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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시락 한방현숙 Aug 06. 2020

난 그들에게 '사랑'이었다.

나다움-사랑받고 인정받을 때 가장 행복했다.

 이제는 모두 가버린 사람들

 목소리가 걸걸한 내 어릴 적 친구는 나의 눈이 슬프다고 했다. 왜? 이렇게 밝고 건강하게 잘사는데……. 늦은 밤 함께 모임을 끝내고 인천으로 오는 차 안에서 친구는 다시 말했다. 쭉 그런 생각을 했었어. 하긴 오래전 직장 동료도 나를 ‘처연하다’는 형용사로 묘사한 적이 있었다. 친구야 내 속속들이 가정사를 아니까 그렇다고 하지만 깊은 대화 한번 나눠 본 적 없는 동료는 어찌하다 그런 표현을 했을까?

 치열했던 20대를 지나, 육아와 살림으로 꼼짝 못 했던 30대, 아픈 엄마 간병으로 고된 40대를 보내고 이제 50대가 되어 숨 돌리는데, 나의 슬픔은 아직 그대로 그 자리에 있나 보다. 나의 저 밑바닥 슬픔에는 언제나 엄마, 오빠, 아버지, 나의 원 가족이 있다.

 아침 출근하는 차 안에서 오늘도 인사를 건넨다. 차 문을 열고 시동을 걸고 운전대를 잡으며 아침마다 의식처럼 나의 원 가족을 깨우고 맞이한다. 엄마를, 오빠를 그리고 아버지를 깨워 내 안으로 들인다. 이제는 모두 가버린 사람들이기에, 어찌할 수 없는 그 시절이기에 내 안에서 내 마음대로 상처를 덮어 새살이 돋기를 주문처럼 되뇌어 본다.    

 엄마, 안녕! 오늘도 건강하게 거기서 행복하지요? 보고픈 오빠, 안녕! 오늘도 그곳에서 마음껏 웃고 있지요?    
아버지와
엄마와
오빠와
살던 때가 있었다
아버지는
광활한 만주 벌판을 꿈꿨으나
우리들의 셋방은 너무 좁았다
어머니는
곱고 수줍은 분이었으나
세상은 생긴 대로 살게 하지 않았다
오빠는
머리 좋고 재주 많은 아이였으나
아버지는 아들을 슬프게 하였다
애달픈 인생들은 모두 과거형만 남겨놓고 떠났다.
나는
아버지를
어머니를
오빠를
어루만진다
그러다
나도 어루만진다
나는 그들에게 사랑이었다
추석이 다가오니
내 마음이 달빛이 되어가나 보다
달무리 안에 모두 모여 기다리면 좋겠다   

 나는 가족들을 이렇게 보내고, 나만 혼자 남아 이 세상에서 잘 먹고, 잘 자고, 잘살고 있다. 맛난 음식을 배부르게 먹고, 친구들과 어울리며 크게 웃고, 아름다운 풍경에 도취되어 숨을 쉬고, 남편과 딸들과 따스한 체온을 나누며 행복에 겨워 잘살고 있다. 그러나 그때마다 그 끝에 어김없이 찾아드는 헛헛함으로 그들을 기억하고 있기에, 행복한 순간마다 그들을 불러내 미안해하고 있기에 가슴에 아직 녹지 못한 얼음덩어리 하나 얹어 살고 있다.

 불행하게 살다 불행하게 가버린 피붙이를 떠올리는 일이 아픔이고 아물지 못한 상처이기에 아직도 가슴이 묵직하다. 그리고 아프다.    

 내가 가끔 우울하다면, 내가 홀로 눈물을 흘린다면, 내가 영화를 보며 폭풍 오열한다거나 노래 가사에 먹먹함을 느낀다면 그 모든 것은 내 안의 슬픔, 가족 때문일 것이다. 오빠가 떠나고 강산이 두 번이나 바뀌었다. 함께 아파하던 엄마도 가신 지 5년이 흘렀다. 그동안 많이 아팠다. 세월이 약이라는 흔한 말이 있듯이 시간은 흘러 다양한 모습으로 나를 위로해 주었지만 마음은 여전히 어렵다.     

'상처의 향기, 상처야말로 더 꽃'이라는 시인의 위로

 며칠째 마음속에서 맴돌고 있는 시 한 편이 나를 위로해 주고 있다. 교과서가 바뀌면서 새롭게 알게 된 시인데 상처투성이 고목이 우리 가족들 같아서, 꽃보다 더 향기로운 것이 상처라는 시인의 말에 끌려서 보고 또 보고 읊어 본다.    

