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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시락 한방현숙 Nov 05. 2016

상인천중 축제 무대 공연

상인천중 풀무골제 '잔소리' 무대 공연

앙! 망했다.

 

 눈에 뵈는 것을 줄이려고 선글라스까지 끼고 올라갔건만, 모든 것은 순식간에 끝났다. 아니 망쳐 버렸다. 아이들은 움츠려 있었고, 나는 엇박자를 탔으며, 리허설 때 약속했던 안무들은 펼쳐보지도 못 한 채, 인사조차 제대로 마무리 못 하고 내려왔다.

 

 공연 후 아이들과 객석으로 다시 돌아온 내내, 체증이 가라앉지 않아 나머지 공연을 보는 내내 속이 불편했다. 아이고 창피해라, 대망신이다.

 

선생님 박치예요? ㅎ ㅎ
선생님 노래 너무 못 해요!

무대에 오르기로  

 얼마 전 우리 학교 축제인 ‘풀무골제’ 무대 공연에 참여하기로 했다. 남학생들로만 구성된 남중은 여러 학교 행사에서 남녀공학 학교와는 다른 모습을 보인다. 요즘 주도적으로 나서는 여학생이 없다는 것은 남중만의 색다른 여러 모습들을 볼 수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원래 계획은 반 전체 참여에 의의를 두고, 30명 모두 무대에 올라가 우리 3반의 모습을 보이는 것이었다. 체육대회 끝나고 10일도 안 남은 시점에서 하나의 무대 공연을 만든다는 것은 무척 촉박한 일이었다. 머리 속이 분주했다.

 


오랜만의 담임

 올 해 오랜만에 담임을 하게 되었다. 5년 만에 담임으로 만난 아이들과 지내는 재미가 컸다. fifteen 아이들과 fifty 교사가 만나 엄청난 나이 차이를 극복하고 잘 버텨오고 있다. 모두 아이들 덕분이다.

 아이들은 늘 협조적이고, 명랑했으며, 학급일에 적극적이고, 즐거워했다. 예의바른 아이들의 모습은 학급 분위기를 안정적으로 만들었고, 그 안에서 아이들은 나날이 성숙하고 성장해갔다.

 다정하고 밝은 아이들 표정 속에서 나도 성장하며 하루를 잘 마무리한 것 같다. 실수를 자주하거나 사춘기 절정기에 있는 아이들조차도 노력하는 진정성 있는 모습에 보람을 자주 느끼는 학년이다.

 우리반뿐만 아니라 학년 전체의 분위기가 그래서 2학년 샘들 모두 웃는 날이 많은 해이다.


 공연 구상

 일단 그 동안 찍어온 우리 3반의 사진들을 활용하기로 했다. 내 휴대폰에 저장된 사진을 아이들에게 방출하여 사진 영상을 만들고, 그 위에 흐를 노래의 가사를 개사하여 의미를 전달하고, 아이들은 무대에서 춤과 노래를 하기로 했다.

 

 아이들끼리 회의한 결과, 사진 편집 팀, 댄스 팀, 노래 팀이 결성되었다. 지난 주 체육대회 때 운동장에서 끼를 발휘한 몇 명을 댄스 팀으로 추천했더니 흔쾌히 아이들이 참여 의사를 밝혀 내 기분은 덩달아 들떴다.

 

 학교에서 학생부 일을 담당했었는데, 그 때 참여했던 무대 공연도 생각나고, 다시 아이들과 함께 흥겨운 일을 계획하니 다시 또 즐거워졌다. 그 당시에 영화 '써니'가 히트를 쳐서 아이들과 선생님들과 함께 '써니 춤'으로 무대에 오른 적이 있었고, 그 다음 해에는 '개그콘서트''정여사'가 히트를 친 해라, 아이들과 '정여사' 패러디 꽁트 공연을 한 적도 있다. 잊혀진 브라우니가 새삼 떠올라 웃었다. 역시 아이들은 교실에서보다 무대 위에서, 운동장에서 더 멋지고 표정이 살아있어 더 예쁘다.

