놓는 순간 그리고 다시 시작
독립꾼.
[독립] 자기 주도적으로 '노동자로서의 일'을 해 나가는 상태
[꾼] 어떤 일에 재주가 뛰어나거나 매우 즐기는 사람
왕조시대의 독립꾼이자, Creative Director이다.
사회생활은 스무 살부터 시작했지만, 본격적으로 업계에 발을 들여놓은 것은 14년이 되었다. 최근까지 디지털 마케팅 컴퍼니 '도브투래빗'의 마케팅 그룹 본부장으로 10년간 근무했다. 조직과는 썸을 타야 한다고 했지만, 미련하게도 연애를 했다. 우연한 계기로 만남은 시작했고, 인하우스 종합 광고대행사 광고쟁이에서 '디지털'로 환승했다. 설렘으로 시작했고, 폭발적인 시너지를 얻었다. 오랜 시간 Digital or Die를 외치며 살았다. 왕태일=도브투래빗이라는 착각 속에 긴 시간을 보냈다. 실무와 관리, 리더와 팔로우를 저울질하며 긴 연애를 했다. 결국 이별의 순간을 맞이했다. 아쉽지만, 후회는 없다. 삶의 긍정적인 날개를 달아줬으니까 말이다.
'놓는 법'을 몰랐다.
조직이 변하지 않으면, 내가 떠나야 한다는 것을
독립꾼이라고 스스로를 말하는 그는 현재 왕조시대라는 회사, 브랜드를 기획했다. [브랜드의 날개를 달아라]라는 슬로건은『브랜드, 마케팅, 광고』에 꽤나 힘을 쏟고 싶은 의지를 드러냈다. 15년 차 마케터인 그는 최근 세 번째 퇴사를 했다. 10년 만의 일이었다. 한국타이어, 르꼬끄 스포르티브, SSG PAY, 청정원, 칭따오 등 개성 있는 브랜드들과 수많은 제품 론칭과 브랜드 캠페인을 진행해왔다.
10년 만에 소속이 사라진다는 것은 어떤 의미가 있을지, 프리 워커로서의 독립꾼은 어떤 방향을 갖고 있는지 등이 궁금한 찰나 여러 가지 질문을 던져보았다. 보통의 퇴사자들이 갖는 '이직 또는 갭이어'를 보내지 않는 그는 어떻게 살아가려고 하는 것일까? 다가오는 2022년을 기대하고 있다는 독립꾼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좋겠다.
퇴사 가 결정되던 날, 모든 걸 내려 놓는 기분이었어요. 긍정의 의미죠. 10년이란 시간의 의미보다 온 힘을 다해서 일한 것이 후회 없는 후련함이 느껴지더라고요. 그동안의 일들이 필름처럼 떠올랐어요. 디지털 기술의 발달, 광고의 다변화가 가속화되는 시점에서 세 번째 회사로 이직을 했었거든요. 뉴미디어를 통해 고객 경험을 만들어가는 디지털 크리에이티브 회사였어요. 15초 TV광고라는 규격이 아닌, 'Digtal tech, Creative, Media' 를 적극 활용해서 정말 다양한 마케팅을 할 수 있었죠. 마케팅 비즈니스로 전환을 준비하던 때라 창립 멤버로 시작했던 게 10년이 지난 거에요. 대리로 시작해서, 본부장까지 승진하면서 정말 집 처럼 동고동락 했던 거 같아요. 그래서 미련이 남지 않고, 더 후련한 것 같습니다:)
'만족'이라는 건 어려운 거 같아요. 꿈도 많고, 욕심도 많은 사람이라서 여전히 새로운 경험을 해보고 싶거든요. 대학에서 마케팅을 전공하고, 전자 출판 유통회사에서 마케팅을 시작했어요. 신문광고, 웹사이트 관리, 온라인 광고 그리고 텔레 마케팅을 통해 영업과 광고를 통한 세일즈를 담당했었죠. 배운 것을 써먹어본 의미있는 시기였어요. 두 번째 회사는 국내 TOP 원서접수, 교육 회사 내 인하우스에서 광고 AE로 일을 했어요.
