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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시락 한방현숙 Jan 30. 2018

세발 낙지와 육사시미

처음 맛 본 음식과 그 순간들

 세상에 많은 음식    

 못 먹어본 음식들이 참 많다. 이름도 모르고 존재조차 모르는 음식까지 생각한다면 그 숫자는 더 엄청날 것이다. 나이 때문에, 지역 때문에, 돈 때문에, 습관 때문에, 문화 때문에…….

 어릴 때 고등어와 토마토를 먹지 못했다. 고등어구이를 먹으면 자주 두드러기가 올라오고, 토마토는 왜 못 먹었는지 이유도 가물가물해졌지만 아무튼 못 먹는 음식이었다. 고등어를 먹고 온 몸이 달아오르면 엄마는 나를 부뚜막에 앉히고 소금을 머리에 뿌리며 뭔가 주문을 외웠던 기억이 있다. 약국도 갈 형편이 된, 놀란 어린 새댁이 할 수 있는 최선의 간절한 바람이 스며든 의식이었을 것이다. 물론 지금은 고등어도 토마토도 즐기는 음식재료 중 하나이다.

 열 살 무렵에 먹어 본 ‘브라보콘’과 ‘요구르트’는 맛의 신세계를 경험하게 해 주었다. 낡은 엄마의 치맛자락을 흔들며 졸라대는 나의 눈빛에 엄마는 또 얼마나 마음이 아팠을까?

 찰랑거리는 도토리묵을 기가 막히게 잘 쑤시던 엄마와 달리 시어머니는 메밀묵을 좋아하셨다. 시집와 처음에는 끈기 없는 메밀묵만 보고도 엄마가 그립고 도토리묵이 생각났는데 지금은 메밀묵의 고소함을 알아 버려 주기적으로 찾게 되는 음식이 되었다.

처음 맛본 음식의 순간들
 경양 식당에나 가야 먹을 수 있었던 시절에 오빠가 처음 사 준 수프와 함께 먹던 ‘돈가스’, 연애할 때 남편이 첫 월급 타서 호기롭게 사 준 강남 어느 빌딩 일식집에서의 ‘회초밥’, 육아에 치여 커피숍도 못 가던 때, 그것도 모르냐던 지인의 핀잔이 야속하게도 먹을 때마다 떠오르는 ‘허니브레드’와 ‘얼그레이’, 모카커피에서 왜 초콜릿 맛이 나냐며 궁금해하던 내가 이제는 아메리카노도 별로라며 빠져들고 있는 드립 커피의 맛과 향기, 그리고 비리기는커녕 담백한 과메기와 시원한 안동식혜까지…….

 처음 맛본 음식의 그 순간들을 기억한다. 그러다 오늘 개성 강한 신입회원 덕분에 ‘육사시미’와 ‘세발 낙지’ 맛을 추가하게 되었다.  

 원래 우리 집은 생식에 강한 편이어서 어릴 적 김이 모락모락 나는 ‘간’과 ‘지라’도 자주 먹었으며, 생선회는 물론이고 ‘육회’도 즐겨 먹었다. ‘간장게장’도 수시로 즐기는 음식인데 ‘육사시미’와 ‘세발 낙지’는 이번이 처음이다.

목포 세발 낙지

 배드민턴 클럽에 수시로 신입회원들이 들어오는데, 이번 회원은 여러모로 좀 남달랐다. 우선 초심이 아닌 선수 출신으로 막강 A조 실력을 자랑했으며, 40대 중반의 미혼 남성에, 앞으로 보나 뒤로 보나 ‘나 광주사람이요~’ 임을 말투나 행동으로 적극적으로 드러내는 회원이었다. 그리고는 격주로 회원들에게 이 전라도 산(産) 별미를 선물한 것이다.

 ‘세발 낙지’가 매우 가늘고 작아서 세발(細발)인 것은 익히 알고 있었으나 내가 먹은 대부분은 아마 모두 수입 산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접시에 잘게 잘라져 나온 것을 고소한 기름장에 찍어 먹었었다. 그런데 이번에 먹은 낙지는 목포에서 고속버스를 타고 올라온 목포 산 세발낙지로, 머리부터 통째로 먹기에 도전한 낙지였다. 식탁에 마주한 사람들 모두 첫 경험이었다. 머리부터 입안 한가득 넣고 오물거리는 사람, 강력한 빨판에 눌려 접시 째 시름하는 사람, 소리 지르며 못 먹겠다는 사람들까지 각양각색으로 세발낙지를 마주했다.

고속버스로 공수해 온 목포산 세발 낙지
 죽어가는 소도 일으킨다는 말이 있듯이 낙지는 스태미나 음식으로 통하는데, 타우린과 히스티딘 등의 아미노산이 칼슘의 흡수, 분해를 돕기 때문이란다. 예부터 우리 조상들은 영양분이 잔뜩 든 가을 낙지는 맛이 달고 독이 없으며 [동의보감], 달콤한 맛으로 원기회복에 좋다고 [자산어보] 낙지를 좋은 먹거리로 추천하고 있었다.

 나도 머리 째 입에 넣어 오물오물 씹어보았다. 정말 씹을수록 고소하고 달콤한 맛이 나왔다. 여럿이 어울려 거나하게 맛있게 먹고 마시고는 공교롭게도 다음날 철 지난 신문 칼럼을 보게 된 것은 또 무슨 이유일까? 미국 동물보호단체에서 한국의 산(生) 낙지 시식 문화에 대해 동물학대행위로 규제하고 있다는 내용이었다. 동시에 음식을 먹더라도 되도록이면 산 채로 먹지 말라던 어느 스님의 법문 말씀도 떠올랐다. 내가 어제 한 행위가 어떤 의미로 해석이 될까 아직도 생각 중이다.

장흥 육사시미

 그리고 두 번째 ‘육사시미’ 잔치가 열렸다. 이번에는 전라도 장흥 산(産)이란다. ‘사시미’가 ‘생선회’의 비표준어이나 여기서는 서로 대체하기에는 뭔가 좀 부족함이 들 정도로 느낌이 다른 단어들이다. 이번에는 집으로의 초대이기 때문에 우리 여성회원들이 앞서 가서 뭔가를 해야지 싶었는데, 이미 숙달된 솜씨로 상을 차리고, 고기를 다루고 있었다. 바닥에 신문지로 차려진 독특하고 기발한 상을 마주하며 우리는 또 육사시미 맛을 처음 경험했다. 주인장의 시범에 따라 얇게 저민 육사시미 위에 쌈장을 올리고, 저민 마늘과 고추를 감싸 입에 넣으니 담백하고 고소한 단백질 맛이 입안 가득이다. 날것을 즐기지 못하는 사람들은 팬에 고기를 굽기도 하였다. 어디서 이런 고급 진 쇠고기를 마음껏 먹으며 친구들과 허물없이 웃을 수 있을까? 우리들은 참 행복한 사람들이다.

음식이 남긴 것들

 유종의 미만큼이나 중요한 것이 처음 만남인데 새로운 친구들과 친해지기 위해 베푸는 마음이 고맙고 감사하다. 다가오려는 설렌 마음을 소중히 품어주고 싶은 새 친구이다. 오늘 경험한 전라도산 새로운 별미처럼 쫄깃하면서도 담백하게, 피로 해소제이면서 서로의 삶에 원기 회복제까지 되고픈 거대한 꿈을 꾸어 본다. 목포산 세발 낙지와 장흥산 육사시미를 처음 먹던 그날들을 당분간 흥겨움과 즐거움으로 떠올릴 것이다.

류셰프와 즐거운 손님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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