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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시락 한방현숙 May 03. 2017

10. 결혼식

사랑할수록 행복해지기

결혼식과 눈물

 또 흘리고 말았다.

 고치지 못할 증상 중에 하나가 결혼식에서 눈물 흘리는 것이다. 남이고 친척이고 가리지 않고 결혼식장만 갔다 하면 눈물을 흘려버리니, 수 십 년 전 내 결혼식에서는 폭풍 오열했던 것이 어쩜 당연했으리라.

 그때 아직 미혼인 오빠는 식장을 세 번이나 빠져나갔었다고 했다. 흐르는 눈물을 감추기 위해서……. 바로 뒤에 자리 잡은 엄마의 눈물 소리가 들렸다. 신부 나는 울어야만 했다. 그래야 우리 셋이서 지나온 지난했던 날들에 대한 예의인 듯했다. 당연히 기날이었지만, 내가 웃기만 한다는 것은 엄마를, 오빠를 배반이라도 하는 양 불편한 일이었다.

1993년 6월 20일 결혼식

장미향이 온 세상을 뒤덮는 아름다운 계절에 결혼식을 올렸다. 학교 교정은 어디서 찍든 싱그러움이 가득한 장면을 만들어내는 초록으로 가득 차 있었다. 서클(동아리) 선/후배들이 대자보 붙이듯 우리의 결혼 축하 문구를 곳곳에 붙여 주었고, 우리의 예식홀은 계단식으로 이루어진 세미나실이었다. 그때만 해도 집에서 손수 결혼식 하객 음식들을 준비할 때라 전날까지 음식 장만으로 잔칫집은 분주했으며, 학교 지하 구내식당은 연회장이 되었다. 철 이른 귀한 과일 수박으로 하객들은 물론이고 학교 도서관에서 공부하던 많은 학생들까지 달달하고 시원하게 만든 날이었다.

 학교 벤치는 결혼식 후에도 하객들끼리 둘러앉아 웃음소리를 만들게 했으며, 신랑 신부는 곳곳을 다니며 여유롭게 감사의 인사를 드릴 수 있어 좋았다. 바람은 시원했으며, 학교 교정은 여전히 젊어 활기찼고 꽃향기 가득 행복한 날이었다.

결혼식장은 캠퍼스 예식장

 우리가 다니던 대학교 교정을 결혼 장소로 정한 것은 꼭 돈 때문은 아니었다. 경제적으로 여유롭지 못한 상황에서 결혼식을 올리긴 했지만, 우리의 만남과 사랑이 시작되고 무르익은 의미 있는 장소이기에, 바쁘게 허둥대는 일반 예식장이 내키지 않았기 때문이었는데, 언젠가 스무 살 넘은 딸이 물었었다.

“ 엄마, 근데 그때 그렇게 가난했었어?  ”
“ 헐~~”

그때나 지금이나 결혼식에 대한 만족도는 아주 높은데 말이다.

신부의 눈물

 대부분의 신혼부부들처럼 우리도 예외 없이 제주도로 신혼여행을 갔다. 그날 밤, 엄마와 오빠와 큰외삼촌께 각각 편지를 남겼었는데, 내가 남긴 편지 때문에 또 한 번 한바탕 울음바다가 되었다는 것을 큰이모가 전해 주었다.

 그렇게 나에게 결혼은 참 애달픈 일이기도 했다. 아버지의 술주정과 폭력으로부터 결국은 도망쳐 우리 셋은 그때까지도 아물지 않은 상처를 서로 핥으며 살고 있었고, 엄마의 힘만으로는 감당할 수 없는 가난에 초라하고 지난한 시간들을 함께 하고 있었다. 그 상황에서 내가 올린 결혼식은 아직 미혼인 오빠를 생각하면, 여전히 돈 버느라 고생하는 엄마를 생각하면 활짝 웃을 수만은 없는 일이기도 했기에 난 그렇게, 아니 우리는 그렇게 많이 울었나 보다.

 그래서 결혼식 날 신부가 아무 걱정 없이 환하게, 화사하게 행복한 미소만 짓는 것이 무척 좋아 보였다. 아무 걱정 없이 오로지 밝은 내일만 생각할 수 있는 신부의 모습이 부러다. 마음속에 무거운 돌멩이 하나 짊어진 듯신부의 마음은 절대 사양하고 싶었다. 내 딸들은 아무 걱정 없이, 심지어 철없기까지 한 모습으로 행복에 겨워 웃기만 하는 신부이기를 바라고 있다.

