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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시락 한방현숙 Mar 27. 2017

7. 시부모님 이야기

따뜻한 말 한마디

 결혼

 1993년 결혼하여 올 해로 24주년을 맞이했다. 연애를 오래 했다고, 결혼 생활이 반드시 순탄한 것은 아니지만, 비교적 별일 없이 잘 지내온 것 같다. 물론 결혼 초에는 서로 자라온 성장과정과 서로 다른 집안 분위기를 익히느라 마음고생도 했지만 특별히 생각날 정도로 아픈 기억은 없다.

 내가 남편과 결혼한 이유는 오로지 ‘사랑’ 하나 때문이다. 우리는 서로 별로 내세울 것 없는 짝꿍들이어서 상대방의 경제, 학력, 외모, 집안 등을 따질 형편도 아니었지만, 결혼 당시 한 치의 망설임이나 아쉬움 없이 결혼할 수 있었던 것은 ‘사랑’에 대한 확신 때문이었다.

결혼과 시댁

 남편은 내가 선택한 사람이라지만, 시댁은 이유 있지만, 이유 없이 맺게 된 복불복의 관계라  하면 틀린 말일까? 결혼 후 자잘한 갈등상태에서 유독 시댁과의 관계를 더 힘들어하는 이유는 내 필수 선택이 아니었기 때문일 것이다.

 시댁과의 만남을 복불복이라 한다면  난 참 운이 은 편이다.  따스함과 감사함으로  시부모님을 떠올릴 수 있다는 것은 큰 행운이라 할 수 있다. 곧 다가올 은혼식을 앞두고 그간 시부모님이  보여주신 따스함을 꺼내보는 것도 큰 의미가 있으리라.

“ 네가 복덩이다. 기다리던 개인택시가 나왔다.”

 결혼을 준비하던 즈음에 아버님은 퇴직을 하셨고, 원래 운전을 하시던 분이라 개인택시를 신청하셨나 보다. 조금은 복잡한 과정을 거쳐 개인택시를 받게 되었는데, 결혼 준비로 신혼집을 알아보기 위해 시부모님을 뵌 날 아버님이 내게 하신 말씀이다. 그 날 새 차를 몰고 오셔서 환한 웃음으로 하신 말씀이 평생 따뜻하다.

 아직 결혼식도 올리지 않은 예비 며느리가 개인택시와 무슨 상관이 있을까마는, 시어른들은 그런 식으로 호감을 표현해 주셨다.

“ 화장실 갈 때 이거(손전등) 가지고 가라 ”

 결혼하고 첫 추석에 안동 큰집으로 인사를 갔다. 평생 명절 귀성인파는 TV나 신문으로만 접한 나에게 생소하고 다소 충격적인 귀성길 경험이었다. 서울에서 새벽에 떠났는데, 그때는 중앙 고속도로 개통 전이라 무려 17시간이나 걸려 안동에 도착했다. 안동 큰 시댁은 안동시에서도 한참 더 들어가야 하는 산골에 있었다. 큰댁 어린 시동생들이 심심할 때 산속으로 송이버섯을 따러 간다는 말이 사실일 정도로 앞뒤가 첩첩산중인 곳에 큰댁이 사는 마을이 있었다.

 도시에서만 살던 며느리가 혹시라도 어둠 속에서 화장실을 이용할 때 불편할까 봐 미리 작은 손전등을 준비해서 주신 것이다. 작은 손전등의 불빛이 가슴을 가득 채운 날이다.

“ 지금 대학교 연수받는 건물 앞에 와 있다.”

 중등 1급 정교사 연수를 받던 해이다. 그때까지도 인천에 교원연수원이 따로 없어 매년 여름이면 대부분의 인천 교사들이 서울대 연수원에서 연수받던 시절이다. 더운 여름 내내 1시간이 넘는 거리를 인천에서 서울로 다니는데, 1997년 어느 날 폭우로 지하철이 끊어졌다. 비는 하루 종일 쏟아져 내려 서울 곳곳이 교통이 마비되어 인천으로 갈 일이 막막했는데, 아버님이 연수받는 건물 앞에서 기다리고 계셨다. 걸기만 하는 시티폰도 흔지 않던 때라 마냥 기다리고 계셨을 아버님!  그 날의 감동이 아직까지  전해진다.

“ 너를 생각하면 밤에 잠이 안 온다.”