 공연 연습

 아무튼 우리들은 방과 후 연습에 들어갔다. 그러나 쉽지 않았다. 대부분 아이들이 시간에 쫓겨 학원을 가야했고, 망가지기 위해 무대에 오르는 일이 한창 사춘기인 아이들에게는 대단한 용기가 필요한 일이기에 연습 진행이 순조롭지 않았다. 자기들끼리의 의견 충돌도 있고, 서로 일을 미루거나 자기 할 일을 해 오지 않아 하루를 그냥 보내기도 하고, 연습한다고 남아선 게임과 공차기로 놀기만 하다가 가는 날도 있었다. 결국 무대 공연에 참여하는 아이들은 10명으로 추려졌다. 진짜 하고 싶은 아이들로만 즐겁게 꾸미고 싶었다. 사진 편집에 참여한 아이까지 12명의 아이들이 열흘 간 무대 공연을 준비했다.

 공연 내용

 노래는 아이유의 ‘잔소리’로 정했다. 알콩달콩 사랑 중인 남녀의 역할을 학생과 교사의 역할로 바꿔서 개사를 했다. 선생님은 늘 아이들이 걱정되어 잔소리를 하고, 아이들은 그런 잔소리가 듣기 싫다고 온 몸으로 외치는 컨셉으로 꾸몄다. 앞 부분 2분 동안은 우리 3반의 1년간의 모습을 사진으로 추억하고, 나머지 3분은 개사한 노래에 맞춰 춤추며 부르기로 했다.

 

 안무를 맡은 아이들은 매일 매일 연습 때마다 춤사위를 바꾸어가면서 열정을 보탰다. 나날이 발전하고 완성되어 가는 공연을 보면서 나도 즐겁고 아이들도 즐거웠다.

 

리허설

 아직 강당이 따로 없는 우리 학교는 지하철로 30여분 걸리는 장소에서 공연 마당을 펼친다. 하루 전날 최종 리허설을 하고 아이들은 또 의상을, 소품을 어찌할 것인지 정하고 최종 무대에 올랐다. 그런데 메인 보컬은 완전 떨어서 목소리조차 못 내고, 떼창으로 흥을 돋아야하는 아이들은 감기에 걸려 소리도 못 내었다. 내일이 공연일인데 참 난감했지만, 어차피 우리는 무대에서 기쁨을 주고자 올라가는 것이라 위로하며 각각 가슴에 붙일 빨간 하트를 마지막으로 준비했다.

 

드디어 공연

 그리고 오늘 이 순간, 그 무대를 마치고 내려온 것이다. 와~~5분여의 공연을 어떻게 마쳤는지 하나도 기억이 안 났다. 그렇게나 많은 세월들을 아이들 앞에 섰으면서도 이렇게 긴장하다니, 무대 위에 오르는 모든 이들이 참 대단해 보였다.

 객석 위 아이들은 신났다. 3학년 형들의 의젓한 무대 공연과 1학년 후배들의 어설프지만 귀여운 공연들에 환호하고 응원하며 아이들은 즐기고 있었고, 그런 아이들을 보는 교사들의 마음도 뿌듯하고 좋았다.

 그런데 오늘 우리반 공연을 이렇게 마무리 하다니...아쉬움이 컸다. 혹 아이들도 실망을 했을까?

 그러나 저녁시간 학급 밴드에 올라 온 동영상은 나를 위로해 주었다. 완전 망쳤다고 생각했는데, 박자 놓치고 들어간 나를 아이들은 센스 있게 박자 타게 해 주었고, 소리 높여 열창을 하고 있었다. 이 정도면 대만족이다. 자랑스런 우리반 아이들이다. 역시 행복의 지름길은 만족도가 가장 중요하다.

 우리는 잘 해 냈고, 성공했다. ㅎㅎ

 

공연 후 겪어야 할 것들

 축제 다음날 아이들의 응답은 수업 시간마다 하늘을 찔렀다. 모든 것이 다 나의 대한 애정 표현이려니 하며 나도 즐겁게 응답해 주었다. 1반 아이들은 내가 수업에 들어가면 모두 다 아이유의 철 지난 노래 ‘잔소리’ 합창으로 나를 반겨 주기도 했다. 그래 모두 괜찮다. 어차피 아이들에게 조금의 기쁨이라도 주려고 올라간 무대이니…….

 

  아이들은 묻는다

  "샘! 영상 페북에 올려도 되요?"
  "아니! 절대 안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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