대학, 교육, 관공서 등 ATL 중심의 광고 업무를 담당했습니다. 국내 모든 대학이 영업대상이었죠. 광고주가 정말 많았어요. 덕분에 일은 힘들었지만 프리젠테이션 할 기회가 많다보니 저 연차이데도 책임질 수 있는 역할 부여가 많았던 거 같아요. 경쟁PT, 제안PM, 광고주 영업, 접대 등 다방면에서의 기획자로서 성장을 했던 시기가 아닐까 싶습니다. 하지만, 올드한 영업 방식과 4대 매체 중심의 광고/미디어 플레이는 답답함을 느껴가는 상황이었죠. 고민을 할 때였어요. '진짜 광고다운, 재미있는 마케팅 해보고 싶다"
2012년 이었어요. 글로벌 시장에서도 'Digital'이 화두였고, 영역 넘나 드는 브랜드 콜라보레이션, 뉴미디어의 다양화, 뉴 테크가 광고/마케팅 업계를 선도하기 시작했어요. 이 때 세 번째 회사를 만난거에요. 정말 작은 회사였어요. 인원도, 규모도 기존 보다 20배 작았어요. 고민은 했지만 현장의 기회는 엄청 많아 보여서 이직했습니다.
'레퍼런스'가 필요했어요. 1년 내내 새로운 아이디어를 선 제안했죠. 10년 전 이었지만, 당시 분위기는 조금 보수적이었어요. 옥외광고 법이 제한이 많았고, 긴 영상 광고에 대한 의문, 고객과의 대면 경험에서의 새로운 접근이나 기존 클리셰들을 깨부수는 아이디어에 대해서 관심은 많았지만 최종 컨펌 단계에서는 번번히 임원 설득을 못한 경우가 많았어요. 그래도 계속 두드렸죠. 시장과 기술 환경이 자연스럽게 판도를 바꿔준 거 같아요. 레퍼런스가 쌓이고, 회사도 알려지고, 마케터로서 힘을 얻고, 재미있는 실험이 가능해지면서 변화의 중심이 된 기분이었죠. 많이 성장했던 10년이지 않을까 싶어요.
메이저 종합광고 대행사들은 규모가 큰 ATL 중심의 광고 캠페인을 진행했다면, 디지털 에이전시들은 Digital ad, New Tech 중심의 디지털 캠페인을 실행하면서 전통 방식에 차별화를 두며 규모의 성장을 이끌어갔어요. 투명 자동차를 만들기도 했고요, 세계 최대 규모의 코카콜라 자판기도 만들었죠. 담당 프로젝트는 아니었지만, 코카콜라 본사에서 한국의 디지털 기업을 보고 싶어서 방문했었던 일화도 유명하죠. 자전거 론칭할 때는 세계 최초의 자전거 뮤직비디오를 만들기도 했습니다. 캠페인 전략이나 아이디어들은 인위적으로 보일지도 몰라요. 새로운 시도에 대해서 소비자들의 반응은 폭발적이었다는 게 중요하죠.
여전히 Digital or Die는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브랜드는 소비자들에게 새로운 경험 제공도 중요하지만, 마케터로서 용기를 내보는 것도 굉장히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그렇다면 꽤 성장하는 경험을 해볼 수 있지 않을까요?" 기획자, 마케터, 광고쟁이 등 모든 커뮤니케이션을 하는 영역에 있는 사람들은 정말 용감해요. 끊임없이 고민하고, 실행하는 사람들이니까요.
고민하고, 용기내서 실행하는 것
완성으로가는 과정을 이끌어 가는 일
주변에서는 많이 놀라워했어요. 왜 가출하냐고 하더군요. 파트너사 담당자 분들에게도 연락 많이 받았어요. 비슷한 질문을 하더라고요. "본부장님, 어디가세요?"라고 말이에요. 이직은 정해둔 게 아니었는데 말이죠. 사실 일을 할 수록 심리적으로 힘들었어요. 직장 생활 15년 만에 찾아온 '월요병'이 생겼고, 퇴사 직전엔 신경외과 진료도 받았을 정도로 스트레스가 심했어요.
'번아웃'은 분명히 아니었어요. 회사 밖을 나가면 오히려 충전이 되고, 할 일이 많았거든요. 팀장을 8년 넘게 하면서 수 많은 브랜드 캠페인을 실행해왔고, 경쟁PT, 새로운 조직 관리, 신사업 PM, 조직문화를 위한 커뮤니티 운영, 뉴스레터 기획, 회사 영업 등 주어진 일 말고도 주도적으로 새로운 일을 만들어 왔어요. 누가 알아주지 않아도 자부심이 생겼고, 동기부여도 스스로 만드는 편이었죠. 물론 이런 성향 때문에 오해도 받고, 욕도 먹기도 했어요. 하지만, 분명히 '하고 싶은 일'이어서 해왔다는 거에요.
