해서 학교에 있었다면……. 엄마는 남의 손에 의해 병원으로 옮겨졌을 것이고, 난 엄마의 마지막을 지키지 못했을 것이다. 아찔하다.
배드민턴 10년

나도 누구처럼 20대에 여리여리한 몸매를 지녔던 사람이건만, 남편은 마치 절대로 그런 사실을 몰랐던 사람처럼 건강미가 넘친다는 둥, 우람하다는 등, 심지어 어깨가 떡 벌어졌다는 등 눈치 없는 망언을 일삼는다. 나에게 건강미가 있다면 그것은 배드민턴에서 나왔을 것이다. 올해로 벌써 9년째이다. , , , , 5일까지 운동을 할 때도 많다. 아직도 실력은 미약하나 그 재미에 중독되어 무릎 나가는 것도 잊은 채 연일 즐기는 중이다. 웃고 떠들고 땀 흘리며 게임을 하다 보면 정말로 모든 스트레스가 사라진다. 나이 생각하여 슬슬 강도를 줄일 때가 되었지만, 대회까지 참가하며 배드민턴을 즐기는 70대 어르신들을 볼 때면 나도 따르고 싶은 마음이 든다. 남편과 함께 공통의 취미생활을 즐기다 보니 생각지도 않게 얻는 것들도 많고, 평생 같은 직업군 교사들만 만나다가, 다양한 사람들과의 개성적인 조직 생활을 하다 보니 배우고 깨닫는 점 또한 많아 평생 운동으로 생각하고 있다.  

건강
우리의 몸은 정원이요, 의지는 정원사이다. - 셰익스피어
병에 걸리기 전까지는 건강이 얼마나 중요한지 모른다. - 토마스 풀러

 건강을 해쳐 힘든 노년의 삶을 살다 간 엄마를 기억한다. 특별히 평생 고생한 탓도 있지만, 노령인구증가 문제가 대두되고 있는 이 시대에 건강하게 나이 듦이 얼마나 절실한지 우리 모두가 안다.

 누군들 건강하고 싶지 않을까? 누군들 운명 앞에 초라하게 무너지고 싶을까? 병마가 찾아오면 어찌할 수 없다는 무력감에 다시 좌절하기도 하지만 육체적으로 정신적으로 건강하게 중년을 지나 노년을 맞이하고 싶은 간절한 소망이다.

 줄일 것은 줄이고, 버릴 것은 버리고, 베풀 것은 베풀며 추하지 않게 나이 들고 싶다, 건강하게!

 지금 이 순간 가장 떠오르는

카르페 디엠 (carpe diem)

 이것을 어떻게 해석하고, 어떻게 실행할 것인가는 보는 이 각자의 몫이다.


모든 이미지 출처는 다음입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5. 내 안에 흐르는 역사의 현장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