어린 매화나무는 꽃 피느라 한창이고
사백 년 고목은 꽃 지느라 한창인데
구경꾼들 고목에 더 몰려섰다
둥치도 가지도 꺾이고 구부러지고 휘어졌다
갈라지고 뒤틀리고 터지고 또 튀어나왔다
---- 중략 ---
꽃구경이 아니라 상처 구경이다
상처 깊은 이들에게는 훈장(勳章)으로 보이는가
상처 도지는 이들에게는 부적(符籍)으로 보이는가
백 년 못 된 사람이 매화 사백 년의 상처를 헤아리랴마는
감탄하고 쓸어 보고 어루만지기도 한다
만졌던 손에서 향기까지 맡아 본다
진동하겠지 상처의 향기
상처야말로 더 꽃인 것을.
- 유안진, 「상처가 더 꽃이다」

 '상처의 향기, 상처야말로 더 꽃인 것을'이라는 시구가 메아리로 나의 마음을 싸고돈다. 가족의 짧은 인생을 보았기에, 그들의 지난한 삶을 함께 겪었기에 상처가 되어 아프기만 했는데, 아픔을 넘어 상처가 내 삶의 향기가 될 수 있음을 끄덕여 본다. 상처로 인해 오히려 삶을 더 소중히 여기며 세세한 기쁨을 찾아 고개 들 수 있음을 공감한다. 상처 없는 인생이 어디 있으랴! 상처야말로 더 꽃이 될 수 있음을 믿음으로 받아들이고 싶다.

내 삶을 멋지게 잘살아 보자!
 친절한 말투!
 자랑하지 않은 겸손!
 남을 위한 배려!    

 교무실 책상 에 쓰여 있는 문구이다. 평소 자신에게 가장 부족한 모습을 삶의 지표로 삼는다고 했던가! 나에게 부족한 모습, 채워지면 좋은 모습들을 적어 다. 반성은 쉽고 실천은 어렵다 나 꾸준히 응시하고 있다.

 사랑하는 이들을 떠나보내고 슬픔에 간간이 멍해지는 오늘까지 끄덕임으로 얻것은 결국 내 삶을 멋지게 살아야 한다는 것이다. 나라도 행복하게 살아야 한다는 것이다. 상처가 상처로만 끝난다면, 슬픔이 슬픔으로만 머물러 있다면 무슨 의미가 있으랴! 상처로 얻은 값진 것이 향기 품을 수 있도록 내 주위, 내 가족, 내 사람들을 둘러보며 정을 나누는 착한 사람이 되어 못다 한 가족의 정, 피붙이의 정을 소중히 여기는 것이 멋진 인생임을 알게 되었다.

여든을 훌쩍 넘긴 시부모님을 집 가까이 모실 때 나의 대견함이 멋지다.
자잘한 일상을 살피고, 건강을 챙기는 마음을 효심이라 칭하려 한다.
아픈 외삼촌을 위해 쑤었던 전복죽의 따스함을 잊지 않으려 한다.
나이 들어 노쇠해지는 친척 어른들의 안부를 묻는 일을 게을리하지 않는다.
밭에서 일군 농작물을 알알이 선물하신 귀한 마음을 감사히 받는다.
이웃과 음식을 나누고, 반려견과 생명의 소중함을 알아가며 뿌듯함을 배운다.
남을 이해하고 배려하는 마음을 매일 배우려 한다.

 소소한 일상의 기쁨이 나를 풍요롭게 만든다. 따스한 마음이 나를 기쁘게 만든다. 작은 것이 가장 큰 것임을 깨닫는다. 인생이 별 거 없다는 말은 인생에서 '사랑과 사람'이 가장 소중하다는 뜻일 것이다. 하루하루가 감사함을 잊지 않으려 하고, 일상의 평범함을 복에 겨워 투덜거리지 않으려 한다.    

 관계와 관계 속에서 정을 나누고, 사랑받고, 인정받을 때 내가 가장 멋있음을 알아채고, 활발한 모습으로 생긴 대로 기쁨을 느낄 때 내가 가장 행복함을 확인한다. 그래서 ‘상처가 더 꽃이' 될 수 있음을 실행해 본다.
나는 그들에게 사랑이었다

 처연한 눈빛은 그대로여도, 여전히 슬픔은 때때로 일어도 마음이 아프지 않게 그들을 떠올릴 수 있다. 난 그들에게 '사랑'이었기에……. 보름달이 다가오니 내 마음이 달빛이 되어가나 보다. 달무리 안에 모두 모여 기다리면 좋겠다. 난 귀여운 막내딸의 모습으로 아버지를, 듬직했던 딸의 모습으로 엄마를, 사랑스러운 동생으로 오빠를 만나 오늘 꿈에서 많이 웃었으면 좋겠다.

 사랑하는 이들의 극락왕생을 바라는 마음으로, 더 열심히 착하게 잘사는 것이 그들을 진정 추모하는 길임을 안다.

 그들은 모두 갔지만, 난 그들에게 사랑이었다. 그래서 난 오늘도 나를 귀히 여기며 하루를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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