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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시락 한방현숙 Aug 17. 2019

16살 아이들이 기억하고 지켜주고 싶었던 소녀

평화의 소녀상!2019  간석여중 3-2 파이팅!

 오늘은 4주 동안의 방학을 마치고 개학을 하는 날이다. 바로 어제는 ‘광복절’이었다. 어느 때보다도 뜨겁고 옹골진 광복절의 기운이 전국을 들썩이는 이때 우리에게 때마침 작은 상자가 배달되었다. 아이들의 환호와 함께 상자를 여니 예상대로 그 고운 배지가 들어 있었다. 한 달여의 기다림도 한몫했지만, 때가 때인 만큼 그 의미가 남달랐다. ‘때마침’이란 단어가 이렇게 시의적절할 줄이야.    

27개의 배지가 배달되었다.

7월 방학할 즈음이었다. 한 학기를 마무리하는 각종 시상 중에 우리 반 아이들의 환호성이 자자했다. 학급 분위기가 우수한 반을 선정하는 ‘행복수업’ 프로젝트에서 연이은 수상으로 6만 원의 상금을 받았기 때문이었다. 3만 원, 2만 원 각각 나름의 상금을 수상한 3학년 각 반들은 매일 즐거움 가득이었다. 이 돈을 어떻게 쓸 것인가? 하는 행복한 궁리와 곧 다가오는 방학의 기쁨을 함께 누리고 있었으니 등교하는 발걸음마저 가벼웠을 것이다.
 떡볶이를 사 먹는다. 피자를 배달시킨다. 영화를 보러 간다, 등등 옆 반에서 들려오는 소리들이 다양했다. 학기 마무리를 하느라 분주한 나는 우리 반도 대충 비슷하게 이 기쁨을 누리려니 하며 교실에 들어가 아이들 얼굴을 마주했다. 우선 좋은 학습 분위기를 만들기 위하여 모두 다 기울인 노력을 칭찬하고, 한 학기 무탈하게 학급 운영할 수 있도록 애씀에 고마움을 표현했다. 그리고는 이 상금을 어찌 사용할 것인지 의논하여 결과를 알려 달라하고 교실을 나왔다.
 이 상금을 쓰는 것도 업무이기에 학교 주변 분식점 전화번호를 서둘러 찾고 있는 나에게 반장이 전한 내용은 뜻밖이었다.

상금 쓰임의 대상이 먹거리가 아닐 뿐만 아니라, 세상에 어찌 이런 생각을……. 게다가 아이들은 각자 2,000원 정도의 돈을 추가로 걷기로 했다는 것이다.
고향을 그리워 했던 소녀들을 기리며...

 그렇게 해서 마련한 배지가 한 달 여 방학으로 인해 드디어 오늘, 아이들 손에 들어온 것이다. 아이들은 배지를 소중하게 하나씩 집어 들었다.

‘우리는 너를 기억하리!’라는 커다란 문구 아래 자그마한 소녀가 있는……. 소녀에게 용기를 주기 위해 붉은 계열을 사용한다 했다. 그 누구보다도 당신을 사랑한다는 꽃말을 지닌 붉은 동백이 머리에 꽂혀 있고, 혼자가 아님을 말하기 위해 어깨에 곁을 지키는 노란 나비를 살포시 얹어 놓았다 했다.

 흰 저고리에 검은 치마를 입은 앳된 소녀를 우리 반 16살 소녀들도 기억하고 지켜주고 싶었던 것이다. 


 게다가 8월인 요즘은 연일 ‘NO 일본’을 외치는 뜨거운 나날의 연속이기에 아이들 가방에, 가슴에, 옷깃에 달릴 이 배지의 메시지가 더 강렬할 것이리라.
 우리는 국어시간에 함께 배웠다. ‘백범 일지’를 통해 일제시대 조선인의 비참한 삶과 독립 운동가들의 용기와 희생을, ‘웰 컴 투 동막골’ 시나리오를 통해 전쟁의 참혹함은 물론이고 6ㆍ25 전쟁이 얼마나 안타까운 역사적 사건이었는지를 함께 이야기했었다.

 전쟁만 아니었다면 아니 전쟁이 조금이라도 더 늦게 터졌다면 적어도 친일인사들이 신분세탁할 시간을, 일본이 다시 재기할 기회를 주지 않았을 것이다.

 아이들은 영화 ‘대장 김창수’를 보고 함께 눈물지었다. 김구 선생의 어머니가, 자랑스럽다는 말과 함께 보낸 하얀 수의를 품에 안고 선생이 흐느낄 때, 아이들도 눈물을 훔쳤다. 청년 김창수가 나날이 성장하여 지도자로서의 면모를 보이며 대장으로서 우뚝 섰을 때 아이들도 함께 응원하며 리더의 자세에 대해 고민했다.

광복의 기쁨을 누리고, 그 영광스러운 이름을 드높일 애국자가 어디 한둘이겠는가? 극악무도한 일본 제국주의의 횡포 아래 참혹하게 죽어간 이름 없는 이들 또한 얼마나 많을 것인가? 친일 청산을 제대로 하지 못한 대가로 우리는 또 얼마나 분노하고 있는가?

‘대한(對韓) 무역전쟁 도발……. 등등의 표제가 연일 신문을 장식할 때 아이들은 조용히 할머니들의 손을 잡았다. 사죄와 반성은커녕 더욱더 뻔뻔스러워지는 가해자를 향해 예리한 눈초리를 날리고 있다. 독일이 단지 상대가 막강한 유태인이기에 머리 숙여 사과하는 것이 아니듯, 그들도 우리가 매우 만만해서 저리 뻔뻔스러운 것이 아님을 애써 부정해 보려 한다. 그냥 그들이 군국주의를 다시 소환하려는 미친 집단이기에 저리 하리라 탄식해 본다.

얼마나 기특하고 자랑스러운지...

우리 반 26명의 소녀들이 방긋 웃음 짓는다. 저 예쁜 미소들이 그들의 얼굴에서 멈추지 않기를 기원한다.

 그리고 저 고운 미소가 그 시절, 그 소녀들에게도 다시 돌아올 수 있기를, 아니 반드시 되찾을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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