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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시락 한방현숙 Nov 29. 2020

강아지를 키우면 느낌 제대로 오는 단어들

깨갱!

 아이를 낳고 나서야 고개를 끄덕인 이 있다. 갓난아기가 진짜‘응애’하며 것이다. 문자로만 확인하던 ‘응애’ 의성어를 직접 갓난아기의 울음을 통해 확인하니 정말 신기했다. 무슨 이유로 아기 울음이 표기와는 다를 것이라 짐작했는지는 모르지만, 아무튼 적확하게 표현할 수 없는 복잡한 음향이기에 편의상 표기한 것이라 짐작했었다. 그런데 아기는 진짜 ‘응애’ 소리를 내며 울었다.

 수십 년이 흐른 뒤 비슷한 경험을 했다. 강아지가 정말 ‘깨갱’하며 소리를 지른다는 것이다. 강아지 ‘잡채’와 산책 중 길고양이를 만난 적이 있다. 아무 생각 없이 동물만 보면 좋아라, 들이대는 ‘잡채’의 행동이 위협으로 다가왔는지, 수풀 속에 있던 고양이가 ‘잡채’를 순식간에 공격했다. 너무 놀라 정신없이 고양이를 말렸으나, 이미 ‘잡채’ 눈가의 기다란 발톱 자국을 막지는 못했다.

길고양이에게 할퀸 핏자국이 눈밑에 선명하다.

 산책하던 동네 사람들까지 모두 돌아볼 정도로 큰소리가 울렸는데, 바로 ‘잡채’의 ‘깨갱’하는 소리였다. 속된 뜻으로만 알고 있던 ‘깨갱’이라는 소리를, 무서워 두려움에 떨던 강아지 입을 통해 들으니 정말 새로웠다. ‘잡채’는 진짜 길고양이의 무서운 기에 눌려 말 그대로 시멘트 바닥에 몸을 내동댕이치며 ‘깨갱’했던 것이다. 덩치값도 못하는 개 아들 ‘잡채’의 상처가 못내 마음이 아파, 놀이터에서 맞고 들어온 어린 아들 보는 심정으로 ‘잡채’를 달랜 적이 있다. 막다른 화단 벽을 등지고 불시에 발생한 길고양이의 공격은 ‘잡채’와 나에게 큰 충격이었다. 강아지는 다음날 그곳으로 가지 않으려 기를 발길을 다른 방향으로  돌렸다.

꼬리 내리다, 꼬리 치다

 ‘꼬리 내리다, 꼬리 치다’도 그렇다. 그 말의 뜻이나 유래를 전혀 몰랐던 사람처럼, ‘잡채’가 꼬리를 내리거나, 꼬리를 칠 때마다 그 뜻이 새삼 신기하게 다가왔다. 긴장하거나 무서워 꼬리를 내리는 ‘잡채’를 볼 때면 왜 그 말이 어학사전에 실려 내가 아는 그 뜻으로 우리 인간의 대화에 사용되는지 고개를 끄덕이게 되는 것이다. 퇴근하는 나를 향해, 아침 처음 마주하는 나를 향해 ‘꼬리 치며’ 달려오는 ‘잡채’를 보면 웃음이 절로 나온다. 온몸을 다해 나를 좋아한다고, ‘잡채’는 꼬리가 요동칠 정도로 그저 순수한 마음을 격하게 표현했을 뿐인데, 인간 세상에서 쓰이는 그 뜻은 좀 속되니 아쉬웠다.

 게다가 사람이 사람을 유혹할 수 있을 텐데 굳이 여자가 남자에게 잘 보이기 위해 아양 떤다고, 아첨한다고, 꼬리 친다고 뜻을 밝혀 놓으니 참 난감한 마음 든다. 강아지는 그저 좋아 순수하게 꼬리를 흔든 것뿐인데... 해석에 왠지 억울한 마음이 드는 것은 개 아들 ‘잡채’에 대한 애정 때문일 것이다.

잡채 만큼 꼬리가 멋진 강아지가 또 있을까?
개 떨듯, 개 돌아다니다.

 오래전 엄마가 자주 쓰시던 돌아다니, 개 떨듯 떨리다’라는 표현도 생각난다. 유치원에서 돌아와 놀이터에서 놀다, 자전거를 타고 온 아파트를 누비던 어린 딸들이 저녁 무렵 현관에 들어서면 이마에 묻은 고운 땀을 닦아 주시며 이 표현을 쓰셨다. ‘에고, 우리 강아지! 신나게 놀았구나! 어딜 그렇게 다녔는지 흠뻑 젖었네 사랑스러운 눈길로 아이들을 안아주셨기에 '개 돌아다니다'는 그저 정겨운 표현이었다.

 그때는 또 왜 그리 추웠는지 임용고시 시험장에서, 대학교 졸업식장에서 낡은 코트를 걸친 엄마가 떨면서 하시던 말이 있다. 개 떨듯 떨린다고, 요즘 아이들이 강조할 때 쓰는 말처럼 접두사는 아니었을 것이다. 정말 개 dog를 생각하셨을 것이고 강아지가 떨 때 얼마나 떠는지 아셨을 것이다.

 ‘잡채’가 산책을 할 때, 거실을 휘젓고 다닐 때 정말 개 돌아다닌다. 물론 떨 때도 개 떨듯 떤다.ㅎㅎ

강아지, 우리 강아지

 에고, 우리 강아지, 라는 표현의 진가를 ‘잡채’를 키우며 알게 되었다. 왜 그리 예쁜 손주들에게 강아지라 하는지 생각하면 웃음이 절로 나온다. 얼마나 예쁘고, 얼마나 귀엽고 사랑스러운지 그 마음을 드러내는 데 강아지 만한 단어가 또 있을까? 강아지는 사랑이기에... 사람의 마음을 순간 무장해제시키는 것 중에 아기와 강아지를 빼면 또 무엇이 있을까? 순수한 마음의 결정체, 아기와 강아지를 좋아하는 이유일 것이다. 마음을 정화시킬 때 가장 필요한 것이 귀엽고 깨끗하고 순수한 이미지가 최고일 것이다. 아름다운 것을 보면 우리 마음이 고와지듯이 말이다.

 이 모든 것이 다 강아지를 키우며 알게 된 것들이다. 우리는 얼마나 많은 착각들 속에서 살고 있는 것인가? 내가 아는 것이 아는 것이 아니고, 내가 보는 것이 그것의 전부가 아닐진대 늘 다 안다고, 다 보았다고 착각을 넘어 확신까지 하며 살고 있으니 참 어렵다. 경험의 깊이가 얼마나 대단한 것인지를 강아지와 함께 살며 깨닫는다. 아는 만큼 보이고, 보이는 만큼 경험이 깊어진다는 것에 오늘도 고개를 끄덕여 본다. 아무튼 나는 '잡채'가 참 좋다.

남의 강아지도 넘 예쁘다. 오구오구~♡ <출처-다음이미지>
강아지, 강아지, 우리 강아지
잡채 뒤통수도 사랑스럽고, 봉긋 두 귀까지 사랑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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