 오빠를 잃고 슬픔에 빠져 정신이 없었지만, 할 일은 해야 했다. 그 뒷수습을 시댁 어른과 시동생들이 모두 해 주셨다. 인천과 의정부를 몇 번이나 오르내리며 고생을 하셨다. 그리고 내려오는 차 안에서 아버님이 하신 말씀이다. “ 소담 어미를 생각하면 너무 마음이 아프고, 안 되어서 밤에 잠이 안 온다.” 그 말에 쌓였던 슬픔이 터져 차 안에서 오열을 한 기억이 난다. 마음의 상처를 진심으로 어루만져주신 나의 아버님의 따뜻한 말씀 한 마디였다.

“ 이것이 ‘편두통’에 아주 좋다 한다 ”

 평생을 편두통에 시달리는 며느리를 안타깝게 여기셨다. 좋다는 약을 사 오시고 비법을 이것저것 많이 알아 오셨다. 주로 택시 조합에서 여는 장터 같은 곳에서 ‘녹차 추출물-카테킨으로 만든 영약’, 기의 흐름을 좋게 하여 두통을 막아주는 ‘게르마늄 음이온이 흐르는 건강 팔찌와 목걸이’ 등등을 구입하셨다. 정말 과학적 효과가 있는지, 약의 효능에 비해 비싼 값은 아닌지는 나중 문제였다. 눈물겹도록 진한 명약 중의 명약들이었다.

“ 생일인데 맛있는 거 사 먹어라 ”

 원래 경상도 분들이라 좀 무뚝뚝하기도 하고, 아들 삼 형제만 기르셔서 사뭇 다른 집안 분위기에 신혼 초에는 좀 낯설고 어색하기도 했는데, 그런 분들이 가끔 지나는 길에 들렀다며 ‘케이크’를 보내시기도 하고, 맛난 거 먹으라고 ‘입금’ 하셨다고 문자도 보내시고, 감기 걸렸다고 ‘사골’를 끓여 보내시기도 한다. 이쯤 되면 복 터진 며느리쯤 되겠다.

“ 사돈어른께 꽃이라도 놓아 드리렴 ”

 두 분은 천주교 신자이시다. 그러면서도 여행이라도 다녀오시면 꼭 불교신자인 친정 엄마를 위해 ‘염주’며, ‘등산모자’ ‘지팡이’ 같은 것들을 사 오셨다. 몸이 불편한 사돈어른 마음을 세심하게 살펴주셨다.

 엄마 가시고 첫 생신 때는, (친정엄마와 남편은 생일이 같은 날이다) 아들 생일이라고 오신다고 했지만, 가실 때는 몇만 원을 쥐어 주시며 엄마 영전에 꽃 한 송이라도 사다 드리라고 말씀하셔서 또 내 마음을 적시고 가셨다.

https://brunch.co.kr/@theka6/51

시부모님의 따뜻한 말 한마디

 결혼 24년이 채워지니 이제는 시댁 관계나 감정들이 많이 차분해져서 나타난다. 신혼 초에 갈등이나 섭섭함 보다 그동안에 쌓인 믿음으로 그리 크게 흥분하거나 속상해하지 않는다.     무엇보다 먼저 사랑으로 손을 내밀어준 시부모님의 따뜻한 마음이 큰 몫이지만, 그에 맞추어 나도 사랑을 표현하기에 이르렀다.

 친정 부모님을 먼저 보내고 바라보는 시어른은 그냥 짠하다. 세월 따라 늙어가시는 모습이 마음 아프다. 조금이라도 자식에게 부담이 될까 봐 늘 깔끔하신 분들이 이제 여든을 넘으셨다. 지난겨울 수술로 병원 생활 고생도 하셨다. 좀 더 건강하고, 편안하게 모시기 위해서 인천으로 이사를 말씀드려, 곧 가까이 사실 것 같다. 두 분이 앞으로 건강하게, 웃으시면서 노년을 채웠으면 좋겠다.

든든한 사랑과 관심

 누군가 말했다. 안 주고 안 받아도 0(zero)이지만, 주고받아도 0(zero)이라고, 같은 0(zero)이라면 사랑과 관심을 주고받는 0(zero)이 훨씬 우리의 삶을 풍요롭게 하지 않을까? 그래서 오늘도 등이 따뜻하다. 감사한 마음으로 이야기를 마무리한다.


 <이상! 지자랑 끝~ 오글거림 주의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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