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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시락 한방현숙 Jan 04. 2018

도루묵과 굴

쌀쌀한 바람 부는 11월이 오면

 도루묵이 한창

 생선 코너에 비린내라고는 절대 날 것 같지 않은 모양으로 도루묵이 누워 있다.  매일 보던 생선들을 지나쳐 도루묵 한 팩을 샀다.  축축 쳐지면서도 탄력을 유지하는 도루묵은 물에 씻을 때도 여느 생선과 달리 깨끗하다. 펼쳐지는 비늘조차 은빛이 돌며 손에 미끈거리는 거 하나 남기지 않는 깔끔한 몸통을 지니고 있어 ‘은어’라 했던가 하는 생각을 해 본다.

엄마와 도루묵

 어느 임금과 도루묵 이야기나 ‘말짱 도루묵’이라는 말은 초등학생 때부터 이미 알고 있었으나 도루묵을 먹어 본 기억은 드물다. 찬바람이 불고 계절이 바뀌면 엄마가 지나가는 말로 ‘도루묵’ 말씀을 하셨다. 별미라는 ‘도루묵 구이’는 엄두도 못 내고, 무를 넣고 자박자박 찌개를 해 드렸다. 한 끼는 맛있다며 잘 드셨지만, 내 요리 솜씨 부족인지, 엄마 입이 짧아서 그러셨는지 아무튼 이리저리 덥히기만 하다가 버린 기억이 많다. 한 번 먹어본 나는 고소하다는 도루묵 알에서 비릿한 맛만 느끼고는 ‘엄마는 잘 드시지도 않으면서 매 번 사 오라고 하셔!’라며 투덜거린 기억이 많다.

도루묵과 굴

 그런데 오늘 덥석 도루묵을 산 것이다. 그 옆에 있던 까만 테두리가 유독 싱싱해 보이는 굴과 함께 말이다. 도루묵을 씻어 바닥에 무가 깔린 냄비에 안치고 양파, 마늘, 파 등을 넣은 간장 양념을 끼얹어 가며 예전 하던 대로 찌개를 끓였다. 보글보글 끓어오르는 찌개를 보며 그 해 겨울을 생각하고 엄마를 떠올린 것은 어쩜 당연한 일일 것이다. 아니 아예 그러려고 오늘 도루묵과 굴을 샀을지도 모른다.

 자연산 굴을 소금물에 흔들어 살살 씻었다. 생굴을 보통 초고추장에 찍어 먹기도 하고, 간장에 찍어 먹기도 하는데, 엄마는 굴을 색다르게 즐기셨다. 생굴에 찬물을 붓고, 조선간장에 파, 마늘, 깨소금, 고춧가루를 넣어 물에 타 먹는 것이다. 생 굴국이라고 해야 할까? 아무튼 신혼 초에 굴을 간장에 찍어 먹는 것도 이상하다 하던 남편이 지금은 그 시원한 맛을 알아 밥 한 그릇 뚝딱할 정도로 좋아하게 된 굴 요리 중 하나이다.

 도루묵찌개를 식탁에 놓고, 그 옆에 굴국과 어제 만든 닭발요리까지 올리니 평소 엄마가 즐겨 드시던 음식들로 가득이다.

닭발을 물에 담가 핏물을 뺀다.
생협을 이용하면 국산 닭발을 쉽게 구할 수 있다.
끓는 물에 향신 재료( 파, 생강, 커피, 청주 등)를 넣고 데치듯 삶는다.
건져 차가운 물에 깨끗이 여러 번 씻어 잡냄새를 없앤다.
고추장, 고춧가루, 마늘, 후춧가루, 꿀, 청주 등 양념에 버무려 재워 둔다.
프라이팬에 기름을 두르고 양념이 타지 않게 볶아 낸다.
참기름과 깨소금을 올려 조금 식힌 후 먹는다.
도루묵과 굴과 닭발

 닭발도 집에서 자주 해 먹는 요리 중 하나이다. 물론 엄마가 즐겨해 주시던 음식이라 우리 딸들도, 나도 뻘건 양념 입에 묻혀 가며 매운 닭발을 잘도 발라 먹었다. 흉측하다며, 낄낄거리며 소란스럽지만 맛난 시간들이었다.