문제가 생겼어요. '본부장'이 되면서 정체성 혼란을 느꼈어요. 하고 싶은 건 '일'이었는데 스스로 '일'을 만들지 못하고 있더라고요. 실무보다 관리 직무에 집중이 되면서 기획자로서의 전과 후가 많이 달라졌어요. 동료들 또한 저의 정체성 혼란 때문인지 서로 다른 애로사항들이 연이어서 발생했어요. 어려웠던 거 같아요. 실무하던 사람이 '관리자'가 된다는 거 말이에요.
나이가 들고, 경력이 쌓여서 흔히 기업 내 관리자가 되면서 다 겪는 일이라는 거 하고 싶지 않았어요. 아직은. 하지만, '관리자로서의 실무와 리더로서’는 9년간 해왔기 때문에 팀 빌딩과 조직문화 개발, 성장을 위해 끊임없이 연구해보고 실험도 해본게 큰 힘이 되지 않았나 싶네요.
앞으로 제가 만든 '왕조시대'라는 브랜드에서는 마케팅/광고 대행 뿐만 아니라, 팀 빌딩을 위한 워크샵 등도 해볼 수 있지 않을까 상상해보고 싶어요:)
마침 회사의 사업 비전도 다각화 되면서 저의 비전과 차이가 나기 시작했고, 주도적으로 일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하게 되었어요. 내려 놓는 법을 몰라서 전전긍긍했고, 낭떠러지에 서 있다가 누가 밀어줘야 퇴사를 하겠구나라고 생각만 했는데요. 결국, 끝까지 버텼다가 후회없이 퇴사를 했습니다. 그래서 일까요? 2022년이 기다려지는 요즘 입니다.
퇴사하고 갭 이어라고 부르는 '쉼' 또는 '준비'라는 시간을 특별히 갖진 않았어요. 코로나 19도 한 몫하다보니 어딜 가기도 어렵더라고요. 가족과 함께하는 시간도 정말 의미가 있는 요즘이기도 해요. 이직도 고민해보고, 퇴사 전부터 여러 선배님들을 만나면서 명확해지는 건 있어요.
가장 나다운 일을 하는 것이고, 환경을 스스로 만들어 보라고 조언을 많이 받았어요. 결국, 그동안 해온 일이었어요. 브랜드 캠페인을 기획하고, 마케팅 전략을 수립하고, 브랜드에 최적화된 크리에이티브와 미디어 집행을 통해 긍정적인 퍼포먼스를 만들어 내는 것을 말이에요. 단, 기존의 에이전시 구조와 같이 인력을 통한 규모의 판을 키우는 일은 조금 다른 거 같아요.
결국 [왕조시대]라는 '프로젝트 독립꾼'이 되어보기로 한거에요.
브랜드, 마케팅, 광고 분야에서 실력있는 꾼들이 흩어지고, 모일 수도 있는 [싱글모드와 팀 모드]가 가능한 회사를 만들고 싶었어요. N잡러, 부업(전자책, 유튜버, 주식 등 멀티)하고는 차이가 있어요. 독립꾼의 주요 무대이고, 힘을 쓰고 싶은 분야니까요. 저는 15년 동안 특정 카테고리 선호가 없이 다양한 산업의 브랜드와 일을 해온게 가장 큰 무기라고 생각해요. 거부감이 없는거죠. 마케터가 필요한 중소기업, 외부 기획자가 필요한 스타트업, 광고/미디어 운영이 필요한 브랜드가 있다면 주저없이 저와 함께 일하면 될거 같아요.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같이 일하기 좋은 사람이자 커뮤니케이터로 이어지길 바랄뿐이에요.
2022년을 기다리는 요즘, 스스로의 성장과 변화를 상상하며 날개를 달아가고 있습니다.
왕조시대의 독립꾼이자, Creative Director 그의 이름은 왕태일이다. 흔한 퇴사자들처럼 우여곡절이 많은 이야기가 꽤나 있었다. 하지만 긍정의 에너지는 질문과 답을 하는 내내 느낄 수 있었다. 15년차라는 경력과 나이는 중요하지 않다고 했다. 새로운 환경은 계속 변화하고 바뀔 것이고, 나타날 것이기 때문이다. 얼마나 깊게 사고하고, 적극적으로 커뮤니케이션하는지, 진정성으로 일을 대하는 태도가 가장 중요하다고 했다.
*내용 구성의 경우, 폴인과 퍼블리, 셀프 인터뷰 등을 참고해서 작성해봤습니다 :)
*어느 광고인의 고백(현대 광고의 아버지라고 불리는 데이비드 오길비)이란 책을 오랜만에 꺼냈습니다.
제목에서 영감을 얻어 셀프 인터뷰를 진행했습니다.
우리는 왕조시대
왕태일 DREAM | CREATIVE DIRECTOR, 프로젝트 독립꾼 마케터