 대학교 교정에서 이 날 찍은 나의 결혼사진, 화사한 신부인 내 옆에 초록빛 한복을 입은 젊은 엄마와 오빠가 나란히 웃고 있다. 둘 다 내 팔을 꼭 잡은 채, 이 순 얼마나 아름답고 눈물겹도록 복했었는지를  시간이 흘러 추억을 떠올릴 때마다 생각한다. 이 사진은 지금 엄마 곁에서 그날의 행복을 지키는 듯 그렇게 우리를 쳐다보고 있다.    

요즘 결혼

 요즘 결혼 풍속도가 바뀌고 있다고 한다. 유명 연예인들의 보리밭 같은 소박하지만 특별한 결혼식을 굳이 대지 않더라도 많은 사람들이 결혼식에 대한 생각을 바꾸고 있다. 스몰웨딩을 생각하며 허례허식을 벗고 진정한 축복의 자리가 되도록 의식의 전환이 일어나고 있다. 심지어 요즘의 현실을 반영하듯 미혼의 여성들이 미리 웨딩드레스를 입고 찍는 싱글 웨딩도 유행이란다.

2017년 4월 29일 결혼식

 지난 토요일 아주 가까운 지인이 혼주인 결혼식에 다녀왔다. 한 시간 가까이 진행된 결혼식이 마치 한 편의 공연을 보는 듯 재미지고 감동적이었다. 양가 가족이 얼마나 이 결혼식을 소중히 여기는지, 귀한 아들, 딸인 신랑 신부에게 보내는 가족들의 사랑이 얼마나 큰지 무엇보다 크게 느낀 결혼식이었다. 물론 나는 내내 감동의 눈물을 흘렸다.

 신랑, 신부의 동생들이 무대 위에 등장하여 사랑의 약속인 결혼반지를 전달했다. 양측의 아버님들은 주례를 대신하여 아들, 며느리 / 딸, 사위에게 소중한 인연과 사랑, 믿음에 대한 귀한 말씀들을 재치 있게 전해 주셨다. 하객들의 마음이 즐거워졌다. 신랑 신부의 친구들은 하나하나 꽃송이를 건네며 진심 어린 축하를 건넸으며, 아름다운 운율로 사랑의 노래를 불러 주었다. 신부의 동생과 동생 친구들은 아주 오랜 시간 동안 연습했던 화려한 무대 퍼포먼스를 귀엽고 사랑스럽게 펼쳐 주었다. 어느 것 하나 사소한 것이 없었다.
 성혼선언의 증인으로서 예식에 참가한 모든 하객들이 소리 모아 성혼서를 함께 낭독해 준 것은 참 신선했다. 무엇보다 엄숙한 사랑의 서약식이었다.
 이 결혼식의 가장 특별한 점은 ‘부조’를 없앤 것이다.

 미리 혼주의 뜻을 알고 갔으나 많이 낯설었다. 미처 모르고 온 하객들은 난감해하며, 부조를 하려 애썼으나? 실패했다.

대신 예쁜 축하카드에 신랑/신부에게 전하는 축하 메시지로 부조를 대신했다.

 얼마의 부조금과는 비할 바 없이 귀중한 축복의 축하 메시지임에는 틀림없으나 족히 수 천만 원은 나왔을 하객 식비를 생각하니 혼주의 뜻이 정말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조금만 지위가 올라가도 대단한 부조금으로 사회적 물의를 빚는 지도층들 이야기가 흔한 세상인데, 이런 어려운 결정을 내린 혼주의 뜻과 소신이 대단히 존경스러웠다. 습관처럼 해 오던 것을 바꾼다는 것이 매우 어려운 일이라는 것을 알기에, 이것은 나부터라도 해야 한다는 마음으로 바꾸려 마음을 굳게 먹었으나, 실천하기 코앞에서 그냥 맥없이 허물어진 적이 무수히 많았기에 이 분들의 용기와 실천력이 얼마나 대단한 것인가를 알겠다.

결혼할 수 없는 세상

 세상이 바뀌고 살기 힘들어지면서 이제 결혼은 누구나 할 수 있는 통과의례에서 멀어졌다.