 도루묵 야들야들 연한 살을 양념에 묻혀 밥 위에 얹어 한 입 먹고, 동글동글 탱탱한 도루묵 알을 한 아름 입에 넣어 오물거리니 정말 맛나다. 톡톡 터지는 달큰하고 고소한 맛들이 쏟아져 나온다. 전에 느끼지 못한 도루묵의 참맛들이 대거 몰려든다.
 이번에는 굴을 크게 한 술 떠 입에 넣어본다. 굴의 탱탱한 식감이 시원한 바다내음을 데리고 입안에 오래 머문다. 바닷속 우유라는 별칭답게 몸도 피부도 탱탱해질 것만 같다.
 비닐장갑도 없이 맨손으로 닭발 하나를 집어 입에 넣는다. 야무지게 오도독거리며 씹는 찰진 맛이 닭발의 매력에 빠져들게 한다. 맵고 짭조름한 맛들이 금방 밥 한 그릇을 비우게 만든다.
음식과 추억

 맛있다. 맛나다를 연발할수록 가슴속에 아쉬움과 아픔이 자리 잡는다. 이 순간 함께 했으면 얼마나 좋을까 간절한 마음이 커져 목울대가 뜨거워진다. 음식을 준비하고, 만들고, 나누고, 기억하는 모든 것에 스토리가 함께 한다. 생선가게를 지나다, 고기 집을 지나다, 과일가게를 지나다, 김치든, 잡채든, 국수든 어느 음식 재료와 음식 앞에서 잠시라도 함께 한 사람과 시간들을 떠올리며 우리는 추억에 잠긴다.

 음식과 맛은 종종 사랑으로 기억되고 특별한 장소로 나타난다. 예전에 먹던 그 맛을 요즘은 못 느끼기도 하고, 지금 모르는 맛을 언젠가 탄식하며 알게 되기도 한다. 초등학교 하굣길 코흘리개 친구들과 침 쩍쩍 묻혀가며 먹던, 그 결코 위생적이지 않지만 세상 맛있던 떡볶이 맛을 어디서 찾을 수 있으랴! 추운 날 여중생 친구들과 나눠 먹던 튀김만두(야끼만두), 고교 때 야자시간에 나가 먹던 인천의 유명한 새빨간 쫄면, 대학교 도서관 5층 휴게실에서 즐겨 먹던 사발면과 추위에 떨며 먹었던 길거리 뜨거운 어묵 국물까지…….

 친구들과의 먹거리 추억도 이리 뜨거운데, 가족과의 추억은 오죽하랴 싶다. 엄마가 만들어 준 가지나물을 몹시 먹고 싶다. 뭇국과 함께 어디서도 대체할 수 없는 우리 엄마만의 음식이다. 허기진 유년 군것질거리가 없을 때 오빠가 만들어 주던 호떡도 무척 먹고 싶다. 한창 성장기 오빠는 얼마나 입이 궁했으면 밀가루로 호떡을 다 만들었을까? 남편과 연애할 때 자주 먹던 뜨거운 홍합 국물도 잊을 수 없다. 그때는 겨울이 왜 그리 추웠는지 가난한 연인들에게 푸짐한 먹거리와 따스한 공간을 한번에 해결해 준 신포동 어느 골목 홍합탕 집은 고마운 우리의 단골집이었다.  
음식과 사랑

 즐거움으로 떠오르는 음식과 맛은 즐기기만 하면 된다. 다시 되풀이하여 그때의 행복을 느끼기만 하면, 다시 행복하기만 하면 된다. 아쉬움과 부족함 없었던 즐거운 맛들은 언제나 행복할 뿐이다.

 그러나 가난으로 인해, 이별로 인해, 아픔으로 떠오르는 음식과 맛은 정말 어렵고 힘들다. 소중한 추억과 사람을 떠올리기 위해 다시 음미하지만 여전히 힘들다. 우연히 맞닥뜨릴 때도 여전히 버겁다.

 ‘엄마와 함께 그때 도루묵의 참맛을 나눴더라면 참 좋았을 것을……. 투덜거리지 말 것을, 이렇게 맛있다 잘 먹을 거면서…….’

 다시 또 매년 이 계절이 되면, 도루묵과 굴이 한창인 계절이 오면 나는 또 생선가게 앞에서 서성일 것이다. 그리고는 그리운 이들을 떠올리며 추억의 맛에 빠져들 것이다. 어쩜 도루묵과 굴이 있어서 다행일지도 모르겠다. 내 안의 그리움이 계속 살아 나올 테니까 말이다.

 그리고 앞으로 모르던 맛들은 물론이고 싫어한다 장담하던 맛들까지 알아가며 인생의 맛을 느끼겠지 싶은 마음이 든다.



도루묵 사진 출처 = 다음 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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