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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시락 한방현숙 Oct 12. 2020

한복 입은 강아지, 잡채

추석빔 입고 가을 인사드려요.

 추석 같지 않은 추석이 지난 지 벌써 여러 날이다. 많은 사람이 그러했듯이 풍성한 추석을 맞이하라는 흔한 인사조차 건넬 수 없었다. 그간 누려온 많은 것들이 얼마나 소중한 일상이었는지 코로나는 톡톡히 일깨워주었다. 보름달은 여느 때와 같이 휘영청 밝은 달빛을 아낌없이 보내 주는데, 덩달아 함께 환해질 수 없음이 그저 안타깝기만 했다.

 코로나 19 감염 예방을 위한 정부의 권고 지침에 따라 추석 명절 모임을 간소화하고, 추석 당일 시부모님과 간단한 식사로 행사를 마치니 추석 연휴가 하염없이 길게 남아있었다. 온 가족이 모여 삼시 세 끼를 꼬박 집밥으로 먹기에 5일 연휴는 너무 길었다. 여행을 갈 수도 없고, 집 밖 모임을 할 수도 없고 그저 집안에만 있으려니 까딱하면 식구끼리 부딪치기 딱 좋은 순간들이 적지 않았다.

 그러나 그 모든 순간마다 ‘잡채’가 있었다. 두 해 전 추석날, 산책길에 오금도 못 펴고 벌벌 떨기만 하던 아기 잡채의 모습이 아직도 생생한데, 이렇게 밀접하게 잡채가 우리 생활, 인생에 들어와 웃음을 함께 할 줄은 몰랐다. 가족들은 잡채를 만난 후부터 더 많이 웃는다. 친절하고 상냥한 말투로 더 많이 대화한다. 잡채의 가족 화목 도모 효과는 나날이 커지고 있다.

 잡채 없이도 잘 살아온 날들이 많지만, 이제는 잡채가 없으면 안 될 것 같은 날들이 많아지고 있다.

 잡채가 없었다면 코로나 위기 극복이 훨씬 더 어려웠을 것이고, 잡채가 없었다면 우리 집 거실의 웃음이 절반은 사라졌을 것이다.

 의견이 충돌하고 언성이 높아져 발걸음이 사나워질 때 잡채가 다가오면 호흡과 걸음이 부드러워진다. 하루가 너무 길어 지쳐 쓰러지려 할 때 잡채의 부드러운 털이 따뜻하게 피곤을 녹여준다.

 하루에도 수없이 ‘귀여워’를 남발하며 내 안의 순수한 얼굴을 드러내게 하는 것도 잡채의 탁월한 능력 중 하나이다.

 퇴근할 때마다 아이들의 장난감이나 먹거리를 사 들고 오는 젊은 아버지처럼 우리 딸들도 잡채를 위해 무언가를 종종 사 들고 온다. 오늘은 큰딸의 선물, 추석빔이다. 아이들에게 추석빔, 한복을 입혀본 때가 언제던가? 십수 년 전의 기억이 잡채로 인해 아기자기 되살아난다. 잡채에게 한복을 입히고, 사진을 찍고, 영상을 올리고 한바탕 웃음잔치가 끝나면 얼마나 웃었는지 행복감이 마구 밀려온다.

옷 입히느라 한바탕 소란을 치른 후
여자 한복 입혔다고 잡채는결국 삐졌다.

 잡채와 벌써 세 번째의 추석을 보냈다. 휘영청 밝은 달님에게 함께 소원을 빌었다. 하루하루 평범한 일상 속에서 인간적인 행복을 찾을 수 있도록, 작은 일에도 감사하며 풍성한 삶을 이어갈 수 있도록 달빛을 마음껏 쐬고 싶었다.

귀뚜라미 우는 달밤에 이러고 산책을 나가니 분위기가 요상하기도 하다.ㅎㅎ

 생활하기 딱 좋은 가을 날씨가 연일 계속이다. 일교차가 큰 올가을은 어느 때보다도 단풍이 예쁘다고 한다. 단풍놀이를 마음대로 갈 수 없는 상황이더라도 우리 마음속에는 예쁜 단풍잎 하나씩 내려앉기를 바란다. 강아지 한 마리 가지고 뭐 그리 행복 운운할까 싶지만 우리는 다양하게 행복할 방법을 찾아낼 수 있다. 둘러보면 곳곳이 감사함 가득인데 지나친 것들 또한 얼마나 많을까? 소박하게 은은하게 웃으며 살고 싶다.

출근하니 책상에 귀한 선물이 놓여있다. 선배님이 주셨다. 종일 기분이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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