능력자만이 결혼할 수 있다는 말이 틀린 말이 아닌 세상에 살고 있다. 결혼을 할 수 있다는 것은 안정적인 직업과 부모의 경제력을 기반으로 한 살 집을 장만할 수 있다는 또 다른 말이기도 하다.

 결혼에 대한 이야기 하나만으로도 취업, 연애, 결혼, 임신, 출산, 육아 등 수많은 사회적 문제를 굴비 엮듯 끌어낼 수 있게 되었다. 작년에 태어난 아기들이 36만 명이라는 기사를 보고, 대학을 가기 위해 70만 명이 학력고사를 보던 세대인 나는 그 출생률 숫자에 엄청 충격을 받았다. 저 출산율이 사회적 문제가 된지는 꽤 오래되었지만, 아무리 정부에서 특급 비책을 내놓는다 해도, 결혼부터 힘든 이 세상에서 이 문제가 쉽게 해결되지는 못 할 것 같아 더 불안하고 초조하다.  

 전세금 2,200만 원으로 신혼을 시작했다. 그것도 100만 원이 모자라 한 달 후 드릴 것을 후한 마음으로 받아 준 집주인 덕분에 겨우 16평 공간을 마련할 수 있었다.

반의 반세기 동안 세상은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로 바뀌었다. 부모의 가난과 고생을 보며 그것에서 벗어나기 위해 공부했던 우리 세대는 이제 부모만큼이라도 살 수 있을까? 의심하고 좌절하는 자식들을 낳아 기르며 살고 있다.

 대한민국 최고의 경제적 전성기 때 청년기를 누렸던 우리를 그냥 운이 엄청 좋은 세대라고 말하고 말기에는 자식들의 불안과 좌절이 너무 크다.

결혼

 ‘결혼’이라는 단어만으로도 수 백, 수 천 편의 다양한 이야기가 나올 수 있을 만큼, 단어가 가지는 의미는 매우 크다. 나부터 오래전 추억을 그리움으로 떠 올려 보았고, 결혼에 대한 부정적 면을 바꾸기 위해 작지만 크게 시작하는 이들의 용기에 박수를 치기도 하고, 보다 더 나은 사회를 만들기 위한 여러 가지 생각들을 공유해 보기도 했다.

우리 삶의 목표가 ‘행복’이라면, 행복과 가정과 결혼과 사랑은 늘 한 세트로 움직일 것이다. 우리의 행복의 시작이, 우리의 생명의 시작이 결국엔 ‘결혼’ 일지 모른다는 생각을 해 본다. 나의 결혼이든, 부모의 결혼이든 그것은 고리의 고리를 물고 우리의 행복과 사랑을 온통 지배하고 있을 만큼 의미 있고, 중요한 일이기 때문이다.
화창한 봄날에

 어릴 적 멋모르고 부르던 노래 한 편이 떠오른다. 우리는 왜 운동장에서 주로 이 노래를 응원가로 불렀을까? 

화창한 봄날에 코끼리 아저씨가 가랑잎 타고서 태평양 건너갈 적에
고래 아가씨 코끼리 아저씨 보고 첫눈에 반해 둘이 살짝 윙크했대요
당신은 육지 멋쟁이 나는 바다 예쁜이 천생연분 결혼합시다 어머어머 어머어머
예식장 용궁 예식장 주례는 문어 아저씨(박사)
피아노는 오징어 예물은 하얀 조 개비

 낭만적이기까지 한 이 노래를 더 이상  쉽게 부를 수 없는 것은 맨 첫 소절부터 거짓말이 되어가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황사와 미세 먼지로 더 이상 화창한 봄날을 맞이할 수 없듯이, 첫눈에 반해 하얀 조가비 예물을 나누며 오징어가 쳐주는 피아노 소리에 결혼 행진을 하기에는 세상살이가 너무 버거워졌다. 이제는 순진하게 이 노래로 세상을 응원할 수 있다고 믿지 않게 되었다.

 그러나 그렇다 해도 그 힘듦도 결국은 우리 삶의 일부이니 품어낼 방법을 생각해 낼 수밖에 없다.


 화창한 봄날, 모처럼 의미 있고 아름다운 결혼식을 다녀와서 많은 생각들을 했다. 그래도 마지막으로 맺을 말은  이 말일 것이다. 이 아름다운 계절에 결혼식을 올리는 모든 이들의 앞날을 축복한다.

사랑할수록 행복해질 것이다.   


<모든 이미지 출처 = 다음 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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