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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시락 한방현숙 Dec 30. 2017

2017  크리스마스

축복의 성탄절을 기원하며

  2017 크리스마스 이브

 일요일 아침 일어나 보니 식탁 앞에 커다란 산타 양말이 걸려 있다. 내일이 크리스마스라고 아이들이 걸어 놓은 모양이다. 피식 웃음이 나왔다. 세 아이들 중 스무 살 넘은 성인이 2명이나 되는데, 그 의도가 자못 눈에 확 들어오며 늘 용돈이 모자라 동동거리는 대학생 딸 둘을 떠올렸지만 애써 무시하며 모처럼의 애교를 바라만 보았다.

 한술 더 떠 둘째와 남편은 즉흥 연기까지 펼치며 서로의 의도를 모른 척, 자신의 의도를 티 내지 않는 척 대사를 주고받으며 너스레를 떨었다.

 “ 아빠, 산타할아버지가 이 양말 안에 가득 선물을 채워 주시겠죠?”
“ 글쎄! 요즘 산타할아버지가 출장 때문에 바빠서 우리 집은 패스하지 않으실까?”
“ 그럴 리가요? 산타할아버지는 절대 그러실 분이 아니에요!”
“ 음, 요즘 경기가 안 좋아서 아마 어린이 집들만 다니실 거야!”

 한바탕 웃음으로 마무리한 아침이었고, 종일 그 산타양말은 그 자리에 걸려 있었다. 어린이의 동심을 지켜주는 것이 어른이 해야 할 중요한 일들 중의 하나이나 우리 집에는 어린이가 없다. 그러나 남편은 흔들렸고 결국은 커다란 산타 양말 속에 봉투를 넣어 산타의 존재를 알렸다. 그렇게 2017 우리 집 크리스마스는 훈훈하게 시작되었다.

1981 크리스마스(중1)

 크리스마스 당일에 거리를 나가 본 지 꽤 되었다. 밤거리를 헤매며 캐럴 송을 들어본 지도 오래다. 가슴 두근거리고 설레던 마음으로 크리스마스와 연말을 맞이할 때가 언제인가 생각해 본다. 부모님께 크리스마스 선물을 받아 본 적 없다. 그렇다고 그것이 아픔이거나 속상한 적도 없었다. 어릴 적 우르르 몰려 교회에 가면 맛난 과자와 크리스마스 선물을 만날 수 있었다.

 나에게 떠오르는 아름다운 크리스마스는 1981년 중1때부터 시작된다. 예전에 우리는 늘 12월 20일 쯤 겨울방학을 맞이했고 그 즈음에 크리스마스카드를 만들어 선생님께도 드리고 친구들과도 나누며 기쁨을 함께 했다. 1학년 7반에 모인 우리 7명은 각자 선물을 준비해 야무지게도 크리스마스 파티를 계획했다. 매년 돌아가며 친구 집에 모여 크리스마스 파티를 한 것이 중학교, 고등학교, 대학교 때까지 이어졌다. 언제부터 끊어졌는지 기억이 가물거리지만 지금도 만나고 있는 오랜 친구들이다.

솜씨 좋은 친구가 그려준 크리스마스카드는 아직도 예쁨이 선명하고, 막내 딸 친구들을 위해 7개의 산타사탕을 품에 안고 들어오시던 다정한 친구 아버님은 어느새 구순에 접어드셨다.

 14살 어린 소녀들은 어느덧 엄마로서, 사회인으로서, 직장인으로서의 역할을 제대로 하며 사느라 아직도 힘들고 바쁜 일상을 보내고 있지만 그래서 자주 만나지는 못 하지만 여전히 허물없는 순수한 내 어릴 적 친구들이다.

예전처럼 크리스마스 파티를 제안해 볼까! 내가 얼마나 친구들을 우리 집에 초대하고 싶어 했는지, 우리 집에 함께 모여 라면이라도 끓여 먹는 일상을 얼마나 원했는지 친구들은 알까? 그 때 가난하고 초라한 우리 집에 한 번도 친구들을 부르지 못 했던 내 아쉬운 마음을 친구들은 눈치 챘을까?

 다정한 친구들이 그려 준 소중한 그 때의 카드들을 한 번 찾아 봐야겠다.

1987 크리스마스(대1)

 대학교 때 친구들과 무리지어 명동 길을 누비다 한 친구 집에서 밤새워 깔깔거리던 크리스마스도 떠오른다. 마냥 즐겁고 행복했던 시절이다. 지금 엄마, 아빠가 되어 중년의 길을 같이 걷고 있는 그 친구들도 나처럼 그 아름다운 시간들을 떠올릴까? 청춘의 푸름 속에서 우리가 했던 고민마저 깔깔거리던 웃음기가 가득 했었음을 이제야 느껴 본다.

1990년대 크리스마스

 연애하는 동안 크리스마스를 어찌 보냈는지 별다른 기억이 없다. 카드를 주고받고, 식사를 함께 하며 시간을 보냈을 것이다.

결혼을 하고 아이가 생기고 나서부터 크리스마스는 또 다른 의미로 다가온다. 이제는 한 아이의 행복을 위해서 산타할아버지가 되어 새로운 우주를 선물하기 위해 앞장선다. 유치원 선생님과의 합동 작전으로 아이의 순수함을 지켜내고 트리를 만들어 반짝이는 불빛으로 아이에게 기쁨을 선사한다. 아이는 그렇게 커가며 산타의 존재를 믿는 나이에서 그렇지 않은 나이로 자라난다.
2017 크리스마스

 오늘 2017년 크리스마스에는 새로운 이벤트를 계획하고 큰마음 먹고 요리를 시작했다. 시부모님을 집으로 모셔 식사를 함께 하는 일이 드문 일은 아니지만 그간 크리스마스를 함께 하지는 못 했었다. 게다가 부모님에게는 낯선 서양식 요리를 준비하니 이런저런 생각( 입맛에 맞으실까? 요리가 성공할까? )이 들어 망설이기도 했지만 함께 식사한다는 기쁜 마음으로 직진하기로 했다. 스테이크를 굽고, 스프를 만들고, 샐러드와 소스를 만들어 버터구이 새우와 함께 식탁에 올렸다.

 서두른 요리 솜씨에 비해 제법 괜찮은 크리스마스 식탁이 차려졌다. 덕분에 모처럼 3대가 모여 즐거운 식사시간을 가졌다. 평소 고기를 즐기지 않는 아버님이 정말 맛나게 잡수셔서 기분이 더 좋았다. 이게 무슨 음식이냐고 묻는 순박한 어른들 모습이 살짝 귀여우시기도 했다.

크리스마스는 축복의 성탄절

 오늘 다시 정겨운 성탄절 기억을 하나 더 추가하게 되었다. 모두가 따스한 기억으로 크리스마스를 떠올렸으면 좋겠다. 가난하지만 친구가 있어 든든했던 14살 소녀도, 불안정한 시기였지만 버틸 수 있었던 청춘도, 아이로 인해 새로운 성탄절 의미를 찾았던 30대 젊은 부모도, 연로하신 부모님을 봉양하는 중년의 모습도 모두 성탄절 안에 따스하게 녹아 있다.

‘사랑과 평화가 온 누리에’라는 말이 우리 모두에게 다가와 우리를 비췄으면 좋겠다. 겨울이어서 더 따스한 성탄절, 연말이어서 더 새로운 성탄절이 축복으로 우리 모두에게 찾아 왔으면 좋겠다.

(대문 사진은 아이들 어릴 때 함께 보던 유니버셜 발레단의 '호두까기 인형'의 한 장면이다. 아이들은 기억에 없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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